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트 손턴 인비테이셔널 두 번째 라운드 도중 환하게 웃는 지노 티띠꾼(왼쪽)과 김주형. 이들이 이날 기록한 8언더파는 이 대회 포섬 역사상 가장 좋은 기록이다. 사진제공 ㅣ LPGA
네 명이 조를 이뤄 치는 것을 선호하는 아마추어 주말 골퍼에게 골프는 외로운 비즈니스가 아니다. 그러나 혼자 가방을 메고 비바람과 맞서는 스코틀랜드 골프는 본질적으로 외로운 비즈니스다.
프로 골퍼는 스코틀랜드 골퍼에 가깝다. 좌절감으로 라커룸에서 화를 푼 골퍼에게, 마지막 3홀에서 두 번이나 짧은 퍼팅을 놓쳐 US오픈을 우승하지 못한 골퍼에게, 30센티미터 퍼팅 실수로 메이저 대회 우승을 놓친 골퍼에게, 3타차 선두로 맞이한 마지막 홀에서 실개천에 놓인 공을 치는 선택을 하여 클라렛 저그(디오픈 우승 트로피)에 이름을 새기지 못한 골퍼에게 골프는 분명 외로운 비즈니스다.
그러나 핀까지 230야드 남긴 공을 7번 아이언으로 가볍게 그린에 올려 주는 동료가 있다면, 어려운 벙커샷을 아무렇지도 않게 핀에 붙여 주는 동료가 있다면, 까다로운 퍼팅 기회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데 앞에서 롱 퍼팅에 성공해 주는 동료가 있다면, 프로 선수에게도 골프가 외롭기만 한 비즈니스는 아니다.
미국프로골프(PGA)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의 2024시즌이 끝나고 다양한 이벤트 대회가 진행되고 있는데, 그중 그랜트 손턴 인비테이셔널 대회가 인상적이었다. PGA 투어와 LPGA 투어가 공동 주관하는 이 대회는 PGA와 LPGA 상위권 선수가 한 조를 이뤄 출전하는 대회로 첫날은 스크램블, 둘째 날은 포섬, 셋째 날은 변형 포볼로 진행됐다. 두 명이 한 조를 이루는 경기 방식 중 대표적인 세 가지다.
스크램블은 두 선수 볼 중 좋은 위치에 다른 공을 가져와 놓고 치는 방식이다. 모든 샷이 같은 위치에서 두 번씩 이뤄지기에 매 홀마다 버디 기회가 찾아온다. 첫날 스크램블에서 제이크 냅(미국)과 패티 타바타나킷(태국)은 14언더파를 기록하여 선두에 올랐다.
포섬은 두 선수가 하나의 공을 번갈아 치는 방식이다. 둘째 날 포섬에서 김주형(대한민국)과 지노 티띠꾼(태국)은 8언더파로 이 대회 포섬 역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김주형은 포섬에서 좋은 성적을 낸 비결로 ‘실수했을 때 동료에게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포볼은 두 선수가 각자 자신의 공으로 플레이하고 둘 중 좋은 성적을 팀 성적으로 삼는 방식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남자 선수의 티샷을 여자 선수가, 여자 선수의 티샷을 남자 선수가 홀아웃하는 변형 포볼 방식으로 진행됐다. 남녀선수가 최대한 많이 교차하도록 의도된 것이다. 셋째 날 경기에서는 코리 코너스와 브룩 핸더슨(이상 캐나다), 매트 쿠차(미국)와 메간 캉(이상 미국)이 10언더파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팀 골프는 한 선수가 다른 선수를 구원하는 데에 묘미가 있다. 이런 게임에서는 초보 골퍼도 중압감에서 벗어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실수를 해도 커버해 주는 동료가 있기 때문이다. 주말 골퍼들이 친구들과 게임을 할 때 두 명의 점수를 합하거나 곱하여 홀의 승패를 가리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방식은 실력이 부족한 골퍼의 점수가 팀 성적에 전부 반영되기 때문에 팀 골프 정신과 거리가 있다. 초보 골퍼에게 골프가 외로운 비즈니스라는 것을 알려 줄 목적이 아니라면, 스크램블, 포섬, 포볼이 권장할 만한 게임이다.
이번 대회 방식 중 포섬이 골퍼에게 가장 큰 중압감을 준다. 그러나 포섬 방식조차도 멋진 샷으로 동료 실수를 만회할 수 있다. 포섬의 중압감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티샷은 공유하고 세컨샷부터 번갈아서 치는 그린섬이 있다.
그랜트 손턴 인비테이셔널에서 27언더파로 우승한 패티 타바타나킷과 제이크 냅. 사진제공 ㅣ LPGA
마지막까지 버디 행진이 이어지면서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친 가운데, 제이크 냅과 패티 타바타나킷이 27언더파로 김주형과 지노 티띠꾼을 한 타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스크램블에서 먼저 친 선수의 라이를 참고하여 롱 퍼팅에 성공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 포섬에서 롱아언을 핀에 붙이고 동료에게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 모습, 벙커샷을 집어넣은 기쁨으로 동료에게 달려가 포옹하는 모습, 변형 포볼에서 자신의 퍼팅 라인을 읽을 때 동료의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 드라이버 장타를 치고 동료에게 좋은 공을 선사한 것에 만족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버디에 성공하고 주먹을 부딪치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밝게 웃는 남녀 골퍼의 모습은 고전 미술작품에 등장하는 신화 속 남녀 같았다. 그래서 골프가 아름다웠다. 프로 선수들에게도 골프가 외로운 비즈니스만은 아니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보기에 좋았다.
윤영호 골프 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