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번 새긴 고효준, 전병두와 함께 던졌다

입력 2016-09-1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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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왼손투수 고효준이 8일 광주 NC전에서 자신의 모자에 SK 시절 팀 동료였던 전병두의 번호 ‘28번’을 새기고 선발등판했다. 이날은 2011년 왼 어깨 회전근 수술 이후 5년간 재활을 했던 전병두가 은퇴를 발표한 날이었다. 사진제공 | KIA 타이거즈

“(전)병두와 같이 던진다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섰어요.”

KIA 왼손투수 고효준(33)은 8일 광주 NC전에 선발등판하기 전 모자에 ‘28번’을 새겼다. 대개 모자에 번호를 새길 때는 질병이나 부상 등으로 빠지게 된 선수 혹은 코칭스태프와 함께 한다는 의미를 갖곤 한다.

그런데 KIA의 28번은 외국인투수 지크 스프루일이다. 정상적으로 1군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고 있다. 고효준은 누굴 위해 ‘28’이란 숫자를 새겼을까. 바로 올해 7월까지 몸담았던 이전 소속팀 SK의 28번, 전병두(32)를 위한 것이었다.

고효준이 선발등판한 이날, 전병두는 2011년 왼 어깨 회전근 수술 이후 5년의 재활 끝에 은퇴 선언을 했다. 둘은 1년 차이 선후배로 SK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전병두가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49경기서 133.1이닝을 던지며 8승4패 8세이브 1홀드 방어율 3.11을 기록했던 2009년, 고효준 역시 전병두와 같은 역할을 맡았다. 고효준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39경기서 126.2이닝을 소화하고 11승10패 2세이브 1홀드 방어율 4.33을 기록했다. 2009년은 여전히 그가 유일하게 두 자릿수 승리를 올린 시즌으로 남아있다.

둘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전천후 ‘스윙맨’이었다. 단순히 보직 외에도 둘은 닮은 게 많았다. 같은 왼손투수에 둘다 빠른 공을 던지는 파이어볼러였다. 그때부터 함께 운동하며 고민을 나누고, 의지하는 사이가 됐다.

KIA 고효준.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이튿날인 9일 경기에 앞서 만난 고효준은 “은퇴 소식을 듣고 경기 전 (전)병두와 통화도 했다. 은퇴를 결심하기까지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고생했다는 얘기밖에 못해줬다. 그리고 마운드에서 같이 던진다는 생각으로 모자에 번호를 썼다”고 털어놨다.

누구보다 공감이 가는 동료였고, 후배였다. 그는 “같은 보직을 하면서 서로 힘든 걸 잘 알고 있는 사이였다. 같은 위치에서 공감대가 많이 형성됐다. 예전부터 뭐든지 말없이 묵묵히 해온 게 병두다. 그래서 애착이 더 컸던 후배다. 힘들게 재활을 해온 만큼, 올해는 꼭 1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고효준은 SK 시절 웨이트트레이닝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열심히 몸을 단련했던 선수였다. 그런 그도 전병두의 성실함을 인정했다. 고효준은 “난 경기가 끝난 뒤에도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하는 편인데, 병두도 정말 열심히 해 놀랄 때가 많았다. 정말 착실하게 열심히 한 선수”라고 말했다. 이어 “솔직히 형 입장에서 아쉽기도 하고 안타깝다. 병두를 생각하면, 단단했던 이가 아픈 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고효준은 마운드 위에서도 전병두를 생각하며 공을 던졌다. 전병두가 SK의 배려로 시즌 최종전에 은퇴경기를 치르기로 했지만, 그토록 꿈꾸던 ‘진짜 1군 등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효준은 이날 NC전에서 5.2이닝 3실점으로 호투했다. 올 시즌 개인 최다 이닝이자, 최다 투구수 타이(97개)였다. KIA 이적 후 ‘제2의 야구인생’을 열고 있는 고효준은 “병두는 항상 ‘할 수 있다’는 말을 되새기며 마운드에서 공을 던졌다. 그래서 나도 ‘할 수 있다’고 속으로 되뇌었고, 그 덕분이었던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광주 |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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