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음악, 부단히 부딪혀 깨지는 것…폭탄 들고 뛴다”

입력 2013-05-21 03: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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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조용필. 사진제공|YPC프로덕션

조용필은 기타를 치고 있었다. 1994년 15집 수록곡 ‘남겨진 자의 고독’이었다. 5월31일부터 시작되는 전국투어 ‘헬로’ 무대에서 솔로 연주를 해야 한다고 했다.

20일 오후 찾아간 서울 서초동 YPC프로덕션 2층 연습실에서 조용필은 “밴드 멤버들이 ‘남겨진 자의 고독’ 간주 부분에서 기타 독주를 하라고 했다”며 허허 웃었다.

색깔이 들어간 안경, 평범한 셔츠에 점퍼 그리고 청바지. 패션은 늘 한결 같다. 이날도 조용필은 연습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는 이미 공연 연습을 끝냈다고 한다. 연습이 필요 없을 것 같은 ‘장인’이지만, 그는 지난 수개월 동안 하루 7시간씩 연습을 해왔다.

20일 공연장인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는 무대설치가 시작됐다. 설치가 끝나면 그는 매일같이 공연장을 드나들며 관객에게 완벽한 무대를 보여줄 준비를 할 것이다.


-‘남겨진 자의 고독’은 레퍼토리에 흔치 않았던 곡인데요.

“이 노래, 참 좋은 노래인데 내가 TV(출연)를 안 하니까 많이 안 알려졌다. 재작년 공연할 때 공연에서 이 노래를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는데, 당시엔 준비가 안돼 이번에 하기로 했다.”


-히트곡이 많아서 레퍼토리 구성이 고민일 것 같습니다.

“가장 큰 고민이다. 레퍼토리가 나와야 공연의 기본틀이 나오는데. 두 달 전에 레퍼토리가 확정됐다. 그동안 연습을 하면서 구성이 조금 바뀌었다. 신곡 10곡을 하려고 했는데, 2곡이 빠졌다.”


-이번 신곡들의 사운드가 워낙 파격적이어서, 과거 노래와 사운드의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게 어렵지 않았습니까.

“공연 연습은 그 간극을 메우는 데 중점을 뒀다. 19집은 리듬이 굉장히 단단하다. 반대로 예전 곡들은 그만큼 리듬이 비어 보이게 된다. 그걸 메우기 위해 연습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사운드의 균형이 맞도록 노력중이다.”


-19집을 LP로도 발매하는데, LP는 어떤 의미인가요.

“마니아를 위한 것이다. 음악을 LP로만 듣는 사람이 많다. 외국에는 LP 소비자가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많지 않다. 처음엔 1000장만 찍겠다고 했는데, 벌써 주문량이 1만장이다.”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찍었다고 들었습니다.

“며칠 전 ‘걷고 싶다’를 찍었다. 템포가 느린 서정적인 곡들이 오래 가니까, 뮤직비디오도 느린 곡을 찍게 된다. 그런데 연기자만 출연히면 노래의 메시지가 덜 할 것 같아서, 내가 출연하겠다고 했다.”

조용필은 16일 오전 6시부터 충남 태안 일대에서 촬영한 ‘걷고 싶다’ 뮤직비디오에서 립싱크 연기를 했다. 조용필이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바운스’는 뮤직비디오를 촬영하지 않나요.

“곧 촬영할 예정이다. 9월 이후 ‘헬로’ 앨범이 일본과 동남아에서 발매될 예정이어서 이에 대한 프로모션을 대비하고 있다. 싱글일지 앨범일지 모르지만 현지 사정에 맞는 형태로 음반이 발매될 것으로 안다.”


-일본에선 ‘충전이 필요해’(19집 수록곡)가 인기라던데요.

“유니버설뮤직 저팬에서 이 노래에 만족함을 표시하더라. 일본어로 개사를 해야 되는데, 그쪽에서 ‘충전이 필요해’를 우선 순위로 해달라고 하더라. 영어버전 제안도 들어왔는데, (발매 여부는)아직 모르겠다.”


-조용필 19집 때문에 이승철 신승훈과 같은 후배가 ‘더 이상 핑계가 없다’며 기존에 작업한 것을 다 엎고 새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후배가 푸념하지 않나요.

“(이)문세와는 통화를 했다. 문세 공연을 꼭 가고 싶었는데 공연이 겹쳐버렸다. 문세 노래,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또 후배로도 참 좋아하는데 아쉽다. 문세는 열심히 하는 후배다. 무대 욕심도 많고. 문세도 그런 큰 곳에서 해봐야 한다. 나도 처음부터 (잠실주경기장에서)할 자격이 되어 한 건 아니다.”

조용필은 5월31일부터 6월2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공연하고, 이문세는 6월1일 서울 잠실동 올림픽주경기장 무대에 선다.


-‘헬로’가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후 ‘조용필이 롤모델’이라는 젊은 후배들이 많습니다.

“참,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누군가의 롤모델이라는 점은. 그런데 과연 내가 그럴 자격이나 가치가 있느냐는 게 문제지. 19집 작업할 때도, 노래 녹음을 끝내고 스튜디오에서 나오면 스태프들이 ‘야, 이거 대박이에요’ 계속 그러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다. 기대치를 높이지 말라고. 나중에 실망이 크다고.

