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막걸리심부름하기싫어요엉엉”

입력 2009-01-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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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저희 아버지는 늦은 저녁 퇴근하며 항상 막걸리를 찾으셨습니다. 막걸리가 없을 때는 바로 제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오남매 중 큰 언니는 고등학생이니까 공부해야 되고, 오빠는 외아들이니까 귀하게 키우셨고, 나머지 두 동생들은 너무 어렸습니다. 제일 만만한 게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저였습니다. 가운데 낀 것도 서러운데, 아버지는 무슨 일만 있으면 꼭 절 부르셨습니다. 찌글찌글 찌그러진 노란 주전자를 들고, 불빛 없는 골목길을 나와 신작로를 따라 한참 가다보면 제법 크고 장사도 잘 되는 가게가 나옵니다. 제가 “아저씨∼ 막걸리 주세요∼” 하고 들어가면, 아저씨는 땅속에 묻혀있는 큰 술독의 나무뚜껑을 옆으로 밀고, 기다란 자루를 그 속에 넣어 휘휘 젓다가 한 바가지를 퍼서 양은 주전자에 담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골목길은 왜 그리 무서운지, ‘동백아가씨’도 부르고 ‘대머리 총각’도 불렀습니다. 무조건 목청껏 부르며 무서움을 떨쳐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심부름을 갔다가 우리 반 아이를 만났습니다. “술 사러 왔니?” 하며 환하게 웃던 그 친구는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 하고, 뭐든지 저보다 잘해서 괜히 질투가 났던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 집이 바로 그 가게였습니다. 저와 달리 부잣집 딸이라는 게 또 한번 질투가 났습니다. 다 찌그러진 주전자를 들고 있던 제 자신이 어찌나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얼굴이 빨개져서 막걸리 값을 치르자마자 도망치듯 그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그 후로 막걸리 심부름은 계속 다녀야 하는데, 저는 그 친구와 마주치는 게 너무 싫어서 늘 가게에 들어가기 전에 그 애가 있나 없나 살펴봤습니다. 그렇게 긴 겨울이 지나가고 겨울방학도 거의 끝나갈 무렵,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길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하며 걷다가 한순간 방심한 틈에 다리 한쪽이 앞으로 쭉∼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주전자는 하늘로 솟구쳤다 땅으로 곤두박질쳤고, 막걸리는 죄다 쏟아졌습니다. 아프기도 했지만 혼날 게 두려워 찔끔찔끔 눈물이 났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다른 날보다 늦게 오니까 걱정이 되셨는지, 골목어귀까지 나와 절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를 보자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훌쩍 훌쩍 울고 말았습니다. “이 놈의 기지배! 뭘 잘했다고 울어? 막걸리 죄다 쏟고 온 주제에 뭘 잘했다고!! 밤늦게 동네 창피하니까 얼른 그쳐” 하면서 저를 나무라셨는데, 그 소리에 더 서러워 저는 ‘엉엉’ 소리 내 울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저희 아버지께서 방에서 지켜보고 계시다 마음이 아프셨는지 그 다음부터는 제게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아버지가 직접 막걸리 한 병씩 사들고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게 아버지께서 보여준 따뜻한 사랑이었는데, 저는 오랫동안 ‘우리 아버지는 아들만 아끼는 분’이런 생각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지난번 친정 갔을 때 여전히 저녁식사 때 반주하시는 거 보고 옛날에 막걸리 심부름 다니던 생각난다며 웃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제가 넘어져서 울었던 일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그 말씀에 괜히 마음이 짠했습니다. 아버지의 자식사랑 너무나 당연한 건데 왜 그걸 이렇게 뒤늦게 깨달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말은 안 했지만 아버지께 서운했던 일들 참 많았습니다. 이제는 아버지 원망하는 일, 다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전 유성|김희선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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