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 전문기자의 2019~2020시즌 V리그 프리뷰⑪ GS칼텍스

입력 2019-10-1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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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프로배구 6개 팀 가운데 가장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GS칼텍스의 새 시즌 키워드는 ‘성장’이다. 지난 시즌 경험한 봄 배구를 바탕으로 한결 성숙해진 선수단은 ‘최고의 봄을 향한 힘찬 도약’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출발한다. 사진은 9일 300여 명의 팬들을 초청해 출정식을 열고 기념 촬영에 임하는 선수들의 모습. 사진제공|GS칼텍스 배구단

지난 2시즌 동안 GS칼텍스에서 자주 듣던 단어는 ‘강제 성장’이었다. 주전들이 다치거나 이런 저런 일로 빠지면서 어쩔 수 없이 기용됐던 선수들이 뜻밖에도 잘 성장해줬다. 기특했다. 2시즌 전 강소휘, 지난 시즌에는 세터 안혜진과 리베로 한다혜가 그랬다. 이번 시즌에도 GS칼텍스의 키워드는 성장이다. 다만 이번에는 돌발변수 없이 차분하게 선수들을 키워낼 생각이다.

5시즌 만에 봄배구 진출에 성공하면서 선수단 전체가 한 단계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GS칼텍스 차상현 감독은 “선수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대견스럽다. 이 맛에 지도자를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어디에 가서 항상 맞고 오더니 작년에는 맷집이 붙었고 이제는 상대를 때릴 줄도 안다”고 했다.

여자프로배구 6개 팀 가운데 가장 젊고 빠르고 에너지가 넘치는 팀이다. 15일 가평의 새 훈련장에서 벌어진 현대건설과의 연습경기 때 차상현 감독은 4세트 내내 다른 로테이션을 써가며 최적의 조합을 찾았다. 세트스코어 2-2로 끝난 경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선수들의 안정감이었다. 이소영과 강소휘가 팀의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이 이전 시즌과는 또 달랐다. 이전까지 발랄하고 신나기만 했던 GS칼텍스의 배구는 차츰 성숙기로 접어들려고 한다.

GS칼텍스 강소휘. 사진제공|GS칼텍스 배구단


● 성장한 선수들과 강소휘의 욕심

지난 시즌 GS칼텍스의 장점은 토종 윙 공격수 3명이 펼치는 정신없이 빠른 공격이었다. 이소영~강소휘~표승주 조합은 외국인선수에게 공격을 몰아주지 않아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아쉽게도 표승주의 FA 이적으로 황금조합은 깨졌다. 차상현 감독은 2년차 박혜민의 성장에 기대를 건다.

순천 KOVO컵에서 가능성을 봤다. 리시브 능력은 충분했다. 클러치 상황에서 긴장하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는 담력도 충분했다. “욕심도 많다”고 감독은 말했다. 보강할 것은 파워다. 한송희 박민지 등도 윙 공격수 한 자리를 노린다. 신인 권민지도 기대주다. 치열한 내부경쟁을 통한 팀 전체의 성장은 GS칼텍스의 밝은 미래를 의미한다.

차상현 감독은 강소휘가 최근 자신의 방을 찾아왔던 얘기를 들려줬다. 강소휘는 “감독님 올해 꼭 베스트7에 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봤다. 차상현 감독은 “당돌하지만 선수가 용기를 내서 자신의 목표를 말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물어볼 정도로 성장했다. 선수는 그런 욕심이 있어야 한다”면서 당돌함을 칭찬했다.

GS칼텍스 한수지(왼쪽)-러츠. 사진제공|GS칼텍스 배구단


● 마침내 탄탄해진 중앙 한수지와 러츠의 효과

한때 GS칼텍스는 정대영 배유나 등 최고의 미들블로커를 보유했다. 하지만 이들이 떠나면서 오래동안 후유증을 겪었다. 대신할 선수를 찾기 힘들었다. 문명화와 김유리가 먼저 왔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한수지를 영입했다. 표승주의 FA보상선수였던 염혜선을 활용해 가장 필요했던 자리를 마침내 채웠다. 그동안 중앙을 생략한 채 좌우 공격으로만 버텨왔지만 이제는 중앙에서 새로운 공격옵션이 많아졌다. 날개공격수들도 그 혜택을 보게 됐다.

