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해밀턴(신시내티).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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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신시내티 레즈의 유망주 빌리 해밀턴(23)은 마이너리거이지만 웬만한 빅리거보다 더 유명하다. 지난해 그가 달성한 한 시즌 최다도루 기록(155개) 때문이다. 종전 기록은 1983년 빈스 콜맨이 세웠던 145개.
해밀턴을 처음 본 것은 작년 10월이었다. 마이너리그 최고 유망주들만 뛸 수 있다는 애리조나 가을리그(AFL)에서였다. 당시 베이스를 향해 질주하는 그의 모습을 본 관중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와, 빠르다.”
과연 남보다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도루를 잘할 수 있을까?
한국프로야구 최다도루 기록(550개) 보유자인 전준호 NC 다이노스 코치는 “빠르다고 무조건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도루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선 상대팀 투수의 습관이나 공 배합 등을 읽어내는 능력과 경기흐름을 파악하는 센스도 필요하다”며 “해밀턴의 한 시즌 도루 155개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대단한 기록”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미시시피 출신의 해밀턴은 2009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신시내티에 지명돼 프로에 진출했다. 프로 첫 해 루키리그에서 뛴 그는 타율 0.205 14도루의 저조한 성적을 남겼지만 프로 2년 차인 2010년부터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2010년 타율 0.318에 도루 48개를 기록하더니 이듬해인 2011년에는 단숨에 한 시즌 도루 103개를 달성했다. 이때부터 해밀턴의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2년 더블 A에서 뛴 그는 총 132경기에 출전해 도루 155개를 성공시켰다. 타율(0.311)도 좋았다. 2년 연속 3할 타율에 100 도루 이상을 기록하자 신시내티는 하루라도 빨리 해밀턴을 빅리그로 콜업시키기 위해 유격수였던 그를 중견수로 전향시켰다.
중견수 데뷔무대였던 작년 AFL에서 해밀턴이 안정된 모습을 보여줬다면 신시내티가 추신수를 영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을 정도로 해밀턴에게 거는 구단의 기대는 매우 크다. 아울러 해밀턴이라는 유망주가 있기 때문에 추신수와 신시내티의 인연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올 시즌 트리플 A에서 출발하는 해밀턴이 중견수로 안정된 수비능력만 보여준다면 언제든지 빅리그로 콜업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검증된 도루 능력에 스위치 타자인 해밀턴의 장점 때문에 혹 추신수가 좌투수에 약한 모습을 보이면 상대팀 투수에 따라 추신수와 해밀턴이 번갈아 출전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동아닷컴은 최근 국내 언론 최초로 해밀턴을 미국 현지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빌리 해밀턴(신시내티). 동아닷컴
다음은 해밀턴과의 일문일답.
-최근 몸 상태는 어떤가?
“좋은 편이다. 며칠 전에 경미한 부상을 당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건강하게 시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하고 있다.”
-유격수에서 중견수로 이동했다. 어려운 점은 없나?
“수비 위치가 바뀌어 새로운 곳에 적응해 가야 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중의 입장에서 보면 외야수의 임무가 단순히 뜬 공을 잡는 것으로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특히 공이 날아오는 각도와 수비범위가 내야와 외야는 전혀 다르다. 줄곧 우익수로만 뛰었던 추신수도 중견수로 수비위치가 바뀌자 그 곳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나 또한 중견수로 성공하기 위해 수비연습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 팀에는 유능한 코치들이 많아 그들에게 외야수비를 잘 배우고 있으며 또한 추신수의 모습을 보면서도 많이 배우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껏 단 한번도 외야수 경험이 없나?
“그렇다. 프로진출 후 줄곧 유격수로만 뛰었다. 외야수로 자리 잡는 게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팀이 원한다면 그리고 팀을 위해서라면 반드시 외야수로 멋지게 변신해 팀 전력에 보탬이 되고 싶다. 그게 또 내 임무이기도 하다.”
-구단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당신을 빅리그로 콜업시키기 위해 중견수로 전향시켰는데 갑자기 추신수를 영입했다. 이 점이 당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없나?
“추신수의 영입이 내 야구인생에 끼치는 악영향은 전혀 없다. 알다시피 그는 훌륭한 선수이다. 추신수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구단에서 나를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합류시킨 이유는 추신수의 플레이를 보면서 공수 양면에서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그를 지켜보면서 배운 게 많다. 야구는 끊임없는 배움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올 시즌 그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많이 배울 계획이다.”
