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공감·배틀‥한류사극연명3대키워드

입력 2009-02-01 08:59: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이문원의 문화비평 SBS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한류를 탔다. 재단법인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은 SBS 프로덕션과 판권 계약을 체결하고 아프리카 국가와 러시아를 비롯한 CIS권 국가(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총 63개국에 방송하기로 했다 밝혔다. 언뜻 보면 대단한 쾌거처럼 여겨진다. 일본, 중국, 동남아 정도로 국한된 듯했던 한류가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됐다는 의미에서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실상은 기대와 조금 차이가 있다. ‘쾌거’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아직 시기상조다. 일단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과의 판권 계약은 꽤나 남다른 형태다. 해당 지역 판권을 넘겨 받은 재단 측은 총 63개국 현지 대사관들과 협조, ‘무상공급’을 추진할 계획이다. 말하자면 아직 한류 ‘밑밥’을 뿌려놓는 단계라는 이야기다. 실수익으로 연결되진 않는다. 또한, 현 단계는 아직 계획만 서 있을 뿐, 방송이 확정된 국가는 없다. 결국 5년 전 SBS 드라마 ‘올인’이 아프리카-CIS 국가들에 무상공급 됐던 상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일본, 중국, 동남아를 제외한 시장은 미개척지다. 그러나 그럼에도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의 ‘바람의 화원’ 선택은 분명 다시 돌아볼 만한 구석이 있다. 간단히만 보면 ‘‘대장금’의 뒤를 잇는다‘는 단순공식처럼 여겨지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류의 방향을 재편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한류 드라마는 한 가지 방향으로만 흘렀다. 도시 트렌디다. 중국에서 ‘별은 내 가슴에’ 등이 터지고, 일본에서 ‘겨울연가’가 폭발하자 ‘한류=트렌디’라는 공식이 섰다. 이후 한류 소강상태에서 ‘대장금’이 빅뱅을 일으키자 ‘미래한류는 사극’이라는 대안이 서긴 했지만, 곧 낭패를 봤다. ‘주몽’ 등 차기로 밀어 넣은 사극들 반응이 신통찮았다. 심지어 일본 한류의 핵 배용준이 출연한 ‘태왕사신기’도 결과적으로 적자를 봤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장금’은 그저 우연히 터진 대박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판단이었다. ‘대장금’이 터졌다는 건 한류가 ‘이상기류’에서 벗어나 콘텐츠 해외수출의 ‘원형’으로 돌아왔다는 신호탄이었다. ‘미래한류=사극’이라는 단순공식보다 더 큰 기점에 속한다. 여기서부터 한류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애초 기존 한류 즉, ‘트렌디 한류’라는 건 오래 지속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상기류였다. 각국의 특정시기 문화정서와 시장 빈틈을 치고 들어간 형태였다. 중국에서 한국 트렌디가 떴던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먼저 선진 도시문화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청춘 트렌디가 그래서 떴다. 그리고 산아제한이 엄격해 대가족제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등이 뜬 이유다. 한편 일본에서 한국 트렌디가 뜬 건 ‘구식’이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1970~80년대 드라마 스타일이었다. 현재 일본 40~50대 여성층이 향수를 느끼는 스타일이다. 그러나 일본 드라마는 철저히 F1계층, 즉 20~35세 사이 여성층을 대상으로만 제작됐다. 중장년층 여성이 즐길만한 콘텐츠 시장이 비어있었다. 이 시장빈틈을 한국 트렌디가 치고 들어갔다. 그러나 이것은 시장기반이라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일시적 현상에 불과했다. 사상누각이다. 중국은 급격한 도시화를 이루며 한국 도시문화를 더 이상 선진적인 것이라 여기지 않게 됐다. 동경요소가 사라졌다. 그나마 대가족제 동경은 치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한국 콘텐츠가 안 받쳐줬다. 돌이켜보면 중국과 정확히 정서 매치를 이룬 대가족 드라마는 김수현 드라마가 유일했다. 