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연씨가 보스턴에 입성하게 된 것은 상임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의 힘이 컸다. 지난해 7월 미국 탱글우드 뮤직페스티벌에서 보스턴 심포니를 처음 지휘했던 성씨는 며칠 뒤 레바인이 신장암 수술을 받으면서 대타로 다시 한 번 지휘봉을 잡았고, 이것이 부지휘자로 자리를 잡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 레바인과는 평소 자주 만나시겠죠? 옆에서 본 레바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자주 만나지는 못 해요. 시즌 중에 아홉 번 정도 오시니까요. 오셨을 때 제가 없을 수도 있고. 레바인은 오케스트라와 소통을 너무너무 잘 하세요. 우리들이 알고 있는 ‘난 마에스트로야!’하는 근엄한 독일 지휘자상이 아니죠. 뮤지션들을 정말 인격적으로 대하시고, 존경해 주시죠. 리허설 도중 농담도 잘 하시고요. 저는 레바인이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천재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릇이 큰 분이죠.”
- 말러를 특히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영혼이 정화되는 음악’이라고도 하셨죠. 말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신다는 말도 있습니다.
“미국에 간 이후로는 시간이 없어서 못 즐겨요. 시간이 나면 듣죠. 연주여행을 자주 다니고, 사람들과 공적인 접촉을 많이 하다보면 아무래도 감정이 고갈된다고 해야 할까. 그럴 때 말러 음악이 품은 내면의 세계가 도움이 되죠. 지휘자 블롬슈타트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말러가 신을 만나려고 노력한 사람이라면, 브루크너는 신을 만난 사람이다’. 말러를 듣고 있으면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아요. 인간적인 내면의 갈등, 무언가에 대한 갈급함. 이 세상에서 채워지지 않는 것들이 음악의 카타르시스 끝에 가면 해소가 되지요. 말러 지휘요? 아직은 안 했는데, 상당히 바라고 있어요.”
- 일견 성공가도만 걸어온 것 같지만 힘든 시절도 있었겠죠?
“유학시절이죠. IMF 때는 경제적으로도 어려웠고. 사실 저는 지휘공부를 선생님 없이 시작했어요. 로이터 교수님께서 ‘입학시험 두 달 전부터 레슨을 해주마’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제가 알아서 해야 했죠. 지휘란 것이 지휘봉만 흔드는 게 아니잖아요. 총보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도, 오케스트라 악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전혀 몰랐어요. 시간이 너무 부족했죠.”
지휘 입학준비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피아노 졸업시험과 함께 콘서트도 2회나 치러야 했다.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자칭 ‘묻어가는 스타일’이었던 성씨는 이때 자신을 꽉 다잡았다. 하루 4시간 수면의 날이 이어졌다.
“지금도 그때 생각이 많이 나요. 간혹 마음이 풀어지거나 할 때면 스스로 채찍질 하면서 새벽 2, 3시까지 악보를 들여다보던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하죠.”
- 지휘대 위에서가 아닌 평소의 ‘성시연’은 어떤 사람일까요?
“하하! 뭐라고 해야 하죠? 음 … 까다로운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편하다고 해야 하나. 유학생활을 통해 어려움도 겪고, 고민의 시간도 가지면서 남에게는 관대하려고 해요. 스스로에게는 가혹할지라도 타인에게는 관대하고픈 스타일.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너 지휘자 맞냐?’고 하기도 해요. 가끔은 누가 오케스트라에 와서 지휘자를 찾죠. 저는 여기 있는데, 저보고 ‘지휘자 선생님 어디 계시냐?’고 물어요. 하하하!”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서울시향 홍보담당자 백수현씨가 “정말 편하세요. 저희하고도 이야기도 많이 나누세요”하고 거든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셨냐”고 물으니 성씨가 “우리요? 시집가자는 얘기만 하는데요”하고 또 웃는다.
- 그러고 보니 ‘때’가 되신 것 아닙니까? 설마 음악하고 평생 둘이만 사실 생각은 아니실 테죠? 결혼계획은 있으신가요?
“남자친구도 없는데요 뭐. 그래서 올해는 목표를 ‘그런 쪽’으로 세웠어요. 혼자만 지내지 말자. 스타일이요? 착한 남자요. 전 외모는 안 봐요. 여자도 마찬가지지만 외모란 것이 살다 보면 익숙해져버리잖아요. 내면세계가 깊고, 그릇이 큰 남자가 좋죠.”
인터뷰 이틀 뒤, 성씨는 서울시향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시벨리우스의 ‘포욜라의 딸’,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2번’, 버르토크의 ‘중국의 이상한 관리’가 이날의 프로그램이었다.
소년처럼 씩씩하게 포디엄을 향해 걸어들어 온 성씨는 해외 전문지들의 평가처럼 ‘우아하면서도 격정적으로’ 연주자에게나 관객에게나 쉽지만은 않은 이날의 레퍼토리를 환상적으로 지휘해 보였다.
공연이 끝난 뒤 성씨는 몇 번이나 단원들을 일으켜 세워 관객의 박수를 나누어 돌렸다. 밝게 웃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고 강하게 보일 수 없었다. 손바닥이 얼얼해지도록 박수를 보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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