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술술넘어가는막걸리의추억

입력 2008-10-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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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절친한 제 친구와 그 친구의 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예전에 제법 큰 과수원을 하셨던 분입니다. 여름방학만이 되면 저뿐만 아니라 저희 반 친구들이 모두다 제 친구네 집으로 몰려들곤 했습니다. 과수원 일을 도와드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 과수원 옆에 있는 원두막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그 친구와 제일 친했기 때문에 자주 드나들면서 만든 일도 참 많았습니다. 하루는 친구네 집에서 놀다가 목이 말라서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그 안에 막걸리가 들어있는 노란 주전자가 있는 겁니다. 그 막걸리는 친구네 집에서 일하던 일꾼들에게 새참으로 나갈 막걸리였는데, 호기심이 발동해서 딱 한 모금만 먹어 보자고 그 친구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친구는 처음엔 안 된다고 하다가 자기도 그 맛이 궁금했는지 주전자와 밥공기를 들고, 대청마루로 왔습니다. 그렇게 저와 제 친구는 난생 처음으로 막걸리 맛을 보게 되었는데, 이 맛이 처음엔 씁쓸한 것 같은데 달작 지근하기도 하도, 하여튼 참 희한한 맛이 났습니다. 먹으면 먹을수록 술술 잘도 넘어가는 겁니다. 한잔으로 끝냈으면 좋았을 텐데, 먹다보니 그러기가 참 쉽지가 않았습니다. 거기다 저희 아버지께서 예전에 막걸리 드시면서, 한 모금 정도 남겼다가 바닥에 쫙 뿌리면서 “캬 시원하다” 하는 말을 하셨는데, 그게 또 한번 해보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제 친구가 “야 우리 그만 마시자. 이거 일꾼들 줘야 혀. 이러다 우리 아부지한테 걸리면 혼난단 말이여∼” 하면서 말렸지만 이미 알딸딸해진 저는 친구의 만류도 듣지 않고, 제 아버지가 예전에 하셨던 것처럼 막걸리를 한 사발 쭉∼ 들이켰습니다. 한 모금 정도 남았을 때, 바닥에 쫙 뿌리며 ‘캬 시원하다!’를 외쳤던 겁니다. 그리고 그대로 기절해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제 친구는 제가 기절하자 큰일 난 줄 알고 과수원에서 소독 중이던 자기의 아버지를 불러왔습니다. 혼날까봐 막걸리 마셨다는 말은 못 하고, 그냥 같이 놀다가 쓰러졌다고 얘길 했습니다. 이미 제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숨을 내 쉴 때마다 입에서 막걸리 냄새가 풍겼기 때문에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 날 제가 술 깨기를 기다리셨던 친구의 아버지는, 제가 일어나자마자 안방으로 부르시더니 저를 아주 따끔하게 혼내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공부 열심히 혀서 대핵교부터 들어가라. 그때꺼정 이런 술 같은 건 절대 입에 대지도 말고 말여. 넘들이 뭐라 하것냐. 친구 잘못 만나 대핵교 가기도 전에 술꾼 됐다고 할 거 아니여∼ 느그들 대핵교 들어가면 그 때는 내가 술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게 해 줄 테니껜. 그전엔 절대 또 이라믄 안 된다잉∼ 또 그라믄 그 땐 여그 올 생각도 허지 말어” 하고 단호히 말씀을 하셨습니다. 친구 아버지의 그 말씀 때문에 감히 장난으로도 술을 입에 댈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에 합격하게 됐습니다. 하루는 아주 추운 겨울 날, 제 친구의 아버지께서 저와 제 친구를 따뜻한 막걸리 집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원 없이 막걸리를 마시게 해주셨는데, 그 때 얼마나 감사하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어렸을 적부터 저를 친아들처럼 챙겨주시고, 늘 걱정해주셨던 친구의 아버지를 오랜만에 만나 술 한 잔 따라드리는데 왜 그렇게 가슴이 벅차오르고 감격스럽던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부디 오래 오래 건강하셔서, 다음에 또 이렇게 막걸리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충남 예산 이태수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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