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시부모님은 정말 마음씨가 비단결 같은 분들입니다. 제가 뭐하나 제대로 못 하고 실수해도 “괜찮다. 괜찮아” 하면서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1년쯤 지났을 무렵, 시부모님께서 함양 시누 댁에 가셨다가 저녁 늦게 올라오시게 됐습니다.
왠지 제가 가서 집안 정리도 해 놓고, 저녁도 차려드리고, 그 동안 저를 예뻐해 주신 시부모님께 뭔가 보답을 해드리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남편 출근하자마자 애를 업고 시댁으로 가서, 청소도 하고, 화분에 물도 주고, 시부모님께서 벗어놓은 옷들을 하나하나 손빨래해서 널어놨습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하다 애기가 잠투정하기에 재운다고 옆에 누웠는데, 깜박 잠이 든 겁니다.
눈을 떠보니 벌써 오후 4시! 얼른 저녁 준비해야 되는데, 반찬을 뭘 해야 하나 시댁 부엌을 뒤지며 적당한 찬거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당면’ 한 봉지가 눈에 띄는 겁니다. 사실 그 때까지 잡채를 만들어 본 적은 없습니다. 그 때는 왜 그랬는지, 이렇게 저렇게 하면 금방 잡채가 만들어질 것 같은 겁니다.
제법 냄새도 그럴 듯 하고, 모양도 괜찮았습니다. 문제는 잡채 양이 조금 많았다는 거! 그 작은 실수 하나만 빼면 정말 완벽한 잡채였습니다.
잠시 뒤 시부모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깨끗해진 집안과 세탁된 옷들을 보며 아주 흐뭇해하셨습니다. 제가 저녁까지 준비했다니까 “아이구∼ 애 데리고 니가 큰 일했다. 정말 고생 많았구나” 하시며 제 어깨를 톡톡 두드려 주셨습니다. 때마침 남편도 들어와서 식사를 했습니다. 식탁 한 가운데, 제가 만든 잡채를 큰 접시 가득 담아 내놨습니다.
저는 애기 젖 물리느라 부엌을 등지고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귀는 부엌 쪽으로 쫑긋 세우고, 무슨 말씀을 하실까, 언제쯤 내 칭찬을 하실까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심 기대했는데, 부엌의 반응은 무반응인 겁니다. 세분 모두 조용히 식사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식사 다 했다∼” 하셔서 부엌으로 갔는데, 큰 접시 가득 담긴 잡채가 거의 다 없어진 겁니다. 속으로 ‘어머∼ 그렇게 맛있으셨나∼ 아유∼ 그럼 말씀을 하시지∼’ 하면서 흐뭇한 마음으로 상을 치웠습니다. 남편하고 같이 집에 오는데, 남편이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오는 겁니다. 그리고 “당신!! 앞으로 절대∼ 잡채 같은 거 하지 마. 오늘 당신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이러는 겁니다.
시어머니께서 제일 먼저 잡채를 드셨는데, 한 젓가락 드시더니, 눈빛으로 ‘맛없어도 끝까지 먹어라∼’ 하는 사인을 보내셨답니다. 남편이 그 다음에 먹었는데, 밍밍하고 느끼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조용히 수저를 내려놨는데, 시어머니께서 도로 쥐어주시면서 얼른 더 먹으라고, 눈빛으로 또 사인을 보내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은 꾸역꾸역 먹을 수밖에 없었고, 시아버지께서는 냄비 가득 담긴 잡채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건 더 나중에 듣게 된 얘긴데, 제가 돌아간 후에 시어머니께서 잡채를 버리시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시아버지께서 “그랴도 새아가가 애써 만든 긴데 그걸 우예 버리겠노. 할멈 먹기 싫으면 냅둬라. 내 묵으께” 하셨답니다. 그 후로 몇날 며칠을 잡채에 소금뿌리고, 후추뿌리고 그렇게 드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데, 어찌나 죄송하고 창피하던지… 그게 벌써 15년 전 일이 됐습니다.
그게 다 마음 넓은 저희 시아버지, 시어머니 덕분입니다.
경남 창원 | 여미정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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