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양학선, 더 이상 미안하고 죄송할 이유 없다

입력 2014-09-26 16: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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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 죄송합니다.”

큰 스포츠 이벤트나 국제대회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우리 선수들의 소감이다. 금메달이 아닐지라도 메달권에 진입하는 성적을 올린 것은 박수 받아 마땅하지만, 웬일인지 이들은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한다.

이번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이 장면은 어김없이 반복됐다. 금메달 후보로 큰 기대를 받았던 수영의 박태환(25·인천시청)과 체조의 양학선(22·한체대)은 은메달을 목에 걸고도 “죄송하다”를 연발했다.

박태환. 동아일보DB.

박태환. 동아일보DB.



‘마린보이’ 박태환은 지난 21일 인천 문학박태환수영장에서 열린 대회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경기 직후 박태환은 “많이 힘들다. 기록이 좋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많이 와주셨는데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죄송스럽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23일 400m 결승에서도 동메달 획득 후 “아쉽기보단 계속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힘이 많이 부치는 것 같다. 남은 경기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내가 할 도리인 것 같다. 많이 위로해주시고 응원해 주셨다. 마음이 무거워진다”며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다.

‘도마의 신’ 양학선(22·한체대)은 25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기계체조 남자 도마 결승에서 1·2차시기 평균 15.200점으로 2위에 올랐다. 값진 성과에도 그는 “처음 2등을 해봤고, 씁쓸함을 알았다.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도 든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들은 기초 종목 불모지 한국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선수들이다. 박태환은 2008 베이징 올림픽, 양학선은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수영과 체조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태환은 한국 수영은 물론이고, 세계에서도 인정 받는 슈퍼스타다. 많은 스타 선수들도 그를 인정한다. 양학선도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선수다. 이미 수차례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한 이들이 죄송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스포츠 강대국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종목들에서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성과였지만, 어느 순간 이 성과는 보는 이들의 눈을 높였다. 그리고 당연한 듯 금메달을 기대하는 시선들은 선수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양학선. 동아일보DB.

양학선. 동아일보DB.



이번 아시안게임 참가 직전 박태환은 훈련 장소조차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다. 양학선은 부상으로 제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했다. 허벅지 부상은 도마에서 가장 중요한 도약에 영향을 미쳤다.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닌 상황에서도 성과를 냈지만 이들은 밝게 웃지 못했다.

다행히 최근 이들에게 높은 기대치를 제시하며 성적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박태환이 400m 동메달을 획득하자 포털 사이트에는 누리꾼들의 ‘잘했다! 박태환’이라는 검색어가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그동안 한국 스포츠는 ‘국위선양’에 초점을 두고 성장해 왔다. 기적적인 경제 성장과 궤를 같이 하며 아시안게임, 올림픽, 월드컵 등을 개최했고, 국민들은 ‘우리들의 국가대표’가 해외 선수들을 꺾고 승리하는 모습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열광하며 한국에서 스포츠는, 스포츠 자체의 순수성보다는 내셔널리즘적인 성격을 지녀 왔던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지난 2월 소치동계올림픽에서 ‘피겨 여왕’ 김연아의 은메달을 격려하고 이번 박태환의 동메달을 격려한 국민들의 행보는 성과보다 과정을 응원해줄 수 있는, 보다 성숙해진 국민의식을 반영하는 반가운 예다.

더 이상 그들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충분히 아름답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박수를 쳐주는 성숙한 문화 또한 곧 자리잡을 것이다.

동아닷컴 송치훈 기자 sch5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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