김수현이 ‘엄마는 뿔났다’로 돌아오기 전까지 대가족 드라마를 쉬면서 이 시장도 둔화됐다. 결국 한국 드라마는 메리트를 점차 잃어가게 됐다. 일본의 경우는 이와 조금 다르다. 일본의 ‘발 빠른 대처’가 한국 트렌디 장기화를 막았다. 이전까지 F2계층, 즉 36~49세 사이 여성층 대상 드라마가 없었던 건 그 시장가능성을 믿지 않아서였다. ‘겨울연가’로 이 시장이 확인되자, 시급히 스타일을 복제했다. 잔잔하고 암시적인 기존 스타일에서 벗어나, 격한 감정의 분출과 눈물이 쏟아지는 드라마들을 기획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그렇게 떴다. 1974~80년까지 TBS에서 방영됐던 일본식 ‘막장드라마’ 원형 ‘붉은 시리즈’도 리메이크에 들어갔다. 더 이상 한국 트렌디가 차별성을 지니고 설 자리가 없어졌다. 현 상황은 그나마 한류 전성기에 다져놓은 스타산업이 콘텐츠를 이끌고 있는 형태다. 그러나 새로운 대박급 스타가 계속해서 공급되지 않는 한 이런 구조는 인공호흡기 착용에 가깝다.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형태다. 일본·중국의 메아리 효과가 나오는 동남아 시장 역시 같은 기류를 타고 있다. 이럴 때는 ‘이상기류’를 완전히 잊어야 한다. 트렌디 드라마는 더 이상 한국의 무기가 아니다. 원칙으로 돌아와야 한다. 해외 콘텐츠 판매의 원형인 ‘특수성과 보편성의 결합’으로 가야한다. 일단 ‘특수성’ 측면에서 손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건 역시 사극이 맞다. 일단 시각적으로 확연한 개성을 부여할 수 있어 해외 콘텐츠 성공전략의 원점이 된다. 그러나 이에만 치우쳐서 ‘지극히 특수한’ 형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 만국공통의 보편적 관심사가 채워져야 한다. ‘주몽’ 등 정통사극이 먹히기 않았던 이유다. 한국역사와 계급, 대립관계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으면 공감하기 힘든 형태다. 반면 ‘대장금’은 이런 공식에 꼭 맞는다. 사극으로서 갖가지 미술디자인과 의상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 있는 건 ‘음식문화’라는 공통코드다. 그리고 이를 아시아 공통 아이템인 일본만화식 배틀모드로 재편했다. ‘원형’에 충실한 형태다. 돌이켜보면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해외 사극들도 모두 이런 식으로 어필했다. 중국 사극 붐을 일으킨 ‘포청천’은 사극이면서 공통 히트 아이템인 추리수사극 형식을 입었다. ‘잠재시장은 큰데 막상 틀어놓으면 안 터졌던’ 일본 드라마를 국내에 안착시킨 것은 ‘오오쿠’였다. 사극이면서, 쇼군 사저 첩들의 암투를 다뤄 ‘칙플릭’으로서의 교집합을 만들어냈다. ‘대장금’은 여기에 한 가지 코드가 더 들어갔다. 본래 해외 콘텐츠가 유입될 때 성공 코드는 ‘여성’을 중심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위압적인 남성 이미지보다 부드러운 여성 이미지를 중심으로 시장에 들어갈 때 거부감이 줄어든다. ‘바람의 화원’은 이 계보를 정확히 잇고 있다. 사극이면서 ‘미술’이라는 공통코드를 넣었고, 역시 배틀모드 전개를 입었다. 문근영이라는 여성아이콘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 해외 콘텐츠 판매의 ‘원형’을 뀄다. 아직 한류가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아프리카-CIS 지역에 진입할 때 최상의 조건이다. 나아가 이런 방향이 미래 아시아 한류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전까지 진행됐던 트렌디 한류가 아무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한국드라마에 대한 인지도와 인식을 높였다.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이를 놓고 갖가지 억측을 가해 결국 시장붕괴에 이르렀지만, 처음부터 뚫고 들어가야 하는 시장진입 난항은 제어된 셈이다. 공이 크다. 그러나 공은 거기까지다. 더 이상 여기에 매달려선 안 된다. 한류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한 국가의 문화이미지를 아시아 각국에 주입시키겠다는 문화패권주의는 말이 안 된다. 그저 그때그때 시장전략을 가장 잘 짜는 나라가 시장의 지속성을 이룰 뿐이다. 발 빠른 시장전략 수정만 따라주면 한국 드라마는 내수시장 불안정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믿고, 전반적 한류 전략을 재편해야 할 때가 왔다. ‘바람의 화원’이 그 기점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서울=뉴시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