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선수들은 비 시즌인 6월에 체력을 만드는데 집중한다. 올 시즌을 앞두고 김호철 감독(맨 오른쪽)이 복귀한 현대캐피탈은 특히 강도 높은 체력훈련으로 유명했다. 사진제공|현대캐피탈
KOVO컵 끝나면 여름휴가·전훈으로 기분전환
훈련과 경기 합숙만 있는 프로배구선수의 생활패턴이지만 그 속에도 변화는 있다. 직장인도 계절과 시기에 따라 업무의 강도가 달라지듯 배구선수들에게도 그런 패턴이 있다.
선수들에게 가장 힘든 때는 6월이다. 새롭게 팀을 만들어 체력훈련에 집중할 때다. 감독들도 훈련의 강도를 높인다. 평소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까지 시킨다. 선수들은 따라야 한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6월30일이 선수등록 마감이다. 배구선수 생활을 더 이어가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있는 선수들은 죽기 살기로 버텨내야 한다.
한국배구연맹(KOVO)컵이 끝나면 짧은 여름휴가를 마치고 본격적인 훈련이다. 해외 전지훈련도 있고, 바다나 산에서 체력훈련을 하는 기회도 있다. 일반인처럼 바캉스는 꿈도 못 꾸지만 선수들도 이런 식으로 여름을 넘긴다. 선수들은 비시즌보다는 차라리 시즌이 더 편하다고 말한다. 반복되는 훈련만 있는 비시즌보다는 경기 스케줄에 맞춰 훈련강도를 조절하는 시즌이 편하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경기를 하다보면 선수들도 기분전환을 할 기회는 있다.
라운드별로는 1∼2라운드가 가장 힘들다. 각 팀이 상대 팀과 가진 기량을 모두 겨뤄보는 때다. 모자란 것이 있으면 경기 뒤 즉시 보강하려고 한다. 감독들도 선수들을 다그친다. 드러난 약점을 보완하지 않으면 다음에 만나도 이기기 어렵기에 훈련의 강도는 높다. 오전 오후 야간훈련이 기본 옵션이고, 어떤 팀은 새벽훈련도 한다.
삼성화재는 하루 4차례의 훈련이 기본메뉴다. 베테랑은 나름대로 조절해가면서 새벽이나 야간 자율훈련에 빠질 수는 있지만 젊은 선수들은 모두 동참이다. 간혹 새벽에 코트에 들이닥치는 감독의 매서운 눈초리를 의식해야 한다. 현대캐피탈은 훈련장과 숙소를 함께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선수들이 야간훈련에 참가한다. 코트에서 동료들이 훈련하는 소리를 듣고서도 그냥 방에 누워 있을 강심장의 선수는 없다.
3라운드는 유혹의 시기다. 외국인 선수들이 가장 힘들어한다. 연말연시, 크리스마스 연휴기간에 배구를 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체력도 떨어질 때다. 감독은 선수들의 생활관리에 신경이 곤두선다. 예전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은 숙소에 세워둔 선수들의 승용차 위에 몰래 작은 돌을 올려놓고 잠을 잤다. 다음날 그 돌이 떨어져 있으면 선수가 밖에 나갔다왔다고 생각하고 뺑뺑이를 돌렸다.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도 새벽에 주차된 선수들의 승용차의 각도를 유심히 살폈다.
5라운드는 힐링의 시간이다. 팀의 시즌 성패는 이미 결정났다. 감독들도 더 이상 선수들을 다그쳐봐야 답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속으로 참고 넘긴다. 못한 팀일수록 선수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칭찬을 많이 한다. 팀이 어려울수록 감정에 상처를 주는 행동은 금물이다.
최근 현대캐피탈은 웜업존에서 열심히 사기를 올리는 선수를 대상으로 보너스를 준다. 농구는 식스맨이 강한 팀이 강팀이다. 배구도 웜업존에서 대기하는 선수들이 어떤 마음으로 경기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삼성화재는 4라운드 막판 2연패를 당한 뒤 선수들끼리 영화도 함께 봤다. 훈련보다는 머리를 식히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고 봤다. KGC인삼공사 이성희 감독은 이번 시즌 힐링으로 큰 성과를 냈다. 지난 시즌 속절없는 꼴찌 팀이 올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을 눈앞에 둘 정도로 반등에 성공한 이유는 패배의 상처를 잘 치료해서였다. 선수들의 상처 난 마음을 보듬어주는 것이 봄 배구에 탈락한 팀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