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짠돌이남편진짜미워요

입력 2008-09-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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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정식구들이 모처럼 함께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저희는 딸만 셋입니다. 어릴 때도 똑똑하고 지금도 잘 나가는 제 여동생이 60평짜리 펜션을 예약해줬고, 동생만큼 잘 나가진 못 하지만 정이 넘치는 언니가 대가족 먹을거리를 준비했습니다. 음식솜씨 좋은 친정엄마는 밑반찬을 모조리 준비하셨습니다. 전 우리 가족 갈아입을 옷이랑 카메라만 달랑 챙겨서 그 좋은 가족여행을 떠날 수가 있었습니다. 어디 그것뿐인가요? 그동안 애 보느라 고생했다며 저희 친정 가족들이 돌아가며 애들을 봐줬습니다. 마치 혼자 여행 온 아가씨처럼 2박 3일을 아주 편하게 쉬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충분히 즐겁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답니다. 막상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니까 너무 찔렸습니다. 도저히 그냥 올 수 없어서 남편에게 “여보∼ 우리 가는 길에 어디 좋은데 잠깐 들려서 밥이라도 한 끼 사고 헤어져야 되는 거 아니야?”했더니 남편 표정이 딱딱하게 변하면서 “처형이 음식 싸온 게 이렇게 많이 남았는데 무슨 밥을 사먹어? 점심 먹고 헤어지면 되지”라고 말하는 겁니다. 저는 “우리는 한 푼도 안 냈으니까 밥이라도 한 끼 사자 그 말이지”했더니 남편이 “맘대로 해∼! 밥을 사든 죽을 사든, 네 맘이지”이러는 겁니다. 평소 같았으면 대판 싸웠을 텐데, 가족들이 있으니까 저는 못들은 척 하고 다른 식구들에게 “우리 가는 길에 맛있는 거 먹고 헤어지자! 밥은 우리가 근사한 걸로 쏠게!” 하고 출발을 했습니다. 그날따라 차도 안 막혀서 서울까지 금세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 때 형부가 잘 아는 식당이 있다고 해서 근사한 고깃집으로 들어갔는데 남편이 대뜸 “난 아까 먹은 것도 소화가 안 돼서 별 생각이 없는데…”라며 냉면을 시켰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얻어먹을 때는 대충 쏘면 안 된다고 무조건 꽃 등심 먹자고 그러는 사람이 어쩌면 자기가 돈 내야 될 자리에서는 그렇게 인색하게 구는지… 저는 너무 너무 실망스럽고 창피해서 남편이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하고 “엄마! 맛있는 거 먹어. 형부 여기 뭐가 맛있어요? 비싼 걸로 팍팍 시키세요!”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 쌩하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다른 사람들도 대충 냉면 몇 그릇 시켜서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각자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도 잠든 두 아이를 안고 뒷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며 집으로 향하는데 왜 그렇게 서글프던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눈물이 줄줄줄 났습니다.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얻어먹을 땐 남들 몇 배로 얻어먹으면서 돈 낼 땐 어쩜 그렇게 못나게 구는지… 남편이 한심스럽고 너무 미웠습니다. 제가 우는 게 신경 쓰였는지 남편이 대뜸 “넌 잘 놀고 와서 왜 우냐? 누가 먹고 싶은 거 못시키게 했어? 난 배불러서 못 먹겠는데 어쩌라고? 참 하여간 넌 울 일도 많다”고 하는데 대꾸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저 우리 친정식구들이 날 얼마나 안쓰럽게 생각했을까 그 생각만 날 뿐이었습니다. 마치 제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엄마가 “점심 잘 먹었다. 그 집 냉면이 정말 맛있더라”며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엄마의 그 문자 때문에 한동안 더 서럽게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밤에 잘 때는 남편도 미안했는지 “주말에 식구들 모시고 저녁 한 번 더 먹자” 고 제안했습니다. 솔직히 어떤 여자가 대뜸 ‘그래!’ 이럽니까? 저도 “됐거든!! 당신도 그쪽 식구들 모셔놓고 죽을 대접하든, 밥을 대접하든 맘대로 해”라고 했습니다. 물론 남편이 돈 몇 푼 때문에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배가 불러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남편이 너무 밉고 여전히 실망스럽습니다. 서울 마포 | 이연경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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