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권소현. 통상 이제 막 사회 초년생이 되는 나이에 그는 ‘데뷔 12주년’을 맞았다. 초등학교 5학년, 12살에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권소현은 그룹 오렌지와 포미닛을 거쳤다. 한때 최정상 걸그룹의 멤버로서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동시에 낮은 자존감 때문에 움츠러들기도 했던 권소현. 그는 지난해 6월 포미닛이 해체하면서 오래 몸담았던 큐브엔터테인먼트와도 이별하고 진정한 홀로서기에 나섰다.
연기자로 전향한 권소현은 단숨에 주목받는 것보다는 오랜 기간 켜켜이 쌓아가는 길을 택했다. 이제 그의 발걸음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됐다. 권소현이 작지만 따뜻한 가족 영화 ‘내게 남은 사랑을’의 김달님을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Q. 포미닛 해체 후 어떻게 지냈나요.
A. 영화 ‘내게 남은 사랑을’을 촬영했고요. 처음으로 혼자 해외여행도 다녀왔어요. 가죽 공예도 취미로 하고 있어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면서 집중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가구 공방을 생각하다가 가죽 공예를 하게 됐어요. 제대로 시작한 지는 1년 정도 됐어요.
연기 연습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보는 분들이 제 연기가 어색하지 않게끔 많이 연습하고 있어요. 포미닛 활동 때부터 연기 수업도 받아왔지만 포미닛 이후로 더 신경 써서 연습하고 있어요.
Q. 연기자 전향 이후 첫 영화네요.
A. 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오디션과 미팅 후에 확정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 내가 언제, 어떤 작품을 할 수 있을지 막연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행운의 기회가 찾아온 것 같아요. 긴장을 많이 했지만 ‘잘 해봐야겠다’ 싶었죠.
Q. 특별히 이 작품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을까요.
A. 팀으로 활동할 때는 ‘귀여운 막내’ 이미지가 대부분이었어요. 사람들은 제가 밝고 애교도 많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반대되는 부분도 있거든요. 생각도 많은 편이고요. 아무래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미지는 막내딸 캐릭터나 주인공의 밝은 친구겠죠. 어색하지 않은 이미지와 진짜 내 모습을 담은 캐릭터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 와중에 ‘내게 남은 사랑을’ 시나리오를 읽어봤어요. 제가 맡은 김달님 캐릭터가 실제 저와 공통점이 많더라고요. 특히 교회에서 노래하는 신은 많이 욕심났고요. 열심히 준비했죠.
Q. 큰 작품의 주인공을 욕심 낼 수도 있었을 텐데요.
A. 제가 주인공을 할 그릇이 된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포미닛의 누구’ 말고 권소현 석자로 봤을 때는 많이 부족하잖아요. ‘포미닛이라는 이름 없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싶을 때도 있었어요. 조금씩 쌓아가는 단계를 밟고 싶었어요. 그렇게 차차 올라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역할에는 크고 작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Q. 김달님과는 어떤 부분이 닮았나요.
A. 김달님은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학생이잖아요. 이 문제로 아빠와 갈등을 겪죠. 우리 아빠는 안 된다고 반대하진 않았지만 염려를 많이 했어요. 그 점이 비슷했고요. 아버지가 무뚝뚝한 성격에 공사장에서 일하는 점도 비슷했어요. 아버지가 술 마시고 들어와서 보여주는 장면에서 공감됐어요.
Q.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본인 연기의 만족도는 어땠나요.
A. 아무래도 객관적으로 보기는 힘들죠. 부족하고 아쉬운 점만 남더라고요. 연기뿐 아니라 노래도 비춰지니까 긴장을 많이 했어요. 선배들이 많이 도와줬지만 제가 제대로 영화를 찍어본 적이 없으니까 동선에서도 미숙한 점이 많았어요. 보완해나가야죠.
Q. 교회에서 아버지에게 노래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A. 정말 슬픈 장면이잖아요. 그 장면은 리허설 할 때부터 눈물이 났어요. 촬영 때도 매 테이크마다 계속 울었어요. 연기하면서 노래도 같이 하다 보니까 더 이입되더라고요. 반나절을 계속 울고 있었죠. 카메라가 바뀔 때도 감정이 떨어질 것 같아서 무대에 계속 서 있었어요. 극 중 아버지인 성지루 선배가 무대에 올라오셔서 물도 챙겨주고 부채질도 해줬어요. 촬영 마친 후에는 고모로 나온 정수영 선배가 저를 안아주면서 ‘고마워. 자기 덕분에 좋은 연기 할 수 있었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더 나오더라고요.
