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결혼20주년해외여행의꿈

입력 2008-11-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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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 제주도를 가본 건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고등학교 단짝 친구들과 함께였습니다. 그 때는 처음으로 집에서 멀리 여행을 가는 거였습니다. 또 처음 비행기를 타는 거라 몹시 설6습니다. 떠나기 전 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들떠있는데, 외출하고 들어오신 저희 어머니께서 “니, 선 한번 안 볼래? 오늘 엄마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잘생긴 총각 하나 있다 카더라. 직업군인이라던데, 함 만나봐라”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군인하고 결혼 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기 때문에 솔직히 귀가 솔깃했습니다. 하지만 약속 날짜가 하필이면 제가 제주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다른 날짜로 옮기라고 했지만, 군인이라서 시간 맞추기 어렵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돌아오는 날 저녁으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저는 일단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갈 때는 그렇게 설레고 즐겁던 여행이, 돌아올 때는 왜 그렇게 마음이 불편하던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옷도 갈아입고 엄마랑 같이 선 자리로 나갔습니다. 참 다행히도 인상 좋고,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긴 딱 제 스타일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희 두 사람은 눈에 스파크를 튀기며 열렬한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그 남자가 닭볶음탕을 먹고 계산을 하면서 “아지매∼ 여 얼만데예?” 하자, 아줌마가 “만 팔천 원인데예”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에이 뭐가 이리 비쌉니꺼? 오천 원만 깎아주이소” 이랬습니다. 전 정말 돈이 없어서 그런 줄 알고 오천 원을 꺼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남자가 하지 말라고 제게 막 눈치를 주는 겁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더니, 세상에나 이 남자, 그 음식값을 깎으려고 돈이 있으면서도 없다고 막무가내로 버텼던 겁니다.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버젓이 메뉴판에 써 있는 가격을 깎으려고 들다니… 처음엔 말렸지만, 이 남자가 정말로 만 삼천 원으로 음식값을 깎는 걸 보고 속으로 참 대단하다고 감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는 콩깍지가 씌어서 그 모습이 ‘짠돌이’로 보이는 게 아니라 ‘알뜰함’으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만난 지 세 달 만에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예식장이며 신혼여행지를 고르는데, 이 남자가 뜬금없이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자고 하는 겁니다. 그 당시 제 친구들은 괌을 가네, 푸켓을 가네 그러는데, 제주도라니… 저는 너무 실망스러워서 “자기야∼ 어떻게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가∼ 내 친구들은 다 해외로 간단 말이야. 거기다 나는 당신 만나기 전에 내 친구들이랑 갔다 왔어. 친구하고 갔던 데를 어떻게 신혼여행으로 가∼” 이러면서 싫다고 그랬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는 해외 한번 나가려면 부대장님 결재도 받아야하고 귀찮은 일도 많다면서 계속 제주도를 고집했습니다. 그러나 이 남자가 얘기한 건 모두 핑계였고, 사실 제주도가 해외보다 쌌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저희 결혼 10주년 때도, 저는 속으로 해외여행을 꿈꾸고 있었지만, 남편은 역시 제주도를 가자고 했습니다. 솔직히 섭섭했습니다. 그렇게 제주도만 세 번을 갔다 왔으니 결혼 20주년엔 꼭 해외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남편을 잘 구슬리고 있습니다. 글쎄, 그 때는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제게 ‘제주도’는 유독 남편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곳입니다. 사람들마다 여행지를 생각하면 특별한 추억과 재미가 있다고 하던데, 저도 남편과 또 다른 여행지에서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해외로 말입니다. 대구 달서 | 하미경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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