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형이 지난해 10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TPC 서머린에서 열린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에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해 PGA 투어 통산 3승을 달성한 뒤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만 21세3개월의 김주형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가 1997년 1월 만 21세에 3승을 기록한 이후 26년 만에 최연소 3승을 달성했다. 라스베이거스(미 네바다주) | AP뉴시스
김주형이 2023년에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 타이틀을 방어할 당시에 그의 나이는 21세였다. 21세에 PGA투어 3승을 달성한 그는 타이거 우즈를 연상시켰다. 나이를 22세와 23세로 확장해도 많은 선수가 등장하지 않는다. 조던 스피스가 22세에, 로리 매킬로이가 23세에 3승을 달성했다. 조던 스피스는 마스터스를, 로리 매킬로이는 US오픈을 포함하여 3승을 달성한 것이 차이점이지만, 타이거 우즈가 첫 우승을 달성한 것도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이었기 때문에 김주형은 자연스럽게 타이거 우즈와 비교되었다.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병원은 환자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 병원이다. 환자 가족이 부담할 수 있는 치료비가 없다면 전액 무료로 치료가 이루어진다. 병원은 주로 기부와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자선단체가 총상금 700만 달러의 PGA투어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의외다. 1983년 출범 당시에는 상금 규모 면에서 최대였으며, 1984년에는 총상금 규모가 100만 달러를 넘긴 최초의 PGA투어 대회였다.
경기 중계권료는 PGA투어에서 가져간다. 대회 주최 측은 입장권, 프로암 출전권, 스폰서만으로 총상금과 운영비를 충당하고, 남기는 이익금은 병원 재정이 된다. 자선단체가 중계권료 없이 대회를 운영하고 이익을 남길 만큼 미국 골프 시장은 크다. 골프 팬과 스폰서 규모 면에서 미국 시장은 다른 지역을 압도한다.
라이더컵과 프레지던츠컵에 출전하는 미국 선수는 나라를 대표한다는 만족감만을 얻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많은 골프 팬의 응원과 대형 스폰서의 주목을 받는다. 라이더컵에 출전하는 유럽 선수는 유럽 골프 팬과 스폰서의 관심을 받는다.
라이더컵은 PGA of America와 라이더컵 유럽이 번갈아 대회를 맡는다. 유럽 측은 라이더컵을 통해 유럽 통합의 효과를 누린다. 이에 반해 프레지던츠컵에 출전하는 인터내셔널팀이 누리는 혜택은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다. 한국, 일본, 호주,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구성된 인터내셔널팀은 공통점이 없고, 통합을 이야기할 거리도 없다. 미국의 단합과 미국팀 선수의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터내셔널팀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일 정도다.
라이더컵과 달리 프레지던츠컵은 PGA투어가 모든 대회를 주관하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두 팀 간의 홈앤드어웨이 방식도 아니다. 프레지던츠컵 대회에 출전하는 인터내셔날팀 선수는 좋은 경험을 하게 된다. 기존 골프대회와는 성격이 다른 압박감을 경험하고, 미국 선수를 이기면서 자신감도 쌓는다. 2022년 대회에서 김시우와 김주형은 셋째날 포볼에서 잰더 쇼플리와 패트릭 캔틀리 조를 마지막 홀에서 이겼는데, 이는 쇼플리와 캔틀리가 맛본 최초의 단체전 패배였다. 18번 홀에서 퍼팅에 성공하고 모자를 던진 김주형의 세리모니는 많은 골프팬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패기에 넘치는 어린 김주형을 세계 골프팬은 흥미롭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인터내셔널팀 선수가 구조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처하고 있는 점이 간과되고 있다. 인터내셔널팀은 사실상 실체가 없다. 팀으로서 정체성이 없는 가운데 선수들은 가장 큰 골프 시장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그리하기에 모두에게 중요하지만, 인터내셔널팀 선수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경기의 매너다. 좋은 기량을 비난하는 스포츠팬은 없지만, 뛰어난 선수가 상대 팀이면 스포츠팬은 그를 싫어할 이유를 찾게 된다.
지난 9월 23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프레지던츠 컵 골프 토너먼트에서 국제 팀 멤버인 김주형(왼쪽)과 캐나다의 코리 코너스(오른쪽)가 연습장을 걸어가고 있다. 김주형은 대회 3일 차 경기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미국 팀 선수가 우리에게 욕하는 것을 들었다”면서 “이는 스포츠맨십에 어긋나지만, 이것도 경기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몬트리올(캐나다) ㅣ AP 뉴시스
올해 프레지던츠컵에서 김주형과 김시우는 악역을 담당했다. 경기를 충분히 즐겼는지와 별도로 그들이 PGA투어가 만들어 낸 악역을 담당하고 있다는 인식을 조금이라도 했는지 궁금하다. 특히 김주형은 미국 선수가 자신을 상대로 욕설을 했다는 말을 공개하면서 논란을 부추겼다. 그것이 팀의 투쟁심을 올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논란거리가 된 욕설 자체의 실제 여부와 무관하게 그는 더욱 선명한 악역이 되었다.
김주형이 스스로를 타이거 우즈, 조던 스피스와 로리 매킬로이에 버금가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상대방을 자극하는 행동은 22세 이전에 3승을 달성한 선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골프 팬과 메이저 스폰서다. 이번 프레지던츠컵으로 그는 일부 미국 팬을 잃었다. 공교롭게도 3승 중의 2승을 선사한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오픈에서 그는 아쉽게 컷오프당했다.
프레지던츠컵에서 받은 상처가 그의 부진으로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된다. 18세 이하의 어린이와 청소년의 상처는 슈라이너스 칠드런스 병원이 치료해 주지만, 성인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상처를 받으면 성숙해진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성숙이 상처를 치유한다.
윤영호 골프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