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자의 인증샷>명연출가 조광화 “나도 예전엔 재떨이 던졌던 폭군”

입력 2011-09-25 16:17:44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명연출가 조광화 “나도 예전엔 재떨이 던졌던 폭군”

“늦어서 미안합니다.”
두꺼운 테의 안경에 중절모를 쓴 조광화(46) 연출은 어딘지 깐깐한 분위기가 풍겼다. 조금 전 연극 ‘됴화만발’의 런스루(처음부터 끝까지 실제 공연처럼 하는 연습)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아서일지도 모른다.

무대 위의 배우처럼, 연습실에서의 연출가에게도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권위와도 닮아있다.

‘됴화만발’ 얘기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 공연은 9월 25일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에서 막을 내렸다. 9월 6일부터 약 20일 정도 무대에 올렸는데, 그야말로 대성황이었다.
공연 막판 일주일가량은 입소문을 타고 찾아온 관객들이 티켓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대야 했다.

이 인터뷰는 첫 공연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이루어졌다. 기자는 대학로 모처의 연습실에서 ‘됴화만발’의 런스루를 관람하고, 그로부터 약 1시간 뒤 포차 ‘뻐꾸기’에서 조광화 연출을 만났다.
조광화 연출의 후배 연출가이자 뮤지컬배우인 임철형씨가 함께 자리했다.

‘됴화만발’은 상당히 스타일리시한 작품이다. 주제의식이나 스토리가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연극답지않게 화려한 볼거리에 눈이 먼저 가는 것은 사실이다.
근육질의 남자배우들이 온 몸에 황토가루를 묻히고 나와, 마치 영화의 한 편처럼 보여주는 검투씬은 대·단·했·다!

“제 작품이 그 전까지는 뭐랄까. 소리를 질러대는, 열정 내지는 광적인 에너지를 중시했다고 해야 할지. 그런데 이제는 좀 촌스러운 것 같더라고요. 주제는 늘 같지만, 이번엔 쿨하게, 배우들 덜 소리를 지르는 쪽으로 가보고 싶었죠.”

‘됴화만발’의 부제는 ‘검객기담’이다. 검객 이야기나 서부영화나 액션이나 마찬가지. 스타일이, 형식미가 중요하다. 멋을 부려줘야 한다.
“멋을 부렸을 때, 오히려 주인공이 고독해 보이는 것. 예를 들면 영화 ‘동사서독’이나 ‘중경삼림’처럼 말이죠.”

조광화 연출은 여러 개의 직함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극작가, 연출가, 교수. 어느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가장 편할까.
“저는 작가이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살아요. 그런데 작가를 제일 못하고 있죠. 작가로 불릴 때가 편하다기보다는, 제일 뿌듯하죠. 활동적으로 제일 많이 보이니까, 연출로 많이들 부르시지만.”

그래서 이 인터뷰에서도 이후 호칭은 ‘연출’에서 ‘작가’로 수정하기로 한다. 인터뷰에도 형식은 중요하니까.

○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조광화 작가의 작품에서는 대부분 ‘외로움’, ‘고독’이 공기처럼 떠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작가도 부인하지 않았다.
“사람은 다 외로운데, 본질은 외로운 건데 … 사람들이 도망 다니고 있는 것 같아요.”
연극의 힘은 인간의 존재와 직접 대면했을 때 생긴다. 그런데 요즘 문화 트랜드는 도망가는 쪽이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현혹한다.

“사랑도 마찬가지죠. 아니 대표적이죠. 연애를 하지만 옛날같은 책임감, 의무가 없죠. 아파지기 전에 도망을 치죠. ‘베르테르’가 신선한 게, 끝까지 가보는 사람이잖아요. 지금은 변태 사이코 취급을 받을지 모르지만. 중도를 지키자니 외롭고, 연예는 해야겠고. 적당히 가는 거죠. 너도 나도 상처 안 받게. 이게 삐딱해지면 폭력적인 범죄가 되는 겁니다.”