10년 만인데 어렵게 나왔다. 또 꼭 내야만 되는 형편이었고. 그래서 작년엔 공연도 한 번 하지 않고 앨범 준비만 했다. 난 사실 음악차트 10위에만 오르면 나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이거다’ 했다. 내 나이가 있고, 우리 가요 역사가 짧기 때문에 (60대 가수가 1위 하는)그런 문화가 없었다.”


-스스로 이번 앨범 대박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누군가 물어보더라. 지금 이 (올킬의)상황을 아느냐고. 나는 집, 사무실 외에는 거의 안다닌다. 그동안 친구나 친지를 두어 번 만났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밖의 상황을 어떻게 알겠나. 그들이 전하는 말만 들었는데, 이런 얘기는 들었다. 지하철 타면 내 노래가 나오고, 동대문시장에서도, 마트나 미장원에서도 내 노래가 나온다고.”


-인터넷 댓글을 가끔 보신다고 했는데, 기억나는 글이 있나요.

“하도 많아서…. 무엇을 내든 20~30%는 꼬투리를 잡는다. 나와 기준이 다르니까. 내가 본 악플 중에, ‘바운스’가 카피한 게 아니냐는 내용이 있었다. ‘카피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 노래는 뜬다. 그 외에 악플은 별로 못 봤다.

어디 초등학생들이 크레파스를 이용해 ‘바운스’ 뮤직비디오 UCC를 만든 걸 봤는데 깜짝 놀랐다. 참 귀엽더라. 영상도 잘 만들었고.”


-새 앨범을 내는 데 왜 10년이 걸렸을까요.

“내 기억으로는 세 번 정도 중도에 작업을 그만둔 적 있다. 음악을 만들다가 막혀서 그랬다. 한 테마를 만들어놓고 보면 그 다음부터가 안 풀리더라. 그래서 다른 노래를 만들었는데, 또 중간에 막히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자꾸 미뤄졌다. 노래는 한순간에 끝까지 만들어야 하는 건데….

특히 요즘 ‘한류’다 ‘케이팝’이다 하는데 잘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 그렇게 고민하다 내 콘서트를 한 해만 문을 닫자 결심했다. 한 해 동안 공연을 한 번도 안 한 게 처음인 것 같다.”


-‘헬로’ ‘바운스’ 같은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다보니 늦어진건가요.

“그렇다. 나는 빌보드에서 최신 음악을 항상 듣는다. 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야 음악의 변화하는 것도 알고 트렌드도 알 수 있다.

다음 앨범은 그렇게 늦지 않을 것 같다. 외국 친구들과 ‘헬로’ 작업을 하면서 요즘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속까지 다 들여다보게 됐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될지 감이 좀 온다. 물론 다음 앨범을 만들더라도 더 세밀하게 만들려고 한다. 안 되더라도 욕심은 내야 되는 게 아닌가.”


-남궁옥분, 이용 등 중견가수들이 ‘헬로’를 듣고 큰 자극을 받았다고 합니다. 혹시 중견가수들에게 힘을 내라는 메시지는 아니었을까요.

“솔직히 그 세대를 위해 이번 음악을 만든 건 아니다. 내가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건 하나다. ‘창법은 절제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 작업을 하면서 바이브레이션을 많이 줄이거나 아예 없앤 곡이 많다. 또 음을 길게 끄는 길이도 전부 짧게 했다.”


-왜 바이브레이션을 좁히고 짧게 하나.

“노래는 항상 그 시대의 감정을 담는다. 1980년대에는 ‘한’이란 정서가 있었고, 1990년대엔 ‘정’이란 정서가 있다. 요즘엔 이런 게 사라졌다. 단어가 바뀌듯이 문화도 바뀐다. 자연스럽게 창법도 바뀌는 것이다. 미국도 록이 번창할 때가 있었고, 랩이 휩쓸던 때가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면 과거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

과거의 나를 버려야 미래로 갈 수 있다. 과거를 붙들고 있으면 구태가 된다. 이번 음반을 내면서 어디에도 ‘45주년’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데뷔 ¤ 주년, 이런데 얽매이면 안 된다. 이제는 현재 미래 밖에 없다. 이번 앨범도 나의 모든 걸 바꿔서 나온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법부터 음악까지 모두 바꿔야 했다. 이번 프로모션도 그런 분위기에서 새롭게 했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왔다.”


-패션은 안 변하시는데요.

“그게 어디 가나. 기타잡이로 시작한 사람은 좀 그런 게 있다. 기타를 벗고 막 퍼포먼스를 하는 것도 웃기고. 사실 뭐 난 그런 퍼포먼스를 못해서 그러는 것이다. 안 되는 건 안 되더라. 하하!”


-과거엔 노랫말이 한 편의 시였는데, 이번엔 좀 평이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한다. 사람마다 얼굴 생김새가 달라서 그에 어울리는 스타일이 다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이번엔 리듬감이 좋아서 신나는 분위기인데 노랫말도 그에 맞게 해야 되지 않겠나. 사실 이번 앨범 작업하면서 노랫말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다. 곡마다 7개의 가사를 썼다. 가사를 바꿔가며 불러보다 리듬에 맞는 가사를 최종 선택했다.”


