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구두쇠아버지감사합니다

입력 2008-09-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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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버지는 스물여섯에 대구로 상경해서,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하셨습니다. 결혼을 할 때만 해도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웠습니다. 아버지는 시장에서 채소 파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셔서 4시쯤 대구의 팔달시장에 물건을 떼러 가셨습니다. 새벽 6시 날이 밝기 전부터 시장에 좌판을 놓고 장사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고된 삶을 아버지는 30년 넘게 꾸준히 일을 해오고 계십니다. 그 덕에 저희 가족들은 지금 사는 아파트와, 크지 않지만 소일거리 할 수 있는 작은 땅을 가질 수가 있게 됐습니다. 그러니 저희 아버지를 부자라고 부른다면, 부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지금도 늘 근검절약 하시며 구두쇠 같은 모습으로 살고 계십니다. 예를 들면 세수 할 때 쓴 물을 화장실 변기에 붓고 다시 쓰시거나, 집안에 쓰지 않는 콘센트를 다 뽑아 전기를 아끼십니다. 8월 무더위 속에서도 에어컨은 한 달에 한번 정도 켰을 것입니다. 항상 창문을 시원하게 열어놓으시고 부채바람을 쐬며 더위를 식히셨습니다. 처음 제가 결혼했을 때, 저는 속으로 이렇게 구두쇠 아버지 밑에서 지금의 아내가 잘 견딜 수 있을까 그게 무척 걱정이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아내가 그랬습니다. 처음엔 시아버지가 옆에서 참견하셔서 너무 너무 싫었지만, 지금은 다 이해한다고 말입니다. 저는 아버지가 참 존경스럽습니다. 결혼 후 3 년쯤 지났을 때 제가 아버지께 큰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장인어른께서 갑자기 몸이 안 좋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였습니다. 장인어른에게 암 초기라고 얼른 수술을 받아야 하다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빠듯한 살림에 당장 수술비를 구할 수도 없었고, 어떻게 하나 마음을 졸이고 있을 때 저희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사돈 수술비로 보태 쓰렴” 하고 통장을 내미셨습니다. 그 통장에 무려 3000만 원이나 들어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아버지. 아버지가 어떻게 이런 큰돈을 모으셨어요?” 했더니 아버지께서 허허 웃으시며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잖니 그동안 며늘애가 주는 용돈을 안 쓰고 조금씩 모아 놨다”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저도 모르게 감격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그냥 돈을 안 쓰고 절약만 하는 구두쇠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버지의 구두쇠 정신은 정말 어려울 때 이렇게 큰 힘이 됐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의 도움으로 장인어른의 수술은 성공리에 잘 끝냈고 건강을 회복하신 장인어른도 “사돈 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숨을 얻었습니다” 하고 감사의 인사를 하셨습니다. 지금도 아버지께서는 신문을 보시다가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 있다고 하면 익명으로 쌀이나 옷을 보내십니다. 그런데 익명으로 보내도 가끔은 도움을 받으신 분들이 어떻게 알고 저희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전화를 걸어오기도 하십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는 우리 아버지! 아끼고 모은 돈을 더 가치 있게 쓰실 줄 아는 아버지의 구두쇠 철학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집니다. 대구 동구 | 장영봉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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