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커버스토리]‘고지전’ 고수 “내 얼굴이 작아서” 망언(?)…솔직 인터뷰

입력 2011-07-22 11:3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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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전면에 크게 얼굴이 나온 이유 물었더니 너스레
●혼자만 몸 아꼈느냐는 말에 "억울합니다"
●술 취하면 지갑 털어 후배들에게 용돈 챙겨주는 멋진 선배

고수는 "영화 \'고지전\'은 전우들의 이야기"라며 "동료애를 가지고 긴 시간 동안 촬영했다. 그런 감정이 영화에 잘 녹아들은 것 같아 좋았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배우 고수(33)는 생각이 깊고 느린 남자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기자들이 건넨 명함을 만지작거리며, 손가락 끝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마치 기자 이름을 외우려는 듯 보였다.

그는 최근 영화 '고지전' 홍보로 정신없이 바쁘다. 이 날도 몇 번째 인터뷰냐는 물음에 그는 "숫자를 세진 않아요. 궁금하지도 않고, 물어보지도 않아요"라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 그가 너무도 '진지한' 얼굴로 몇 마디 농담을 했을 때는 충격적(?)이었다. '고지전' 포스터에 선배 신하균보다 더 전면에 크게 나와 있어 이유를 묻자, "내 얼굴이 더 작아서?"라고 농담했다.

1999년 박카스 CF로 데뷔한 고수에겐 줄곧 '꽃미남 배우', '순수 청년' 이미지가 따라붙었다. 밤 10시까지 집에 들어가야 하는 여자친구를 위해 손을 잡고 함께 골목길을 달리는 그의 모습은 '지킬 것은 지키는' 반듯한 청년 그 자체였다. 최근 TV방영을 시작한 식료품 브랜드 CF도 마찬가지다. 섬세하게 요리하는 그의 모습은 여심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런 고수가 변했다. 장훈 감독이 연출한 100억 원대 블록버스터 '고지전'에서 그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고지전'에서 맡은 역할은 '전쟁의 화신' 김수혁 대위. 김수혁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2월 교착상태에 빠진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 고지에서 국군 악어부대를 이끄는 거친 사내다. 전쟁이 망쳐놓은 인간의 표상 같은 존재다.

하지만, "컷" 소리가 나면 그는 다시 싱글벙글해진다. 동료들은 그를 '사차원'이라고 불렀다.

‘고지전’ 포스터. 쇼박스 제공




▶"전쟁 영화,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고지전'은 할리우드 전쟁영화의 한국적 진화물이라는 평단의 찬사를 들을 정도로 영상미를 자랑한다. 장훈 감독은 고개 돌리고 싶은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경남 함양 백암산에서 찍은 전투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 '윈드 토커'를 보는 듯하다. 저격수 신은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못지않다.

그만큼 출연 배우들의 고충은 컸을 터. 고생길이 훤한 영화를 한 이유가 뭘까. 그는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영화니까…'라는 마음에 설마 했죠. 군대처럼 일과가 규칙적이라 깜짝 놀랐어요. 아침에 눈 뜨면 군복 입고, 총 지급받고, 현장에 뛰어 올라가요. '액션!'하면 뛰고 구르고 '컷!'하면 멈추는 일을 반복해야 했죠. 끝나면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산을 내려옵니다. 다시 옷 갈아입고 쉬고, 그런 생활을 지난해 9월부터 6개월간 했죠."

촬영지인 백암산은 45도에 가까운 경사진 곳이다. 살을 에는 듯한 추운 겨울 그는 그곳에서 완전 군장을 하고 뛰고 굴렀다.

-제작보고회 때 "화장품 냄새가 그리웠다"라는 말을 했어요.

"아…. 그 말의 의도는 설명하자면 이거죠.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현장에 갈 때마다 입는 '교복'이 있었어요. 간편하게 오래 입을 수 있고, 또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옷이죠. 현장이 아무래도 산이고, 전투장면이 많아서 항상 흙이 묻고, 화약 냄새가 났으니까. 그걸 오래 입다 보니 냄새가 났어요. 때가 타 옷도 '꼬질꼬질'해졌고, 피부에 각질도 많이 생겼어요. 그렇게 거친 환경이었죠. 그래서 비누냄새가 그리웠어요. 외부에서 다른 사람들이 놀러 오면 면회 온 느낌이랄까. 그럴 때 서로 자신의 모습을 돌아봤어요. (웃음) 그래서 인위적인 방향제나 향들이 그립다는 뜻으로 그런 말을 했죠."

촬영장이 전쟁터이다 보니, 배우가 다치는 일도 부지기수. 그는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다친 적은 없다"며 "날카로운 돌 위에 넘어져 허벅지를 찔리는 일이 있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한 관계자 제보에 따르면, 고수가 전투 장면만 찍으면 집에서 가져온 구급상자를 열어 꼼꼼하게 몸 이곳저곳에 약을 바르곤 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어차피 분장하면 다 지워질 텐데, 약을 그렇게 열심히 바르더라"라고 했다.

