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자의 인증샷] ‘뮤배’ 김호영, 왜 ‘모차르트’하나 했더니①

입력 2012-02-14 15:06:58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뮤지컬배우 김호영. 스포츠동아DB

또랑또랑한 음성, 거침없는 듯하지만 정제되어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 없는 어법. 기자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그물을 치는 기자의 손을 부끄럽게 만드는 능력.
‘이건 마치 브로드웨이의 스타와 인터뷰하는 것 같잖아’하는 기분을 들게 만드는 배우.
뮤지컬 배우 김호영(29)은 그런 사람이다.

이런 인물을 상대로 하는 인터뷰 공략은 둘 중 하나다. 미리 3박 4일간 치밀하게 전략을 세워 과감히 맞불을 놓던가, 아니면 이쪽이 먼저 무장해제를 하고 스스로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방법이다.
오늘은, 그렇다. 후자다.

- 요즘 연습으로 많이 바쁠 것 같은데요.(무장해제한 말투로)

런스루(처음부터 끝까지 실제 공연처럼 하는 연습) 중이예요. 모차르트가 세 명이라 하루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하고 있죠. 아침 10시 반이나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해요. 연습없는 날은 … 뭐 아는 분은 다 아시지만 제가 놀지 않고 일을 벌이는 스타일인지라. 콘서트니 행사니 비즈니스 미팅이 많아요.

- 뮤지컬 배우가 본업이지만 MC로도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죠. 언젠가 ‘김호영쇼’ 같은 걸 해도 재밌을 것 같은데요.

제 인생 목표 중 하나가 ‘김호영쇼’예요. ‘주병진쇼’나 ‘이홍렬쇼’같은 토크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거죠.

- 굉장히 잘 할 것 같아요.

크크. 저도 제가 잘 할 것 같아요. 뮤지컬 배우로, 무대를 했던 사람으로서 여러 시너지효과를 바라고 있죠. 갖고 있는 예능감으로는 연예인과 공유하며 얘기할 수 있고, 그 밖에도 배우, 스태프 등 다양한 게스트를 초대하고 싶어요. 나름 MC로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죠. 아, 케이크 하나 드시면서 하시죠.

- 연습실 분위기는 어떤가요. 캐스팅을 보면 베테랑과 신인이 고루 투입된 것 같던데요(케이크 맛있군요).

네네네!(김호영은 ‘네’라는 대답을 ‘네네네’로 빠르게 연타하는 습관이 있었다) 연예인들도 투입됐죠. 굳이 얘기하자면 연예인이라고 해도 ‘비기너’가 있는가 하면 경력이 있는 분이 계세요. 예를 들어 신성우 선배님. 신성우 선배님이 제일 연장자세요.

선배님과는 처음 작업을 하는 겁니다. 사실 외모에서 풍기는 카리스마 때문에 좀 어려운 분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너무 편하고, 사람이 굉장히 ‘스윗(sweet)’하시더라고요.
의리야 뭐 이미 얼굴에서 드러나지만 … 후배, 동생들 많이 챙겨주시죠. 하지만 무대에 딱 섰을 때의 존재감은 진짜 대단하세요.

선배님이 극 중 제 아버지로 나오시거든요. 어제 런스루하고나서 문자를 보냈어요. ‘서 계신 것만 봐도 태어난 게 자랑스럽다’라고요.

- 효도하셨군요.
크크, 그렇죠.

- ‘다비치’의 이해리씨도 함께 연습하고 있죠?

이 친구가 굉장히 가능성이 많아요. 연습 초반 때 제가 그 친구에게 말했어요. ”넌 났네. 넌 났어. 넌 괜찮다“고요.
저 거짓말 잘 안 합니다.

그 친구가 가장 많이 걱정하는 건 대사예요. 프랑스 뮤지컬치고는 대사가 많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가 대사를 하는데 ‘어? 좀 배웠나?’싶을 정도로 잘 하더라고요.
가창력도 좋고 무대 위에서 어딘지 순수한 매력이 있죠.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뭔가를 애써서 만들려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하는 편인데, 이게 묘하게 관객 눈에 깨끗해 보이고, 순수해보여요.

