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경기도 안산상록수체육관에서 ‘2020-2021 도드람 V리그‘ OK금융그룹과 한국전력의 경기에 앞서 OK금융그룹 선수들이 버스에서 하차하고 있다. 안산|주현희 기자 teth1147@donga.com
이날은 심경섭(30)과 송명근(28)의 학폭 가해 사실이 알려진 뒤 OK금융그룹의 첫 경기였다. 경기장에는 양 팀 선수와 코칭스태프, 프런트, 최소한의 경기진행요원과 취재진만 자리했다. 취재진은 20여 명. 평소에 비해 많은 편이었지만, 이틀 전 계양체육관의 80여 명과 비교하면 관심은 덜했다. 물론 관심과 죄의 무거움이 비례하진 않는다.
심경섭과 송명근은 13일 학창 시절 학폭 전력이 밝혀지면서 자진해 경기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석진욱 OK금융그룹 감독과 구단은 이를 수용했고, 둘은 숙소를 떠난 상태다. 특히 급소를 가격당한 피해자가 고환봉합수술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체육계는 물론 사회가 공분했다. 이날 경기 개시 1시간 전 시작된 훈련에서 주장인 리베로 정성현을 필두로 고참들이 분위기를 띄우려 애썼지만 굳은 표정까지 감추진 못했다.
OK금융그룹은 이날 경기 전까지 최근 3연패를 당하는 등 17승12패(승점 48)로 4위까지 처졌다. 시즌 내내 ‘봄 배구’ 마지노선인 3위권을 사수해왔으나 최근 페이스가 떨어졌다. 이날 경기 준비 과정이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다. 17일 훈련 분위기도 조용했다는 후문이다. 구단 관계자는 “피해자와 배구팬은 물론 국민들께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했다. 석진욱 OK금융그룹 감독도 “피해자께 죄송하다. 나도 체육인이다. 책임감이 느껴진다. 앞으로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 속에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OK금융그룹이 ‘가해’로 고개 숙였다면, 한국전력은 ‘피해’로 이를 악물었다. 한국전력 주포 박철우(36)는 경기를 앞두고 개인 소셜미디어(SNS)에 “정말 ‘피꺼솟’이네…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느낌이 이런 것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감독은 2009년 남자배구대표팀 코치 시절 박철우를 구타했다. 박철우는 당시 왼 뺨과 복부에 멍이 든 채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대한배구협회 징계를 받았던 이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KB손해보험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17일 우리카드전을 앞두고 “난 (폭력) 경험자라 선수들에게 더 잘해주려고 노력 중이다. (중략) 어떤 일이든 대가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피해자로선 가해자의 이러한 발언이 ‘2차 가해’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박철우는 평소처럼 본인의 루틴대로 러닝하는 등 훈련에 임했지만 굳은 표정에서 이날 경기에 임하는 각오가 느껴졌다.
안산|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