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추격조 전유수는 피로와 비난의 이중고 속에서 묵묵히 공을 던지고 있다. 29일까지 22경기에서 벌써 26.2이닝을 투구했다. 그래도 그는 “2군에서 보냈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이 감사할 뿐”이라며 웃었다. 스포츠동아DB
이재영 이탈로 호출 더 잦아져…“이젠 안나가면 이상해요”
삼성 류중일 감독은 “야구는 기록경기”라는 말을 곧잘 한다. 류 감독이 말하는 ‘기록경기’의 의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뜻과 좀 차이가 있다. 류 감독의 메시지는 “선수는 기록이 걸려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 이런 심리를 선수를 기용하는 타이밍을 잡을 때 활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쉽게 말해 같은 구원등판을 시켜도, 홀드나 세이브 기록이 걸려있을 때와 아무 결과물이 없을 상황일 때, 동일한 투수라도 구위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패전처리까지 맡아야 하는 추격조 투수들은 2중의 어려움을 안고 싸우는 셈이다. 힘든 상황에서 등판하는데다 잘해봤자 티도 안 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야구가 조직경기인 이상, 누군가는 이 보직을 해줘야 팀이 돌아간다. 잘 하면 묻히고, 못 던지면 욕먹기 딱 좋은 자리다. SK의 경우, 전유수(28)가 피로와 비난의 이중고 속에서 묵묵히 공을 던지고 있다.
● “안 나가면 괜히 이상해요”
비슷한 보직을 나눠 맡던 이재영이 구위저하로 이탈한 뒤, SK 이만수 감독이 전유수를 호출하는 일이 더 잦아졌다. 29일까지 전유수는 22경기에 등판해 26.2이닝을 투구했다. 불펜투수 중에서 진해수(28경기)와 박정배(27경기) 다음으로 많이 나왔고, 박정배(29.2이닝) 다음으로 많이 던졌다. 투구수가 469구에 이른다. 전유수는 2013시즌에도 54경기에 등판했다.
어깨나 팔에 탈이 날 법도 한데 야구하고 나서 아픈 적이 없었다. “몸이 유연하지도 않은데 괜찮다”고 스스로도 신기해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원래 그렇지 않았는데 이젠 불펜에서 몸도 빨리 풀리는 편이다. 사람인 이상, 힘이 들 때도 있지만 못 던지겠다고 한 적은 없다. 전유수는 “연투 뒤에는 ‘무조건 휴식’으로 지정된 날이 있다. 그런 날에도 내가 나갈 것 같은 상황이 오면 어쩐지 마음이 불편하다”고 웃었다.
● 반야심경 필사해 마음훈련
전유수는 경찰청에서 마무리투수로 활약했었다. “야구인생에서 가장 좋은 공을 던졌던 시절”로 회상한다. 시속 140km 후반 직구를 던졌다. 그때 당시 SK 2군감독인 이 감독의 눈에 띈 것이 결국 트레이드로 이어졌다. 이 감독은 2012년 5월 넥센에 포수 최경철을 내주고, SK로 전유수를 데려왔다. 그때만 해도 ‘전유수가 누구야?’했던 의외의 거래였다. 기회라고 생각한 SK에서 전유수는 꿈에 그리던 1군선수가 됐다. 그 마음이 지금 이 보직에서 던질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왜 내가 이런 상황에서 던지지?’란 불만이 아니라 ‘언제 1군에서 한 번 던져보나’란 간절함을 지녔던 2군에서의 8년 세월을 떠올리면 지금에 감사하게 된다”고 전유수는 말한다.
물론 언젠가 홀드도 많이 올리고 싶고, 마무리도 해보고 싶다는 꿈은 여전하다. 다만 당장은 쌓을 것이 많은 시간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어머니의 권유로 전유수는 반야심경을 필사하고 있다. 일기 쓰듯 매일 꾸준히 하고 있다.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말한다. 그런 꾸준함이 전유수를 지탱하고 있었다.
목동|김영준 기자 gat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matsri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