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ㅣ한국배구연맹
최근 태국 배구계의 내부 사정에 밝은 사람으로부터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 2017년부터 태국은 한국배구연맹(KOVO)과 여자배구 올스타전을 함께하면서 많은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태국 여자국가대표선수들도 우리 선수들과 친하게 지낸다. SNS(사회관계서비스망)를 이용해 연락을 자주 했는데 얼마 전부터 이들이 우리 선수들과의 SNS를 모두 끊었다고 했다.
● 하필이면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태국과 우리 대표팀
대륙간 예선전에서 실패한 우리 대표팀은 마지막 남은 아시아대륙 최종예선전에서 우승해야 한다. 일본은 개최국 자격으로, 중국은 대륙간예선전을 통과해 티켓을 확정했다. 우리가 도쿄올림픽에 가기 위해서는 태국을 이겨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SNS가 태국 배구팬에게 알려지면서 난리가 났다. 이들은 “한국에게 기회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못나간다는 것 아니냐. 대표선수들이 생각도 없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자 누군가가 우리 선수들과의 SNS를 끊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아직 한 번도 올림픽에 나가지 못한 태국의 배구협회와 열성적인 팬들은 황금세대가 은퇴하기 전인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믿는다.
● 심리의 경기인 배구에서 심판과 환경의 영향은 크다
배구는 흐름과 선수들의 심리가 승패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심판이 마음먹고 특정 팀을 도와주려고 하면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여자부 결승전에서 우리가 중국에게 3-2 역전패 당했던 때를 기억하면 된다. 경기 뒤 선수들이 심판의 편파판정에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태국은 오래 전부터 아시아배구연맹(AVC)에 많은 자금과 인력을 지원하고 대회를 유치해가며 영향력을 넓혀왔다. 국민의 존경을 받는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번에도 중요한 여자부 최종예선전을 유치했다.
당연히 태국에게 유리한 홈 어드밴티지는 다양한 곳에서 나올 것이다.
● 대한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의 단결, 그리고 전세기
이런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대한배구협회(KVA)와 한국배구연맹(KOVO)에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우리 선수들에게 좋은 성적을 내라고 부담만 주지 말고 두 단체가 나서서 도와줄 수 있는 것을 한 번 찾아보라고 권유한다.
다양한 배구외교 루트를 찾아 최소한 우리가 손해를 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이 것과 함께 우리 선수들이 기죽지 않을 방법도 찾아봤으면 한다. 태국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서 경기할 선수들을 위해 단체 원정응원단을 조직하는 것이다. KVA가 앞장서고 V리그 여자부 6개 구단이 동참하고 열성적인 팬들의 뜨거운 성원이 있다면 못할 것도 없다.
지원할 방법은 또 있다. 마침 KOVO 조원태 총재가 대한항공의 회장이다. 경기장소 나콘라차시마까지 이동하는 길이 멀다. 지난 4월 한태올스타전 때는 방콕에서 내려 차로 4시간을 더 가야했다. 쉽지 않은 원정길의 선수들을 위해 전세기를 띄워 직항로로 날아가는 방법을 추천한다. 선수들의 피로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이 전세기에 열성적인 원정응원단까지 함께 한다면 우리 선수들의 사기가 더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동안 소 닭보듯 했던 대한배구협회와 한국배구연맹이 이런 협업으로 한국배구에 새로운 길을 제시해주면 그 또한 올림픽 본선진출만큼 반가운 일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팬들의 뜨거운 동참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