12년 만에 친정팀에 복귀한 한수지의 덕을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은 외국인선수 러츠다. 차 감독은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 때 신장 206㎝의 러츠를 지명했다. 엄청난 키 덕분에 2년 전부터 눈길을 받았지만 느리다는 점 때문에 외면을 받았다. 감독은 감량을 하고 재도전한 열성과 가능성을 눈여겨봤다.

러츠는 적응력이 빨랐다. 동료들과 잘 융화됐다. 열심히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자세도 좋았다. 감독은 그의 신장을 이용해 OPP와 MB 포지션에서의 역할을 주문했다. 연습경기 때도 그의 높이는 위력적이었다. 상대팀에서 어지간해서는 러츠 쪽으로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다. “배구에서는 키가 깡패”라는 어느 감독의 말이 실감났다. 베테랑 한수지는 러츠에게 영업비밀을 잘 알려줬다. 러츠는 “세트플레이 때 어떤 공이 오는지, V리그에서는 어떤 스피드와 높이로 공이 오가는지 잘 알려줘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차상현 감독은 그를 신뢰한다. “보기에만 느려 보일 뿐이다. 생각이 바르고 배구센스가 높다. KOVO컵에서 중요한 순간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고 투지도 보여줬다”고 말했다.

GS칼텍스 차상현 감독. 사진제공|GS칼텍스 배구단


● 위대한 팀의 배구와 옆집 아저씨 같은 감독

여자 팀은 코트에서의 플레이도 중요하지만 성적을 결정하는 변수는 라커룸과 숙소에서의 생활, 팀 분위기다. 지난 시즌까지 라커룸의 리더는 표승주였다. 올해는 누군가 그 역할을 대신 해줘야 한다. 주장 김유리가 중요한 이유다. 그는 “팀이 어려울 때 동료들끼리 가끔씩 밖으로 나가서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눈다. 그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어느 팀이건 위기의 순간은 온다. 이럴 때 선수들끼리 혹은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신뢰가 탄탄해야 고비를 빨리 넘긴다. 비슷한 또래가 많고 어린 GS칼텍스는 감독과 선수들 사이의 호흡이 좋다. 이소영은 “감독님이 선수들을 편하게 해주신다. 친구 같고 때로는 옆집 편한 아저씨 같다”고 말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항상 즐거워 보이는 이유다.

구단은 지난 시즌 뒤 차상현 감독에게 큰 선물을 2개 줬다. 도로공사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졌지만 5시즌 만에 봄 배구 진출의 성과를 거둔 공로를 인정했다. 3년의 재계약을 안겼다. 차상현 감독은 이 기간 동안 자신이 원하는 배구를 정착시킬 기회를 얻었다. 러츠를 선발한 것도 그런 배경이 깔려 있다.

두 번째 선물은 새로운 전용훈련장과 숙소였다. 그동안 용인의 강남대학교 시설을 빌려 쓰다 보니 여러모로 불편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새 집을 줬다.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는 시설을 갖춘 가평의 훈련장에서 새로운 생활은 시작됐다. 9일에는 300여 명의 팬들을 초청해 강남 한복판에서 출정식도 했다. 세입자 신세에서 벗어나 새로운 집의 주인이 된 팀의 자부심이 보였다.


새 시대를 향한 의지를 상징하듯 행사장에 걸린 현수막은 “최고의 봄을 향한 힘찬 도약”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번 시즌의 목표다. 청평호 바로 곁에 있는 훈련장 현관에는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글이 보였다. 선수단 모두가 함께하는 GS칼텍스 배구의 정신을 상징한다. 그 아래 장식장에는 슈퍼리그 9년 연속우승을 차지했던 호남정유 시절의 우승트로피 2개와 GS칼텍스가 거둔 V리그 우승트로피 2개가 놓여 있었다. 이제 차상현호는 그 곁에 입주 기념으로 새로운 트로피를 하나 더 두려고 한다.

가평|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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