콜린 벨 감독. 사진제공 | 대한축구협회
한국축구 사상 최초로 여자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콜린 벨 감독(잉글랜드)은 처음 출격한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서 이전과 확연히 다른 저돌적인 퍼포먼스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1승1무1패로 일본(3승)에 밀려 준우승, 2005년 이후 14년 만에 정상 탈환은 실패했으나 멈추지 않은 직선 축구와 과감한 압박, 빠른 빌드업으로 밝은 내일을 예고했다.
10월 지휘봉을 잡은 벨 감독은 지난달 두 차례 단기훈련을 거쳐 대회 엔트리를 선정했다.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뚜렷한 컬러를 새긴 부분도 놀랍지만 더욱 특별한 점은 제자들의 사기를 끌어내기 위한 동기부여다.
벨 감독은 선수단과 첫 미팅에서 하나의 영상을 보여줬다. 여성 복서가 노력 끝에 올림픽 메달을 따는 스토리. 참석자 대부분이 “노력하면 된다”는 진부한 메시지를 생각했는데, 벨 감독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나도 올림픽에 가고 싶어요.”
여자대표팀은 내년 2월 제주도에서 열릴 2020도쿄올림픽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사상 첫 올림픽 출전을 노린다. E-1 챔피언십도 올림픽 예선 엔트리를 선정하기 위한 시간이다. 스승의 솔직담백한 말에 선수단의 사기는 충천했다.
17일 부산구덕운동장에서 끝난 일본과의 대회 최종전을 하루 앞둔 훈련에서도 벨 감독의 탁월한 메시지 전달이 돋보였다. 2차전 대만전과 3차전 일본전 사이의 휴식일은 딱 하루였는데, 지친 선수들을 보던 벨 감독이 입을 열었다.
콜린 벨 감독. 사진제공 | 대한축구협회
“주행 중 주유등이 켜지면 조급하다가도 주유소가 보이면 기쁨이 크다. 지금 주유소가 보인다. 좀더 힘을 내자. 경기를 뛰다가 힘들면 언제든 내게 안겨라. 내가 여러 분들을 위한 주유소다.”
필요하면 지갑도 연다. 벨 감독은 ‘무실점=회식’을 공약으로 걸었고, 중국과 1차전을 0-0으로 마친 뒤 숙소 인근 식당을 찾아 소고기 파티로 약속을 지켰다. 비용이 상당해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지만 대만과 2차전(3-0) 이후에도 “이번에는 맥도널드 어때?”라며 분위기를 달궜다.
항상 좋은 소리만 하는 건 아니다. 때론 따끔한 질책도 한다. 일본전 직후 “서로 잘했다고 다독이는 대신, 패배에서 교훈을 얻자. 져선 안 되는 경기였다”고 선수들을 자극했다. 공식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세리머니를 보며 심장에 칼이 꽂힌 기분이었다”는 코멘트를 던진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미디어 활용의 좋은 예다.
벨 감독은 한국어 공부도 적극적이다. 간단한 인사는 기본. 틈틈이 한글로 선수 이름을 직접 쓰고 외워 부르는 연습을 한다. 외국인 스승이 불러주는 이름은 더 특별하고 훨씬 오래 남는 법이다. 한 가지 더, 태극낭자들이 대회 기간 가장 많이 접한 우리말 표현이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마!”
벨 감독과 함께 하는 ‘포기하지 않는’ 여자축구의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시작됐다.
부산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