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드디어 4년 만에 휴대전화를 바꾸게 됐습니다. 그동안 “바꿔라∼ 바꿔라∼” 노래를 불러도 바꾸지 않더니, 이번에 저렴한 가격으로 바꿀 기회가 생겼습니다. MP3는 기본이고, DMB도 되고… 영상통화까지 되는 최신휴대전화로 교체했습니다. 남편은 무전기처럼 생긴 까만 휴대전화를 꽤 오랫동안 쓰고 다녔습니다.
그 무거운 전화기를 마치 애인이라도 되는 양 허리춤에 악착같이 차고 다니며 뿌듯해했습니다. 사람들은 남편을 구석기시대 사람이라면서 제발 휴대전화 좀 바꾸라고 놀려댔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전화기가 고장 날 때까지 허리춤에 꼭 차고 다녔습니다.
두 번째 휴대전화를 샀는데, 남편은 그것도 4년을 써왔습니다. 이번에 저렴하게 휴대전화 바꿀 기회가 생겨서 드디어 세 번째 휴대전화를 사러가게 됐습니다. 남편은 마치 금방 살 것처럼 가게 점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봐 놓고 너무 비싸다면서 또 다른 가게로 갔습니다.
그 가게에서도 디자인이 별로라면서 퇴짜를 놓았습니다. 나중엔 제가 너무 미안해서 얼굴이 발갛게 될 정도였습니다. 남편은 밥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밥도 안 먹고 계속 이 가게, 저 가게 들락날락거리기만 했습니다.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저는 그냥 대충 좀 사라고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그 때 드디어 남편 마음을 사로잡은 휴대전화를 발견했습니다. 그 전화는 굳이 번호를 누르지 않아도 ‘우리집’ 이렇게 말만하면 자동으로 전화가 걸리는 ‘음성인식기능’이 있는 휴대전화였습니다. 남편은 그 전화를 사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더니 “여보! 돼지머리 지금 동네에서 살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그건 미리 주문해야지. 그런데 돼지머리는 왜?” 하고 물어봤더니 “휴대전화 좋은 거 샀는데 고사라도 지내야지” 이러는 겁니다. 새 자동차를 산 뒤 고사지낸 적은 있지만, 새 휴대전화를 사고 고사지내는 경우도 있을까? 제가 황당해서 “다 저녁에 어디 가서 돼지머리를 사? 그냥 집에 얼른 가자. 집에 애들만 있는데 빨리 가서 저녁 먹어야지 나도 배고파”했지만 남편은 “내가 여기 휴대전화에 입력돼 있는 사람들 때문에 밥 먹고살잖아. 그러니까 일 계속 잘되게 하려면 고사를 지내야지”하면서 북어라도 사 가자고 졸랐습니다. 남편은 건축현장 소장으로 일하고 있어서 하루에도 수 십 통씩 전화를 합니다. 저는 끓어오르는 화를 누른 채 머리고기와 북어 한 마리, 막걸리 한 병을 샀습니다.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손을 깨끗이 씻고 거실에 상을 폈습니다. 얼른 접시를 가져다가 머리고기를 담고, 북어도 옆에 놓고, 그 앞에 휴대전화를 올려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막걸리를 한 사발을 따라 상위에 올려놓고 저와 애들까지 불러 모았습니다. 남편은 “애들아. 아빠 일 잘되라고 마음속으로 빌면서 절해 알았지?” 하고 크게 절을 올렸고 저와 아이들이 얼떨결에 따라서 절을 올리자 남편은 “제발! 제발! 제 일 좀 잘∼ 되게 해주십시오∼” 하고 크게 외쳤습니다. 또 한 번 일어나 절을 넙죽 올리는 겁니다.
세상에나! 살다보니 휴대전화 샀다고 고사 지내는 일도 겪습니다. 웃기기도 하고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남편은 가족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가족을 벽 쪽으로 몰아세우고 한 화면에 나와야 한다며 바짝 붙게 했습니다. 사진을 찍어 저장하더니 이번엔 자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 하는 음성인식 기능을 시험하면서 “작은 삼촌!” 하고 외쳤습니다. 전화기가 “작은 삼촌 말씀이십니까?” 하니까 “그려∼그려! 아주 잘 알아듣는구먼” 하고 기특해했고, 잘못 알아들으면 “아니∼아니! 작은 삼촌이라니까! 아, 왜 이렇게 못 알아들어∼” 하고 전화기랑 대화까지 했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정말 철없는 아이 같았습니다. 하여튼 그 날 밤, 남편은 새로 산 휴대전화랑 대화하느라 밤늦게까지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답니다.
경기 화성 | 김은정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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