○ ‘모차르트!’ 떨어지고 ‘모오락’ 된 건 행운

- 모차르트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은 이미 ‘모차르트!’가 있죠. 일전에 ‘모차르트!’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졌다는 소문이 있더군요. 결국 이번에 ‘모차르트’ 역에 대한 한을 푼 셈이네요. 개인적으로 ‘모차르트’라는 캐릭터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오디션 보러 갈 때마다 제 자신에게 객관적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다’가 있겠군요. 2005년 ‘아이다’ 초연 때 ‘라다메스’ 장군의 노예인 ‘메렙’을 했죠.
그랬다가 2010년 재공연에서 또 ‘메렙’을 했어요. 주변에서는 ‘2005년에 메렙을 8개월이나 혼자 해놓고 또 하냐’고 했죠. 그래서 제가 그렸어요. “아무리 그래도 내가 ‘라다메스’를 할 수는 없잖겠니? 난 메렙이야!”라고요.

모차르트는 말 그대로 저랑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도 잘 어울린다고 해 주었고. 그 말은 결국 이미지 때문이겠죠. 외형적인 이미지요.
사실 그런 것도 있지만 제가 모차르트에 당기는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에요. 남을 잘 의식하지 않을 것 같고, 할 말 다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모차르트지만 내면은 알 수 없잖아요.

모차르트는 밤에 굉장한 불면증이 있었을 것 같아요. 고민이 많고, 생각도 많고. 충동적이고 본능적이지만 안에서는 여러 번 필터를 거쳐 나왔을 테죠.
사실 저도 그런 점이 닮았죠. ‘쟤는 무슨 걱정이 있을까’, ‘아마 생각없이 살 거야’싶겠지만 제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보다 더 생각이 많을 수 있거든요.

모차르트는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더욱 호불호가 강했을 사람입니다. 상처를 받겠지만 태연한 척 했을 수도 있죠.
아마 그 시대에도 안티가 있었을 거예요. ‘나 모차르트야! 신경쓰지 않아’하기까지는 안에서 많이 싸웠을 거 같아요. 제가 그런 부분을 닮았기에, 와 닿은 거죠.

제가 외형적 모습이 모차르트에 잘 어울린다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모차르트의 내면을 건들 수 있는 역할이기에 맡고 싶었어요.
관객들이 작품을 보면서 ‘저 사람(모차르트)도 참 시대를 잘못 태어났구나’, ‘이 시대에 태어나도 그랬겠다’, ‘근데 김호영이 의외로 깊이가 있네?’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 영화 ‘모차르트’는 주인공의 독특한 웃음소리가 유명했죠. 사실 김호영 배우야말로 이 웃음소리에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아요.

푸하핫! 그런가요? ‘모차르트!’ 오디션에 간 것도 ‘이건 딱 나네’하고 갔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죠. 전 안될 때는 금방 버리는 스타일이에요.
‘더 좋은 걸 위해 안 된 거구나’하고 생각해버리죠. 그런데 이번이 ‘딱’ 그 케이스가 된 겁니다.

‘모차르트 오페레 록’은 의상부터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특히 재킷을 많이 갈아입는데 시뻘건 색부터 검정색 레이스, 레오파드, 벨벳, 핫핑크 … 아무튼 옷이 굉장히 흡족해요.

- 1983년생이니 29세. 뮤지컬 데뷔 10년. 적은 나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딘가 ‘철이 일찍 들어있는 배우’라는 느낌을 받고는 합니다. 특유의 어른스러움은 어디에서 유래됐을까요.

사실 제가 빠른 1983년이어서, 활동할 때는 그냥 82라고 하죠.
선천적인 부분이 좀 있는 듯해요. 제가 장남이고 남동생이 한 명 있거든요. 절 처음 보시는 분은 누나가 많은 집안의 막내나 외아들일 거라고 착각하시는 분이 많으세요.

그런데 사실 저와 친한 분들, 예를 들어 옥주현, 정선아, 배해선 배우 같은 분들은 저에게 장남티가 많이 난다고 해요. 기본적으로 식구에게 책임감이 있는 편이죠.

뮤지컬배우 김호영. 스포츠동아DB



○ 고교 때부터 ‘여장배우’로 유명

- ‘여자보다 더 여자같은 남자배우’, ‘여장 전문 배우’라는 타이틀이 늘 붙어 다닙니다. 그런데 이를 싫어하기는커녕 은근히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사실은 좀 즐기는 편이에요. 인이 박힌 것도 있죠.