Q. 연기뿐 아니라 노래하는 장면도 많았어요. 부담이 컸을 것 같아요.
A. 포미닛에서 노래로 인정받던 멤버가 아니었기 때문에 고민이 많았어요. 아이돌 출신이니까 연기 자체도 걱정의 시선으로 볼텐데 노래까지 해야 하니까 부담이 컸죠. 그 부담이 더 열심히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해요. 저도 몰랐던 제 모습을 봤으니까요.
포미닛 때는 제가 무대를 잘 하는 멤버가 아니니까 나서지 않고 조심스러워했는데 이렇게 보여주다 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있구나’ 싶었어요. 자신감도 생겼죠. ‘내게 남은 사랑을’은 저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했어요.
Q. 이번 작품 하면서 노래를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A. 팀이 끝난 후에는 그런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내게 남은 사랑을’을 찍고 나서는 ‘안 하고 싶지는 않다’로 바뀌었어요. 쿵쾅대는 음악보다는 잔잔한 음악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옛날 음악도 좋고요.
Q. 극 중 김달님은 사춘기의 중심에 서 있어요. 실제 권소현 씨의 사춘기는 어땠나요.
A. 저는 사춘기가 없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 때부터 일을 해오다 보니까 ‘애늙은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때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는데 20대가 되니까 ‘왜 나는 아이답게 행동하지 못했을까’ 싶기도 해요. 실수할까봐 작은 것에도 신경 썼고, 남의 시선도 많이 의식했어요. 자존감이 낮은 편이었죠.
지금은 조금 더 내려놨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시야가 전보다 넓어졌어요. ‘실수해도 되는 나이’라고 인정하게 됐어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제 얼굴이 좋아졌대요. 내려놓은 덕분인 것 같아요.
Q. 어떤 색깔의 배우가 되고 싶나요.
A. 베이지색 같은 배우요. 튀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컬러잖아요. 저도 소박하게 제 몫을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무래도 팀 활동을 할 때는 한방을 많이 노린 것 같아요. 아래는 못 보고 위만 바라보고 있었죠. 때로는 ‘팀이 계속 유지됐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곤 해요. 하지만 이 시기가 제 인생에서 개인적으로는 좋은 시기라고 생각해요. 멤버들과도 잘 지내고 있고요. 지금은 소소한 것에서 행복감을 많이 찾고 있어요.
Q. 포미닛 멤버들과는 자주 모이나요.
A. 네. 시간되는 멤버들끼리 모이는데 만나면 힘이 돼요. 계속 붙어 있던 사이였고 지금도 비슷한 분야에서 계속 일하고 있으니까 힘든 점이 비슷하더라고요. 그런 고충과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서로 ‘잘 될거야’라고 응원하면서요.
Q. ‘포미닛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강점이 되는 동시에 꼬리표로 작용할 수도 있겠죠.
A. 장단점이 있겠죠. 하지만 포미닛이 있었기에 저도 있는 거니까 없애고 싶지는 않아요. 많은 사랑을 받게 해준 그룹이니까요. 감사하죠. 다만 팀 색깔이 강해서 제 색깔이 도드라지진 못했어요. 지금은 제 색깔을 보여줄 때겠죠. 팀 이름 뒤에 숨고 살았는데 이제 진짜 제가 된 것 같아요. 조금씩 제 모습으로 넘어가는 단계인 것 같아요.
Q. 모든 것이 포미닛 전후로 나뉘는 군요. 지난 12년을 돌아보면 어떤 느낌인가요. (이 질문을 받고 권소현은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A. 열심히, 계속 저를 채찍질하면서 살아온 것 같아요. 쉬는 시기에 혼자 프라하 여행을 다녀온 적 있어요. 먼 나라로 가고 싶던 때에 (허)가윤 언니의 추천에 무작정 떠났죠. 분명 휴식을 위해 간 건데 어느 순간 보니 제가 정말 바쁘게 다니고 있는 거예요. 쉬러 와서까지 이러고 있구나 싶었어요. 그러다 문득 ‘열심히 잘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살아가려고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권소현 제공-와호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