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박찬호에게돌을던지랴…

입력 2009-01-14 14: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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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언특급’ 박찬호(36.필라델피아)가 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하 WBC) 대회 불참을 선언했다. 박찬호는 13일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발 로테이션 진입에 전념하기 위해 WBC 대회에 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WBC 대회에 불참하게 됨에 따라 더 이상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박찬호를 볼 수 없게 됐다. 야구의 올림픽 정식종목 퇴출로 대규모 국제대회는 WBC만 남아 있는 상태. 그런데 제 3회 대회는 4년 뒤인 2013년에 개최될 예정이어서 40대가 되는 박찬호가 출전하기 쉽지 않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박찬호는 대표팀을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회견장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태극마크’를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그에게 ‘대표팀 은퇴’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대표팀을 떠날 때가 왔다는 아쉬움과 야구팬들에 대한 미안함이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게 만들었다. 박찬호가 대표팀을 그만둔다고 해서 그의 결정에 “이기적이다”라는 비난을 던져서는 안 된다. 그의 결정은 남은 야구인생을 화려하게 마무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놓칠 수 없는 마지막 빅리그 선발투수 지난 12월 박찬호는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했다. 다른 팀을 제쳐두고 필라델피아와 계약을 맺었던 것은 선발마운드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했기 때문. 메이저리그에서 선발투수로 뛴다는 것은 엄청난 재능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며, 부와 명예도 안겨준다. 한때 알아주는 빅리그 선발투수였던 박찬호는 부상과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선발 마운드와 멀어졌다. 가끔 기회를 얻긴 했지만 다른 선수를 대체하기 위한 임시 등판이었을 뿐, 꾸준한 등판은 아니었다. 뉴욕 메츠에서도 그랬고, 가장 최근에 속해 있었던 LA 다저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행스럽게도 필라델피아는 박찬호의 지난 시즌 투구를 높이 평가하면서 카일 켄드릭 등 젊은 투수들과 5선발을 놓고 다툴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붙박이 5선발이 아니다. 선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겠다는 작은 약속이다. 2000년대 초반 1500만 달러가 넘은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았던 박찬호에게는 자존심 상한 약속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박찬호는 이 작은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시 빅리그 선발투수로 올라설 수 있는 ‘마지막 무대’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이 작은 기회를 얻기 위해 지난 몇 년 동안 엄청난 땀을 쏟아냈고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도 참아왔다. 결정적인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착실한 준비가 필요하다. 기회를 얻었다고 선발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체계적인 훈련과 몸만들기가 있어야 5선발을 노릴 수 있다. 충분한 준비 없이는 스프링캠프에서 젊은 투수들을 압도할 수 없다. 그럴 경우 불펜에서 또 한 시즌을 보내야 될 것이다. 놓칠 수 없는 마지막 빅리그 선발투수의 기회. 박찬호가 WBC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코리언특급, 대표팀에서도 할 만큼 했다 프로에 입단한 뒤 박찬호가 대표팀의 유니폼을 입었던 것은 세 차례.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답게 결정적인 순간 마운드에 올라 팀을 구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안겼고, 2006년 제 1회 WBC에서는 이종범, 이승엽과 한국의 4강 신화를 주도했다. 마지막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던 베이징올림픽 예선에서도 젊은 선수들을 이끌고 올림픽 출전 티켓을 따냈다. 많은 출전은 아니었지만 박찬호가 대표팀에 합류할 때마다 한국은 좋은 결과를 얻었다. 박찬호 역시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출격한 박찬호는 국제대회에서 총 8경기에 등판해 26 2/3이닝을 투구했다. 성적은 2승 3세이브 평균자책점 0.68. 그는 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WBC, 아직은 이벤트 대회…명예보다 실리 추구해야 국내에서 바라보는 WBC에 대한 관심은 축구의 월드컵과 맞먹는 수준이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 축구는 월드컵이 최고의 권위를 가진 대회일 뿐만 아니라 FIFA에 가입된 200개 이상의 나라가 출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지구촌 축제’가 될 수 있다. 이와 달리 야구에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활약하고 있는 ‘메이저리그’가 존재한다. 메이저리그라는 높은 벽이 버티고 있는 이상 월드컵과 같은 새로운 축제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올림픽에서 야구가 퇴출된 것도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대회에 출전하지 않으면서 관심도가 추락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축구와 달리 야구는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기량을 가진 나라가 20개국을 넘지 못한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만 보더라도 WBC 관련 소식은 외면 받고 있다. 끝나가는 스토브리그 뉴스가 여전히 비중 있게 다뤄지면서 메인화면을 차지하고 있다. WBC에 대한 관심도 하락은 특급 선수들의 대회 불참으로 이어진다. 미국은 양리그 사이영상 수장자인 클리프 리와 팀 린스컴이 불참을 선언했다. 두 선수 뿐만 아니라 선발 톱10에 들어갈 수 있는 CC 서바씨아, 로이 할라데이, 브랜든 웹, 콜 하멜스 등도 제 2회 대회에 출전하지 않는다. 타자들의 경우 시즌을 앞두고 스프링캠프를 치른다는 기분으로 대회에 임하면 되지만, 시즌에 맞춰 페이스를 조절해야 하는 투수들에겐 3월에 국가대항전으로 치러지는 WBC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06년 1회 WBC에 출전했던 투수들 중에는 대회가 끝난 후 심각한 부진에 빠진 선수들이 적지 않다. 박찬호는 2006시즌 고작 7승에 그쳤고, 김선우는 대회 출전 이후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6년 뉴욕 메츠에서 8승 2패 2.59를 기록하며 놀라운 활약을 펼쳤던 서재응도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렸다. 메이저리그 투수중에도 2005년 22승으로 사이영상 투표 2위에 올랐던 돈트렐 윌리스가 대회 출전 이후 아직도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한 차례 대회 출전으로 실패를 맛봤던 박찬호로서는 같은 길을 갈 이유가 없다. 1회 대회에서 성과가 없었다면 욕심을 낼만하지만 그는 4강 신화를 이끌었던 주역이다. 권위와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는 WBC에 출전하는 것보다 자신의 남은 야구인생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실리’를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은 그림이다. 박찬호는 한국스포츠가 낳은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 중 한 명이다. IMF 시절 1승, 1승으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줬고, 그 이후에도 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며 우리를 기쁘게 했다. 경기장 밖에서도 장학사업 등 좋은 일에 앞장서며 돈만 쓸어 담는 몇몇 고액 스포츠스타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미 많은 것을 희생한 박찬호. 마지막 선수생활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자. 임동훈 기자 arod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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