-올 시즌은 어디에서 시작하나?
“트리플 A에서 시작한다고 들었다.”
-올 시즌 목표가 있다면?
“지금 상황에서 수치상의 목표를 말하기는 좀 이른 것 같고 우선은 건강하게 한 시즌을 잘 마치고 싶다. 부상만 없다면 공수주 모든 면에서 지난해 보다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야구를 맨 처음 시작한 건 언제인가?
“5~6세였던 것 같다. 동네 리틀리그에서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
빌리 해밀턴(신시내티). 동아닷컴
-야구를 시작한 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고등학교 때 주(州) 챔피언십을 차지했을 때 가장 기쁘고 행복했다.”
-마이너리그 한 시즌 최다도루 기록을 세우며 유명인이 됐다. 비결이 있다면?
“나와 내 형제뿐만 아니라 우리 집안 사람들 대부분이 스포츠에 재능이 있다. 비록 야구선수는 나 하나뿐이지만 부모님에게 좋은 재능을 물려받은 게 비결인 것 같다. 아울러 개인적으로 도루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한 것도 비결일 것이다.”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도루비법이 있나?
“그런 건 없다. 다만 예전에는 진루하면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뛰었는데 작년부터는 코치들의 조언에 따라 상대팀 투수들의 투구습관이나 볼 배합 등을 파악하는 능력을 기르고 있다. 코치들이 그러는데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면 마이너리그에 비해 도루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라. 항상 노력해야 한다.”
-어려서부터 잘 뛰었나?
“어렸을 때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내 형제나 사촌들이 장난으로 나를 때리고 도망가면 그들을 잡으려 나름 최선을 다해 뛰어봤지만 늘 그들보다 뒤쳐졌을 만큼 어릴 때는 잘 뛰지 못했다. 당시 그들에게 ‘두고 봐라. 언젠가는 너희들 보다 더 빨리 뛰겠다’고 말하면 그들이 나를 비웃을 정도였다.”
-지금도 그런가?
“(웃으며) 지금은 우리 집안 사람 그 누구도 나와 달리기로 경쟁할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도루 외에 자신의 장점이 있다면?
“잘 알겠지만 나는 절대 중장거리 타자는 아니다. 하지만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스위치 타자이다. 프로에 진출한 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스위치 타자로 변신했고, 지난 3년간 평균 3할 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징크스가 있나?
“특별한 징크스는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야구를 늘 즐겁게 하고 싶다. 그래서 경기 전 라커룸에서 팀 동료들을 모아 원형으로 세워놓고 가운데에서 내가 춤을 추면서 흥을 돋는 일을 주도한다. 그러면 나뿐만 아니라 팀원들도 즐겁게 경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좋다.”
-경기나 연습이 없는 날은 주로 무엇을 하며 지내나?
“특별히 하는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집 안에만 있지는 않는다. 주로 밖에 나가 시간을 보내는 스타일이다. 야구나 농구 등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거나 수영이나 볼링을 하는 등 주로 스포츠나 레저와 관련된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빌리 해밀턴(신시내티). 동아닷컴
-지금 이 순간 당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3가지만 꼽으라면?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야구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TV? 컴퓨터? 아니 스마트폰인가? 마지막 하나는 잘 모르겠다. 하하.”
-별명이 있나?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별명은 없지만 주위 사람들은 나를 스피디(speedy) 또는 퀵(quick) 등으로 부르곤 한다.”
-만약 야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농구나 미식축구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학창시절 야구뿐만 아니라 농구와 미식축구도 했었고 이 두 종목도 나름 잘했었다.”
-한국에도 당신 팬들이 많다.
“(웃으며) 추신수가 그렇다고 하더라.”
-그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한국에서도 나를 알고 응원해 준다니 고맙다. 올 해도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거둬 한국 팬들에게도 큰 기쁨을 선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메이저리그에는 언제쯤 올라갈 것 같나?
“잘 모르겠다. 추신수가 올 시즌 분명 잘 할 것이기 때문에 나로선 전혀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코칭스태프 판단에 때가 됐다고 하면 그때가 바로 적기일 것이다. 그 때를 위해 맡은바 내 임무를 열심히 수행하면서 기다리겠다.”
로스앤젤레스=이상희 동아닷컴 객원기자 sanglee@indiana.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