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문화프롬나드]사람들은왜카르멘을보고웃었을까?

입력 2009-09-22 15: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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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늦게부터 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젖은 거리의 눅눅함을 고스란히 공연장 안으로 갖고 들어왔다. 사람들의 옷과 핸드백, 구두에서조차 비 냄새가 났다.

이런 날엔 어쩐지 보컬이 듣고 싶어진다. 이왕이면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극장이면 좋겠다.

그래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서울시합창단의 연주회를 들으러 가기로 한다. ‘4夜4色’이라는 공연으로 4차례에 걸쳐 오페라 아리아와 합창을 연주한다.

21일의 프로그램은 그 첫 날로 오페라 아리아다. 곡목을 세어보니 18곡이었다.

우측 끝 쪽 자리에 앉아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무대 뒤편에서 금관주자가 연습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관중들의 술렁임이 빗소리처럼 후드득 거린다. 눈을 감고는 ‘잊지 말고 우산을 가져가야지’하고 생각한다.

좌석은 군데군데 빈 자리가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월요일 저녁인 것이다. 음악을 듣는 일 말고도 할 일이 많은 날이다.

공연은 서울시립합창단원들이 한두 명씩 나와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르는 일종의 갈라 콘서트였다.

모차르트 ‘돈 조반니’의 아리아 ‘거기서 그대 손을 잡고’는 소프라노와 바리톤의 이중창. 돈 조반니가 순박하지만 애교가 철철 넘치는 시골처녀 체를리나를 유혹하는 장면이다.

돈 조반니의 바리톤은 뭐랄지, 마치 홍록기와 최홍만을 섞어 놓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프라노는 체를리나치고는 약간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그런대로 귀여운 시골처녀의 연기를 잘 해냈다. 첫 곡에서 점잖을 떨던 관객들도 ‘브라보’를 외치며 흥겨워 한다.

어쩐지 외국 시골마을의 음악회같은 느낌이다. 무엇보다 관객의 시선이 따뜻하다.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대극장에서처럼 공간을 울리는 웅장한 박수소리는 아니지만 확실히 온기가 느껴졌다.

반면 무대에 오른 가수들은 어딘지 모를 수줍음 같은 것이 있었다. 평소 합창단 속에 묻혀 있던 터라 이런 무대가 아무래도 낯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수들은 노래가 끝나면 인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쪼르르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예의 홍록기씨는 ‘마술피리’의 파파게노와 파파게나 2중창에서 재등장했다. 파파게노는 홍록기씨, 파파게나는 ‘코지판 투테’의 ‘바위처럼’을 여유만만하게 불렀던 소프라노다.

홍록기씨 외에 흥미로웠던 인물은 ‘카르멘’으로 나온 메조소프라노.

카르멘 전형의 붉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무대로 걸어 나오자 관중석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일 트로바트레’의 아리아 ‘아들아 이불 좀 덮어다오’를 부르기 위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왜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웃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녀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반가움의 표시로 웃었는지도 모른다. 혹시나(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녀가 카르멘치고는 다소 넓은 어깨를 갖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가수에게는 실례가 되는 일이다.

지휘자 보리스 페레누와 출연 가수들이 모두 손을 맞잡고 커튼콜을 하며 이날의 작은 음악회는 끝났다.

홍록기씨도 여유만만씨도, ‘여자의 마음’을 우렁차게 불렀던 스모씨(상당한 거구였다)도 카르멘씨도 모두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끝으로 이름을 밝혀드린다. 홍록기씨는 바리톤 권상원, 여유만만씨는 소프라노 정주연, 스모씨는 테너 한승용, 카르멘씨는 메조소프라노 김오수씨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꽤 재미있는 음악회였다. 무엇보다 어깨에 힘을 빼고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홍록기씨와 카르멘씨의 공연은 꼭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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