- 이런 타이틀을 얻게 된 건 언제부터죠.
사실은 역사가 깊어요.
고등학교 때 무대란 걸 처음 밟아봤죠. 1998년에 청소년연극제를 많이 나갔거든요. 지금은 연극제가 많이 죽었지만 우리 때는 피크였어요. 저를 기점으로 전후 1, 2년 정도가 전성기였죠.

대회도 많았어요. 전국청소년연극제 서울 예선·본선, 서울예대 동랑제, 동국대 동국청소년대회, 한국사단법인 한국연극축제 등등이죠. 하여튼 늘 대회를 나갔어요.

제가 남고를 나왔거든요. 남고는 저 말고도 여자 연기하는 남자학생들이 있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목소리, 외모, 감성 등 싱크로율이 높다 보니까 그때부터 일찌감치 ‘여자보다 여자연기 더 잘하는 남학생’이란 꼬리표가 붙게 된 거죠.

오죽하면 동국대 입시를 볼 때 심사위원이 여자연기를 시키시더라고요. 준비한 연기 다 하고 나니까 한 교수님이 다른 교수님한테 “쟤가 여자연기 잘 하는 얘야. 너 한번 해봐”하시더라고요. 준비도 안 했는데. 즉석에서 하니까 심사위원들이 막 웃고 난리가 났죠.

프로로서 무대에 서고 개런티를 받는 상황이라면, 전 제 자체가 상품이라고 생각해요. 상품으로서 가치가 무엇일까요. 남들보다 희소성이 있어야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선 잘 할 수 있는 걸 먼저 해야 한다고 봐요.

모차르트 이후 다른 작품 얘기를 하다보면 주변에서 “모차르트씩이나 했는데, 왜 다시 밑으로 떨어져야 하느냐”고 하기도 해요.
그럼 전 그러죠. “내가 모차르트를 했다고 해서, 그럼 다음에는 ‘영웅’ 안중근을 해야 하냐”고요.

전 너무나도 제 색깔을 잘 알고 있고, 제가 했을 때 더 빛날 수 있는 것을 합니다. ‘햄릿’, ‘안중근’은 못할지 몰라도 ‘렌트’, ‘왕의남자’, ‘모차르트’를 다시 할 때, “이거 김호영이 해야 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된 것 아닌가요.

- ‘여장전문배우’가 ‘트랜스젠더 록커’의 이야기인 ‘헤드윅’은 왜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요.

어느 부분은 일부러 안 하는 것도 있어요. 2003년도 무렵일 겁니다. 처음 헤드윅을 보면서 ‘어 … 어…’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김호영이 헤드윅하면 참 좋겠다”라는 사람들의 생각은 제가 여장역할을 많이 했고 잘 어울린다고 보기 때문이죠. 그런데 헤드윅을 본 당시 제 느낌은 ‘헤드윅은 여장을 하게 된 이유가 본질적으로 다른 역할들과 많이 다르다’였어요. 사회적, 환경적으로 어쩔 수 없이 여장을 하게 된 것이죠.

이런 아픔과 경험이라면 조금 더 나이를 먹고 해야 진국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제가 20대 초반이었으니, 했다면 역대 헤드윅 중 제일 예뻤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승부할 작품이 아니었어요. 헤드윅은.
노래가 있는 모놀로그잖아요. 하나의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이끌어 갈 수 있는 에너지, 힘이라는 건 많은 경험에서 나오는 내공인 듯해요.

- 그런 논리라면, 지금은 충분히 헤드윅을 할 수 있는 내공이 쌓이지 않았나요.

흐흐흐. 헤드윅 역할이 사실 희소성있는 작품인데, 의외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했잖아요. 저로서는 약간 재미가 없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죠. 굳이 제가 하지 않아도 다들 잘 하고 있는데요 뭐.

제가 했을 때 디테일한 부분은 다르겠지만, 그분들과 크게 차이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아요. 나중을 위해 남겨둘 수 있는 작품이 있다는 것도 좋고.

(2부에서 계속)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blog.donga.com/ranbi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