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 5총사곗돈도맞들면낫네요

입력 2009-01-21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3


제게는 절친한 5명의 여고 동창생이 있습니다. 비밀도 주저 없이 얘기하고, 애인을 사귀면 먼저 ‘신고식’을 해서 사귀어도 좋다는 동의를 얻어야만 했습니다. 지금은 다들 결혼해 서울, 대전, 전주 등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1년에 한 번이라도 꼭 만납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그냥 밥 먹고 수다만 떨지 말고, 계를 해보자. 1년 후에 여행가면 좋잖아” 하면서 의견을 냈습니다. 다들 동의해서 매달 5만 원씩 계를 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여행갈 꿈에 부풀어 있는데, 1년 후 한 친구가 그랬습니다. “미안해서 어쩌지. 나 임신해서 여행 가기 힘들 것 같은데, 너희들끼리 그냥 다녀올래?” 그 친구가 출산할 때쯤엔 또 다른 친구가 “있잖아. 이번엔 내가 임신이야. 병원에서 당분간 안정을 취하라는데 어쩌지. 나 빼고 갈래?” 하면서 한 친구가 출산하면, 또 다른 친구가 임신이고, 막상 출산한 후엔 애기가 어려서 못 가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1년만 하려던 계가 3년이나 길어졌습니다. 어느 날 총무는 “이제 우리가 5만 원씩 모았던 돈이, 거의 천만 원 됐어. 근사한데 놀러가자? 어디로 놀러갈까?” 하며 물었습니다. 천만 원이라는 소리에, 전 그냥 돈을 나눠 가지면 안 될까 생각을 했습니다. 티내기 싫어서 그 동안 곗돈은 꼬박꼬박 냈지만, 사실 5만원이라는 돈은 참 버거웠습니다. “경기도 어려운데, 여행은 무슨 여행. 우리 그러지 말고,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사 먹고, 남은 건 똑같이 나누자” 하면서 얘기를 꺼내봤습니다. 총무는 “그래도 3년 넘게 모은 돈인데 너무 허무하잖아. 이런 핑계로라도 여행가야지” 하면서 거부했습니다. 곧 이 돈을 나눠 쓸 것이냐, 여행에 쓸 것이냐 분분해졌습니다. 결국 만난 날 해결하지 못 하고, 그 후 컴퓨터 메신저나 전화로 그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 한 친구가 “○○가 남편 사업이 잘 못 돼서 당장 살고 있던 집에서도 쫓겨날 판이래. 아직 백일도 안 된 둘째가 있는데 어떡하니?”해서 그 얘기에 곗돈 얘기가 그만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친구를 위로하려고 모이게 됐습니다. 친구는 “이게 얼마만이야?” 하면서 환하게 나타났지만, 수척해진 얼굴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총무가 묵직한 가방을 꺼내들고 그랬습니다. “나 오늘 곗돈 다 찾아들고 왔어. 다들 어려우니까 여행 계는 다음에 다시 들고, 이 돈은 나눠서 쓰자” 하면서, 돈을 나눠줬습니다. 그런데 그 돈을 받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은 나눠가졌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이 돈이면 어린이집 원비 밀린 것도 낼 수 있고, 고장 난 우리 집 냉장고도 바꿀 수 있고, 또 설도 다가오니까 유용하게 쓰겠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친구가 백일도 안 된 둘째한테 모유 먹이는 모습을 보고서는 손에 들고 있던 돈 중 우리 아이 원비인 50만원만 빼고, 나머지를 친구 가방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친구는 거절도 못 하고, 선뜻 받지도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당황해했습니다. 그 때 다른 친구들도 “나도 당장 이 돈 안 써도 돼. 나중에 쓰고 갚아” 하며 가방 속에 자기들 곗돈을 넣어줬습니다. 친구는 눈물을 뚝뚝 흘렸고, 다른 친구가 따라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내 우리들은 모두 훌쩍이며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친구 형편이 얼마나 안 좋은지 알 수 없어서 저희가 모아준 돈이 큰 힘이 될지, 작은 도움 밖에 안 될지 그건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힘을 모았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친구가 힘내고, 얼른 이 어려운 상황을 툭툭 털어 냈으면 좋겠습니다. 부산 서구|이초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