조작가는 “외로움을 견디는 힘을 키워주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화를 예로 들었다.
“영화는 두 가지를 다 갖고 있죠. 판타지를 줘서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가 하면, 반대로 영상매체 특성상 외로움을 쉽게 잘 표현할 수 있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온 서부영화를 보세요. 쇼 킬링이지만, 보면 쓸쓸하게 견디는 모습이죠. 쓸쓸한데 멋져 보여요. ‘아, 뭔가 나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하는 힘. 예전엔 오락영화로 봤는데, 지금은 삶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는 작품으로 느껴집니다. 사실 액션영화의 주제는 다 고독감이에요.”

○ ‘좋은 연출가란?’ 질문에 얼굴 딱딱해져

‘작가’의 이름을 더 좋아하지만, 그에게는 ‘최고의 연출가’라는 호칭이 태그처럼 따라붙는다. 국내 몇 안 되는, 스타 연출가 중 한 명이다. 그에게 ‘좋은 연출가가 갖추어야 할 미덕’을 물었다. 그를 롤 모델로 삼고 있는 후배들이 가장 궁금해 할 부분일 것이다.

조광화 작가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이렇게 어려운 …”이라며 중얼거렸다.
“긴장되는데 … 말 잘 해야 되는데 이거 …”하더니 “일단 한 잔 하시고 …”하면서 막걸리 잔을 들어 기자의 잔에 부딪쳤다. 명백한 시간끌기 행위다.

“전엔 사실 쉽게 얘기했는데, 이젠 잘 못하겠어요. 요새 느끼는 건, 기능적으로는 음악의 지휘자처럼 흐름을 만들어주는 사람. 잘 흘러가게(이게 중요하다고 했다). 잘 엮어주는 것. 각 파트가 잘 알아서 하니까, 흘러간다는 게 중요하죠. 그거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거니까 … 제가 잘 못 하고 있는 건데 … 비전을 갖고 있으면서 품어주는 거. 여하튼 전 둘 다 못 갖고 있네요.”

그는 연출가를 지휘자에 비유했다. 기자가 클래식음악 담당을 ‘해봐서 아는데’ 지휘자에게도 유형이 있다. 요즘에는 오케스트라 노조가 강해져 보기 드물지만,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거장 중에는 독재, 폭군형 지휘자가 많았다. 조광화라는 사람은 과연 어떤 스타일의 연출가일까.

“다른 연출을 많이 못 봐서, 글쎄요. 저도 예전엔 폭군 스타일이었죠. 지금도 좀 그래요. 공연이 임박하면 아무래도 신경이 예민해지죠. 정리할 게 너무 많아지니까. 생각대로 안 움직이고, 잠깐이라도 흐트러지는 모습이 보이면 못 참죠. 작업에 집중 안 하고 산만하면 저 되게 험악해집니다.”

조광화 작가가 웃는다.

“옛날에는 집어던지고 그랬어요. 오달수가 맨날 얘기하고 다니는 게 있는데, 자기가 늦게 와서 문을 열고 ‘죄송합니…’하는데 뭐가 휙 날아오더래요. 유리 재떨이가. 난 기억도 안 나는데. 원래 자기가 한 못된 짓은 기억이 안 나는 법이라 … 흐흐흐”

○ 나를 만나 성장한 양준모 보면 즐겁다

조광화 작가는 원래 꿈이 고등학교 선생이었다고 한다. 정확히는 연극반을 만들어서 아이들 데리고 노는 것이 목표였다. 조작가는 “노는 데에 방점”이라고 했다. 자신을 만나서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나와 만난 배우가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 대리만족을 느끼죠. 자기 색깔이 너무 강해서 주장만 하는 배우는 나랑 안 맞아요. 발전하고 싶어하고, 못 하더라도 깨우치고 싶어하는 배우가 좋죠. ‘천사의 발톱’ 때 양준모가 있었죠. 연기는 정말(이하 생략), 말도 이상하게 하고. 그 작품 이후에 여기저기 주인공으로 막 팔려 나가는데 기분이 참 좋았죠. 내가 보기엔 지금도 난 옛날하고 똑같은 거 같은데, 하하하! 준모가 고마움을 항상 기억해 주니까. 그렇다고 뭐 나한테 차를 사주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흐흐”

○ 극본상 수상거부 … 집요하게 요구할 것

이제 이 얘기를 꺼낼 시점이 되었다.
조광화 작가는 6월 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5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뮤지컬 ‘서편제’로 극본상을 받았지만 27일 보도자료를 내고 수상 취소를 요청했다.

