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情은펄펄끓어야제맛이죠

입력 2008-10-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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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엔 저희 벽제동 동익아파트 노인회관에 영사기가 처음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영사기도 들어오고, 또 오랜만에 마을잔치도 할 겸, 저희 부녀회에서 음식장만을 했습니다. 각자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들이 모이니까 서로 음식 하는 방법이 달라서 재밌는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잡채에 들어갈 시금치만 해도 볶아서 넣는 집이 있는가 하면, 그냥 데쳐서 무쳐놓았다가 넣는 집이 있습니다. 당면도 삶아서 물에 헹구는 집이 있고, 그냥 체에 받쳐놨다가 기름 묻혀 쓰는 집도 있었습니다. 계란 지단은 제가 부쳤는데, 평소 하던 대로 흰자에 살짝 거품 날 정도로만 풀어서 바로 부쳤더니, 어떤 분이 “그걸 20분은 저어줘야지, 그냥 부치면 어떡해? 오래 저어줘야 나중에 지단이 안 찢어진다 말이야∼” 이러면서 저를 막 나무라셨습니다. 거기다 부녀회장 언니랑 중국집을 하는 금순 언니는 떡국 때문에 아까부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부녀회장이 “(싸우듯) 떡국을 양쪽에 끓여야지? 팔십 명이 넘게 오는데, 이거 나르다 보면 금방 모자라 진다니까∼ 그거 언제 다 끓일 거야∼” 하면서 떡국 담당인 금순 언니에게 한마디 했고, 금순 언니는 “아! 그러면 푹 퍼지고 늘러 붙어서 못 먹는 다니까요∼ 지금 푹푹 김 올라오잖아요∼ 금방 끓어요 염려 마세요∼” 이러면서 큰소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의견 조율해 가며 음식을 만들려니 좀 음식장만이 더디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른들은 벌써부터 오셔서 기다리고 계셨는데, 서빙을 담당한 저는 몸이 달아올랐습니다. 어르신들이 여기저기서 “아 떡국 언제 나와∼ 배고파 죽겠어∼” 이러시면서 반찬 나르고 있는 저를 자꾸 붙잡으셨고, 밖에서는 부녀회장이 “그것 봐. 이걸 양쪽으로 끓이자고 했더니 왜 말을 안 들어” 하면서 금순 언니를 다그치고, 금순 언니는 “금방 끓어요. 조금만 참아요. 한 번을 먹어도 맛있게 먹어야지, 퍼지면 맛 없다니까요” 이러면서 계속 실랑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방안에서 떡국을 기다리시던 몇 몇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안 나오나 밖에까지 나와 보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조마조마한 시간이 흐르고, 떡국이 나오면서부터는 저는 몸이 안 보일 정도로 바쁘게 방안과 밖을 뛰어다녔습니다. 몇몇 분들은 음식을 나르고 있는 저를 붙잡으며 “애기 엄마. 고마워요. 떡국도, 김치도, 떡도 아주 맛있네∼ 과일도 달고, 잡채도 아주 좋아∼” 이러면서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저를 붙잡고 새로 산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아들이 사줬다고 자랑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다 저희 친정 부모님 같고 시부모님 같은 분들이라 이 분들 챙겨드리는 게 더 기분이 좋고 즐거웠습니다. 사실 그 날, 부녀회에서 오신 분들은 열 명. 그리고 어르신들은 팔십 명이었습니다. 부녀회에서 많이 나와 주시지 않아서 더 바쁘고 힘들었지만 다 마치고 나니까 참 보람되고 좋았습니다. 거기다 제가 그 중에선 나이가 젊은 축이라서 언니들에게 많이 배웠답니다. 제가 채소를 다듬고 채를 썰고 있는데, 언니들이 옆에서 깔깔 웃으며 “그렇게 썰어서 오늘 다 하겠냐?” 하면서 제 자세를 고쳐주기도 하고, 사과 예쁘게 깎는 법도 알려줬습니다. 그렇게 앞치마 두르고 다섯 시간 남짓 일을 했더니 너무 너무 힘들었습니다. 집에 와서 쓰러지듯 잠들었지만, 그래도 그 날 하루 사람 사는 것 같고, 참 뿌듯해서 아주 좋았답니다. 경기 고양 | 백선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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