혼자만 너무 몸을 아낀 건 아니냐는 기자의 의혹 제기에 고수는 발끈했다.

"억울합니다. 나는 온몸을 던졌습니다. (웃음) 현장에 있는 물건들이 모두 날카롭고, 위험하다 보니, 약을 챙겨간 거죠. 촬영에 들어가면 필사적으로 뛰고, 구르고 해야 했기 때문에 '나 여기 다쳤어요!'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따로 약봉지를 챙겨서 약을 바른 거죠."

고수는 촬영 중 쉬는 날에는 다른 배우들과 등산을 가곤 했다. 싱글벙글 말하는 그와는 달리, 다른 배우들은 산에 가는 게 싫었다고 한다. 류승수와 고창석, 이제훈은 고수가 산에 간 날 나로호 우주센터에 갔다. 고수를 피해 남자 셋이서 우울하게 우주선 견학을 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옥 같은 전쟁을 겪으면서 냉혈한으로 변한 김수혁

혹자는 6·25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말한다. 6·25전쟁의 기록은 1950년 전쟁발발과, 1951년 1·4후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끝나버린다.

'고지전'이 주목한 것은 그 '잊혀진' 2년여 휴전협상 기간 벌어진 일이다.

땅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국군과 인민군은 치열하게 교전한다. 고지의 주인은 하루에도 서너번씩 바뀌고 죽어나간 숫자만 는다. 어린 병사들은 그야말로 소모품처럼 스러져 간다.

그가 연기한 김수혁 중위는 원래 겁 많고 평범한 대학생이었지만, 지옥 같은 전쟁을 겪으면서 냉혈한으로 변해간다.

"김수혁의 매력은 아무래도 책임감과 의무감이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부대원들을 살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이 매력 있었습니다. 또, 연기자로서 캐릭터의 변화를 줄 수 있는 역할이었죠.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군인과는 달리 김수혁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모습에서부터 시작해 전쟁을 겪으면서 변모하니까요. 그런 입체적인 인물을 연기하고 싶었어요."

-김수혁 연기를 하면서 가장 중점을 준 건 어떤 면인가요?

"사실 김수혁도 사람이죠. 그래서 인물에 접근하는 방법도 잔인하고 냉혈한 것보다는 그가 그렇게 변해야만 했던 이유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김수혁은 처참한 전쟁이 만들어 낸 인물입니다. 또, 김수혁은 보여 지는 모습이 굉장히 거칠지만, 한편으론 처음부터 간직해오던 순수한 모습이 남아 있기도 해요. 관객들이 김수혁이 변해야만 했던 이유를 생각해주신다면, 그 인물에 대해 더 잘 이해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영화에서 그는 욕도 많이 한다. 팔을 잃은 어린 아이에게 "넌 팔 병신이야!"라고 말한다.

"극중 캐릭터가 변해요. 그 변화를 표현하는 게 중요했죠. 껍데기만이 아닌 내면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했어요. 거기에 포인트도 필요했어요. 꼬마 아이들에게 욕을 하는 장면이 그거죠. 하지만 실제 촬영할 때는 아이들이 없었어요. 아무리 연기지만, 아이가 그런 말을 들으면 얼마나 충격이 크겠어요? 그래서 감독님에게 아이 없이 찍고 싶다고 말했죠. 수혁은 정말로 전쟁을 증오해요. 하지만 본 걸 방첩대 중위인 친구 강은표(신하균)에게 설명할 수 없어서 '네가 뭘 알아?'라는 식으로 말하죠."

-제대한 이후 특히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에 많이 나오고 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람은 많이 밝아졌어요. 너무 어려서부터 연예계 활동을 해서 그런지, 스스로 맞지 않은 옷을 입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연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전에는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인가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었죠. 하지만 제대 후 달라졌어요. 남자 연기자들은 대부분 병역 의무에 대한 압박이 커요. 다녀오고 나니 이젠 마음이 편해졌어요."

-영화를 찍고 전쟁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겠죠?

"대한민국 남자들은 군 복무 기간, 제대하고 예비군이나 민방위 훈련을 받으면서, 아무래도 전쟁에 대해 항상 마음에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요. 정말 전쟁이 나면 내가 총을 들고 나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죠. 물론 촬영을 하면서 '전쟁이 끔찍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어요. 실제 있었던 일이기도 하고.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는 바람도 있죠."

6·25전쟁 중 이름 없이 스러져간 병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고지전’. 쇼박스 제공




▶자상한 형 같은 장훈 감독, 웃으며 재촬영 요구

-영화 포스터에 선배 신하균보다 얼굴이 더 크게 나왔어요. 외모 때문인가요?

"내 얼굴이 작아서? (웃음) 농담입니다. 글쎄, 잘 모르겠어요."

-장훈 감독이 고수 씨를 캐스팅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처음 장훈 감독님을 만났을 때 전작 '초능력자'를 찍고 있었습니다. 당시 맡은 역할인 규남이처럼 사람 좋게 마냥 웃었죠. 그렇게 반갑고 편하게 만났는데 '고지전' 시나리오를 받고 달라졌어요. 자세부터 깍듯하게 변했습니다. (웃음) 좋은 기회를 주셔서 장훈 감독님에게 감사드려요. 시나리오 속 김수혁이 강렬한 역이라 부담스럽긴 하지만 좋은 기회였어요."

