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관전하는 또 다른 묘미는 화려하고 독특한 세리머니다.
축구는 볼 기회가 적다는 희소성 때문에 의미가 있다. 배구는 특정 팀이 세트를 따내려면 최소 25득점 혹은 15득점을 해야 하므로 ‘보고 또 봐도’ 결코 질리지 않을 다양함이 흥미를 돋운다.
만약 승부가 듀스로 이어진다면 세리머니가 많게는 무려 50회 이상 나올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패기와 혈기로 똘똘 뭉친 젊은 선수들은 물론, 나이 서른 줄에 접어든 베테랑들도 세리머니에 가세해 팬들과 함께 호흡한다.
당연히 세리머니의 형태는 제각각이다.
삼성화재 고희진은 블로킹을 성공시키면 2002한일월드컵 때 히딩크 감독을 연상시키는 멋들어진 어퍼컷 제스처를 취한다.
항상 똑같은 것만 고집하지 않는다. 두 팔을 활짝 펴고 빙글빙글 코트를 도는 것은 기본이고, 때론 무릎을 꿇고 총을 쏘는 시늉을 한다.
팀 동료들은 고희진이 일단 뛰기 시작하면 “쟤, 또 김연아 따라한다”며 함께 웃는다. 고희진은 “일부러 동작을 크게 한다. 우리 팀에 형들이 많아 내가 먼저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며 일종의 의무감도 세리머니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시사했다.
현대캐피탈과 LIG손해보험을 대표하는 ‘꽃미남 스타’ 박철우와 김요한도 세리머니 행렬에 동참한다. 축구에서나 볼 수 있었던 한쪽 무릎을 굽힌 채 신발 닦기 시늉을 하거나 음악가처럼 우아한 표정으로 바이올린을 켠다.
하지만 세리머니가 공격수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상대 코트에 공을 내리 찍을 기회가 없는 리베로에게도 자신의 세리머니가 있다. 삼성화재 여오현은 어깨동무를 즐긴다. 이 때문에 2m에 육박하는 동료에 매달리는 장면이 간혹 연출돼 웃음을 자아낸다.
여자부의 경우, GS칼텍스 데스티니가 대표적이다. 미 대학스포츠(NCAA) 높이뛰기 선수로 챔피언 경력까지 지닌 데스티니는 필요하다 싶을 때 두 발로 콩콩 뛰며 자신이 육상 선수란 점을 드러내곤 한다.
“이브가 동료들에 짜증을 잘 냈다면 데스티니는 충만한 에너지로 동료들의 파이팅을 돋운다”고 GS칼텍스 관계자는 말했다. 김민지는 “티니(애칭)를 보고 있으면 그냥 즐겁고 웃게 된다”고 든든해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