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덩이도 이런 복덩이가 없다. 지난해 이지윤(오른쪽) 씨와 결혼한 넥센 박병호가 올해 리그 최고의 강타자로 발돋움했다. 이 씨는 그러나 “남편이 잘 되는 것은 그동안 고생하신 시부모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사진제공|아이웨딩네트웍스
야구선수 아내의 최고 덕목은 평정심
잘쳐도 “잘했어요” 못쳐도 “잘했어요”
결혼후 무명타자가 MVP 후보 발돋움
내조여왕? 시부모님 정성 결실 맺은것
2012시즌 최고의 히트상품은 넥센 박병호(26)다. 비록 팀은 4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강타자의 지표인 30홈런-100타점을 달성하며 강력한 시즌 최우수선수(MVP)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가 올해 최고의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데에는 지난해 백년가약을 맺은 이지윤(30) 씨의 내조가 있었다. 정작 당사자는 “어릴 때부터 남편에게 정성을 쏟으셨던 시부모님의 공을 내가 다 받는 것 같아 죄송하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남편의 마음을 세심히 헤아리는 현명한 ‘내조의 여왕’을 빼놓고 박병호의 2012년을 논할 수는 없다. 결혼 후 맞은 첫 추석, 남편과 시조부모가 계신 전북 부안으로 내려가 인사를 드렸다는 이 씨에게 야구선수의 아내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부모에게 복덩이 며느리
이지윤 씨는 예쁜 외모와 똑 부러지는 성격, 육군 중위 출신(KFN 국군방송 앵커·국군홍보지원단 중대장)이라는 남다른 ‘스펙(?)’으로 대위 출신 시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요즘에는 여기에 ‘복덩이’라는 수식어가 추가됐다. 무명에 가까웠던 아들이 결혼 후 1군에서, 그것도 팀의 4번타자 자리를 꿰차고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으니 부모 입장에서 이 씨는 그야말로 굴러들어온 복덩이일 수밖에 없었다.
“많이 예뻐해주세요. ‘복덩이’라고 해주시고. 그런데….” 막힘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던 이 씨가 잠시 말끝을 흐렸다. “솔직히 처음에는 남편이 제 덕에 야구가 잘 된다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즐거워했어요. 기분도 좋았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남편이 지금 잘 되는 건 시부모님이 어려서부터 뒷바라지 하시면서 쏟은 정성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마치 전부 제 공인 것처럼 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정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며느리다.
○내조의 여왕, 비결은?
“저희는 남들처럼 명절을 쇨 수 없어서 조금 일찍 추석을 보내고 왔어요.” 이지윤 씨는 예쁜 며느리뿐 아니라 속 깊은 손주며느리이기도 하다. 이 씨는 남편과 함께 넥센의 경기가 없었던 24일 전북 부안에 계신 시조부모를 뵙고 왔다. 추석 당일에는 경기가 있는 남편 곁을 지킬 예정이다. 사실 8개월간 경기장에서 살아야 하는 야구선수가 집안일을 챙기기란 쉽지 않다. 명절은커녕 생일조차 야구장에서 보낼 때가 많다. 그러나 이 씨에게는 철칙이 있었다.
“다른 분들이 어떻게 하시는지 몰라서 제가 내조를 잘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이게 맞는 건가 고민도 많이 하죠. 그런데 한 가지, 남편한테 야구가 중요한 삶의 일부지만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얘기해줘요. 야구선수는 주변의 희생이 따르는 직업이지만 부부니까 좋은 일, 나쁜 일 함께 나누자고 말하죠. 고맙게도 남편이 저의 이런 마음을 잘 이해해줘요.”
넥센 박병호는 30홈런-100타점 고지를 밟으며 유력한 시즌 최우수선수(MVP)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30홈런-100타점 때 “잘 했어” 한마디
케이블TV 스포츠채널 아나운서 출신의 이지윤 씨는 매일 숫자로 평가되는 야구선수의 스트레스를 누구보다 잘 안다. 여느 아내들과 마찬가지로 경기 결과에 따라 남편의 기분이 내심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그래도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30홈런-100타점의 대기록을 달성한 박병호에게 건넨 말도 “잘했다”가 전부였다. “저는 잘 해도 ‘잘 했다’, 못 해도 ‘잘 했다’가 전부예요.(웃음) 야구는 결과가 만인에게 공개되는 스포츠잖아요. 잘 못 친 날 당사자는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서 전 중계도 잘 안 봐요. 나중에 기록 정도만 챙기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두 달 전 이 씨는 1년간 해왔던 홈쇼핑채널 MD 일을 그만뒀다. “회사와 집안일을 병행하는 게 힘들어서…”가 이유였지만 남편을 위해 좀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은 마음이 컸으리라.
남편 앞에선 애교만점의 아내지만 시즌 초반 타율이 1할대에 불과해 고민에 빠졌던 박병호에게 “자기가 언제부터 3할 타자였어?”라고 일침을 가해 깨달음을 준 현명한 동반자. 망망대해에서 뱃길을 비춰주는 한줄기 빛인 등대 같은 이 씨가 있어 박병호의 내일을 향한 항해는 ‘순항’일 듯하다.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hong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