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호, 우루과이에 1-2 분패…8강진출 좌절
허정무호 ‘캡틴’ 박지성(29·맨유)이 27일(한국시간)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분패한 뒤 믹스트 존(공동취재구역)에 들어섰다. 표정은 비교적 담담했다. “내용은 오히려 더 좋았는데 졌다”는 물음에는 “축구란 게 그런 거죠”라고 짧게 답했다. 패배의 아쉬움을 애써 삭히려는 것 같기도 했고 승패에 초연한 듯 보이기도 했다.
잠시 후 진행된 공식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면 한 마디로 그의 심정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16강에서 떨어졌지만 한국 축구의 희망을 봤다”는.
● 해외파 경험이 큰 자산
우루과이와 경기 전날 외신 기자가 “2002년과 지금 멤버를 비교해 달라”고 하자 박지성은 “지금은 비교할 수 없다. 2002년은 역사상 가장 강팀이었고 2010년은 현재 발전을 하고 있다. 이번월드컵이 끝나면 2002년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때는 더 나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답했다.
이번 대표팀의 월드컵 성적도 2002년 4강에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묻어났다. 8년 전, 4년 전에 비해 크게 늘어난 해외파의 비중이 자신감의 밑천이었다. 단순히 높아진 이름값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경험이다. 2006년에도 분명 해외에서 활약하는 선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현재 유럽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 뿐 아니라 예전에 뛰었던 선수들도 많다. 유럽과 남미를 상대로 큰 무대에서 경기력을 100%, 120% 보여줄 수 있다는 건 그동안 해외 리그의 경험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축구가 더 발전하기 위한 과제로는 수비를 들었다.
그는 “진정한 강팀으로 가기 위해서는 수비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한국은 조별리그 3경기와 16강 1경기 등 4경기에서 8골을 내줬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순간 집중력을 잃어 내준 실점.
박지성은 “공격수와 미드필더만큼 수비수들도 해외로 나갈 기회가 생겨야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 주장으로 치른 월드컵
이번 대회는 그에게 더 특별했다. ‘주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치른 첫 월드컵이었다. 기존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 아닌 동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줄 아는 ‘부드러운 리더십’이 큰 화제를 낳았다.
박지성은 ‘실력’으로도 ‘솔선수범’했다. 이번 월드컵 4경기에서 보여준 기량은 단연 돋보였다. 스타플레이어들을 만나도 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 창의적인 패스와 지칠 줄 모르는 체력, 무엇보다 그는 공간을 활용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선수였다.
박지성은 “예전에는 내 몸 관리만 잘 하고 운동장에서 나만 잘 하면 괜찮았지만 동료들 특히 후배들도 자신의 가진 기량을 모두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내 역할이었던 것 같다. 선수들이 잘 따라준 덕에 무리 없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 대표팀은 올스타가 아니다
박지성은 작년 6월 “대표팀 은퇴시기를 생각하면 2011년 아시안 컵 무대가 될 것 같다”고 밝혀 화제를 낳았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이 끝난 직후 다음 월드컵 출전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출전했고 다음 월드컵은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고 즉답을 피했다.
“팬들이 원하고 있지 않겠느냐”는 말에는 정답을 내놨다. “대표팀에서 내 기량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대표팀은 올스타 팀이 아니다. 인기가 아니라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 박지성 다운 ‘모범답안’이었다.
포트 엘리자베스(남아공) |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