어워즈를 주최한 신문사가 24일 보도한 ‘뮤지컬에는 왜 김수현 작가가 없을까’란 제목의 기사가 발단이었다.
기사는 “극본상 선정은 뛰어난 대본보다 결정적 하자가 있는 것을 먼저 추리는, ‘최악이 아닌 차악’을 택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선정된 게 ‘서편제’였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조광화 작가는 “수상자로서 몹시 부끄럽고 당혹스럽다”면서 아직 수령하지 않은 상패와 상금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라고 조광화 작가에게 물었다.
조작가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 반응이 없네요. 답을 달라고 최근 요구한 게 일주일 됐나 … 제가 집요해서요. 한 달에 한 번 간격으로 계속 요구할 것이고, 내년 어워즈 때까지 계속 답변이 없다면 뭔가 보이는 행동을 하려고요. 지금은 문서로만 하고 있지만. 해결방법은 둘 중 하나입니다. 기사를 쓴 기자가 책임을 지든지, 내 이름을 빼주든지.”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고 무대 뒤로 돌아가자 주최 측에서는 조작가의 상패를 가져갔다. 누가 수상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상패에는 수상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았다. 상금을 수령하러 가면 그때 상패도 준다고 했다.
조작가는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대로 상패와 상금을 수령하지 않았다.

더뮤지컬어워즈 시상식에서 조광화 작가는 작심을 한 듯, 주머니에서 소감문을 꺼내 장시간에 걸쳐 읽어나갔다. A4용지 두 장, 읽는 데만 6분이 넘게 소요된 소감문이었다.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것도 줄이고 줄인 거죠. 너무 직접적으로 얘기하면 명예훼손이 될까봐. 창작 뮤지컬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답답함을 얘기한 겁니다. (2000년대 초반) 일본의 ‘사계’가 들어오려 할 때 그 난리치고 막으려던 사람들이 지금 어디에 갔느냐는 거죠.”

조작가는 “일본은 안 되고, 다른 나라는 된다는 거냐”며 작품뿐만 아니라 인력수입에까지 열을 올리고 있는 제작사들에 대해 분개했다.

우리나라 공연계는 1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 팬이 늘었고, 시장이 커졌다. 어지간한 해외 대작들은 내한 또는 라이선스 방식으로 국내 팬들에게 선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작가는 머리를 흔들었다. 한숨을 쉬었다.
“거품이죠. 이대로는 창작 뮤지컬은 씨가 마릅니다. ‘사계’를 막은 이유가 바로 그거였어요. 대자본의 침식을 막은 거죠.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

조작가와 기자는 화제를 옮겨 최근 설립된 한국뮤지컬협회 산하 배우분과와 뮤지컬 ‘서편제’(재공연된다고 한다)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나누었으나 작가의 요청에 따라 기사화하지는 않기로 한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

조작가와의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자리가 길어진 이유는 함께 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조광화 작가와 인터뷰를 한다”라고 하니 인터뷰 장소에 무려 10여 명의 지인들이 몰려왔다. 많아야 서너 명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던 기자와 조작가가 모두 놀라고 말았다.

“불안한 건 결국 영화를 따라가는 거예요. 자본에 침식되는 거죠. 멀티플렉스 극장이 생기면서 대규모 공급업자가 좌지우지하게 되고, 결국 작은 영화가 죽어버렸죠. 뮤지컬이야말로 자본의 지배를 받는 대표적인 공연물입니다. 막상 ‘사계’를 막았더니, 힘 있는 제작사들이 너도나도 수입을 하는 상황이죠. 때로는 창작보다 못한 수입 작품도 있죠. 이건 한국 관객을 무시하는 거예요.”

술기운에 살짝 풀린 작가의 눈에서 느껴진 기운은 분노라기보다는 오히려 쓸쓸함에 가까웠다. ‘됴화만발’의 영원히 죽지 못하는 검객 ‘케이’처럼, 고독한 싸움을 계속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었다.

두 사람 앞에 놓인 빈 잔 술을 따르고 건배했다.
순간, 그의 싸움은 고독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로 순댓국집 야외 테이블 위로 됴화가 새벽바람에 가득 흩날리고 있었다.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