-장훈 감독이 참 자상한 이미지인데, 촬영장에선 어떤가요?

고수는 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기자에게 자꾸 주스를 마시라고 권했다. "드세요. 더 드세요. 아우 남았네. 더 드세요. 다 드셨구나. 여기 한 잔 더 갖다 주세요."

기자가 멋모르고 계속 주스를 마시자, 그가 입을 열었다.

"장 감독님 스타일이 이래요. 목소리가 참 나긋나긋하죠. 좋은 형 이미지죠. 이렇게 자상하게 말씀하시며 계속 연기를 다시 시켜요. 안 할 수가 없어요. 인상이 처음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첫 시사회 때 "연기가 아쉽다"고 자평했는데 왜 그랬나요?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되겠어요? 아무래도 첫 시사회 때는 그런 부분이 보이죠. 한편으로 '고지전'은 전우들의 이야기죠. 오랫동안 고생하고, 동료애를 가지고 긴 시간 동안 촬영을 했어요. 그런 분위기와 느낌이 영화에 잘 녹아들어 간 것 같아서 좋았어요."

-주량은 어떻게 되나요?

"소주 한 병 정도."

-술에 취하면 지갑을 탈탈 털어 종종 후배들에게 용돈을 챙겨줬다고 들었어요. 기분 좋을 때는 5만 원 권으로 준다고.

"(상당히 민망해하며) 아…. 돈이 있으면 그럴 때가 있어요. 돈에 대한 감각이 없어요. 연극하던 애들이다 보니 다들 어렵고. 돈보다 중요한 게 더 많으니까…."

-촬영장이 춥다 보니, 땔감을 자급자족했다죠? 고수 씨가 도끼질을 그렇게 잘했다고 하던데.

"(뿌듯한 표정으로) 애들이 곱게 자라서 그런지 다들 도끼질을 못하더라고요."

-10년 전 KBS '출발드림팀'에 나와 높이뛰기도 잘했죠? 당시 270cm 높이의 뜀틀을 넘었어요.

"(일어서서 시범을 보이며) 그게 제 키보다 훨씬 높으니까 얼마나 무서워요. 그땐 정말 절실했죠. 그리고 제가 의외로 그렇게 힘쓰는 일을 좋아해요. 장작 패고, 불도 지피고, 노숙 야영도 좋아해요. 탐험하는 것도 좋고. 등산도 하고…."


▶'산 사나이' 고수, 등산이 제일 쉬웠어요

-고수에게 산이란? 산과 얽힌 일화가 많아요. 촬영 중간 쉬는 날에도 등산을 제안했다고 하던데요.

"가령 내일이 쉬는 날인데, 부대원들과 무엇을 하나 해서 '산이나 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아침 일찍 식당 앞에서 모여서 산에 갔죠. 물론 경사가 45도가 넘는 백암산에서 촬영은 고생스러웠지만. 산에 가는 건 여전히 좋아요."

싱글벙글 말하는 그와는 달리, 다른 배우들은 산에 가는 게 싫었다고 한다. 류승수와 고창석, 이제훈은 고수가 산에 간 날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나로 우주센터에 갔다. 고수를 피해 남자 셋이서 우울하게 우주과학관 견학을 했다고.

-등산 말고 다른 건 뭐 했나요?

"동네 한 바퀴 뛰고, 길에서 잠깐 헤매다 또 뛰고. 악어 중대 친구들과 에피소드도 많아요. 함양에서 같이 촬영 끝나고 모여서 마을을 뛰기도 하고, 달빛 아래서 10바퀴 넘게 운동장 트랙을 뛰기도 했습니다."

-고수 씨는 팬이 많은데, 어떤 팬이 인상적인가요, 간혹 영화 무대 인사를 가면 팬레터를 들고 난입하는 팬들이 있던데.

"있어요. 기억나요. 부산 팬들인데, 과격하지만 좋아요. '백야행' 때 한 무리의 여성들이 객석에서 '수야! 고개 들어!'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팬들이었습니다. 과격함에 정겨움이 들어 있어요."

-차기작이나 계획을 말해 주세요.

"당분간 관객들을 만나고 난 후에 그 이후의 행보는 정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빨리하고 싶긴 해요. 밝은 역부터 다른 성격의 캐릭터도 해보고 싶고,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선보이고 싶어요."

-끝으로 영화 '고지전' 관객들에게 전할 말씀?

"아직도 영화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그 후 우리가 여기까지 오고 있는 거 아닌가 싶고. 400만 명의 사상자를 낸 한국전쟁에서 300만 명이 중부전선의 고지쟁탈전에서 희생됐어요. 한 뼘을 더 차지하려다 그렇게 된 거죠. 물론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지만, 영화 곳곳에 볼거리도 많고, 또 생각할 거리도 많으니까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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