-사랑을 경험하신 지 오래 돼서, 사랑 노래 부르시며 어렵지 않으셨나요.

“노래를 10번 정도 불러보면 가사가 입에 맞기 시작한다. 노래를 감정대로 불러야 하는데, ‘귀로’, ‘걷고 싶다’ 같은 노래는 일부러 감정을 담지 않고 절제를 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목소리가 변하지 않는데요.

“목소리를 건강하게 하려면 연습 밖에 없다. 여러 소리를 내보고, 그 중에서 가장 소리가 좋은 걸 계속 유지하려고, 그 소리 그대로 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보면 일상생활에서도 그 소리를 내게 된다. 공연을 앞둔 요즘엔 하루에 하루 7시간 정도, ‘빡세게’ 한다.”


-이번 앨범에선 처음 남자코러스를 두셨는데요.

“화음 때문에 그랬다. 이번 노래들이 코러스가 많고 화음이 중요해서, 중음대의 코러스가 필요했다.”


-래퍼를 기용한 것도 파격이었는데요.

“‘헬로’ 외에도 ‘그리운 것은’에도 원곡은 영국 록밴드 멤버의 랩이 있었다. 그러나 공연할 때 그대로 구현할 수가 없어서 고민 끝에 랩 부분을 삭제했다. 그 랩이 너무 아까워서 다음에 별도로 낼 생각이다. ‘헬로’도 원곡엔 흑인 래퍼가 랩을 했다. 그런데 영어여서 한국사람이 하게 했고, 버벌진트로 최종 결정했다.”


-요즘 살맛나시나요.

“아니다. 오히려 긴장한다. 공연을 앞두고 이것저것 신경쓸 게 참 많다. 얼마나 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TV출연도 고민하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느 방송사에선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고도 한다.”


-외롭지 않으신가요. 외로움은 어떻게 달래시나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음악이다. 음악은 숙명이자 운명으로 생각하니까 외로울 시간이 없다. 외롭다고 생각하는 건, 말하자면 내가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외롭다는 사람은 모든 것을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이다. 내가 열심히 하면 외롭지 않다. 스트레스는 핑계다. 그걸 무시하면 된다. 한가한 사람들이 스트레스니 외롭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싸이랑 진짜 만나실 건가요.

“이거 만난다면 언론이 또 가만있겠나. 그렇다고 비밀리에 만날 일도 아니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하.”


-‘잃어버린 저작권’ 문제는 어떻게 되어갑니까.

“개인적으로는 슬픈 이야기이지만 나는 관여하고 있지 않다. 이유야 어찌됐든 내 잘못도 있는 거고, 또 법적인 문제도 있고. 나는 더 이상 터치하지 않겠다고 했다. 스태프들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또 세상에 ‘돈, 돈’ 돈타령하면 안 된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고 적으면 아쉽고 적당히 있으면 좋은 거고.”


-100세 시대인데 노후준비도 하시나요.

“나는 그때까지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애길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나이가 들고 꼬부러지고 힘들게 산다면, 내가 그렇게 과연 살 수 있을까. 그냥 난 일하다 확 가버리면 모르겠는데, 저렇게 살아야 하나 싶다. 사람이 사는데 건강하게 일할 수 있을 때가 사는 것이지, 그저 생명만 부지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일 할 수 있을 때까지만 음악을 하고 싶다.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무대에서 2시간 동안 공연을 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무대에서 영원히 내려올 것 같다.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고 좋아해야지, 그저 관록만으로는 하지 않겠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지막 공연을 봤을 때 너무 슬펐다. 나는 그러기 싫었다. 오랫동안 공연하려면 운동해야 되고 꾸준히 연습도 해야 한다. 나는 그때까지 정말 발버둥치겠다는 거다.”


-20집은 더 파격적으로 나간다고 했는데요.

“19집이 파격적이어서 여기서 더 나갈 수 있을까 고민도 된다. 그러나 20집이니까 전보다 더 강하게 나갈 것 같다. 20집은 외국 작곡가들과 함께 공동작업할 예정이다. 쉬우면서도 복잡하고, 멜로디 라인이 절묘한 음악을 만들고 싶다. 모든 것 부딪혀야 한다. 그래야 내가 깨지든 벽이 깨지든 한다. 지금 음악적으로 이 시대에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걸 이기려면 폭탄 들고 뛰어내려야 한다. 네가 죽든 내가 죽든 해야 한다.”


-우리 가요계 미래를 전망하신다면요.

“미국처럼 되겠지. 내가 지금 만든 ‘바운스’ ‘헬로’와 같은 것이 가장 핫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스타일로 가지 않을까. 마룬파이브, 펀(F.U.N.)과 같은 친구들 음악을 뜯어보면 앞으로의 음악의 답이 나온다. 우리 아이돌 가수들도 퍼포먼스를 조금 줄이고 음악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어차피 음악은 변한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ziod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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