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4인방행복담론]지성-성용“난행복해…축구가있잖아요”

입력 2009-02-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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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했다. 겉보기에 화려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태극전사들이 과연 행복을 느끼고 있는지, 또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지. 이란과 1-1로 비긴 뒤 일부 선수가 먼저 출국 길에 오른 12일 새벽(현지시간).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국제공항에서 태극 전사 4인방의 솔직담백한 ‘행복담론’을 들어봤다.》 ○“원하는 일을 하니까” ‘행복한’ 박지성-기성용 평소에는 접하지 못했던 질문에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모두가 솔직하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항공기 탑승 수속을 기다리던 박지성(28·맨유)에게 가장 먼저 물었다. 그는 모두 부러워할 만한 인생을 누리는 유명 인사. 축구 선수로서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고 있으니 딱히 부연설명은 필요 없다. “당신의 인생은 행복한가” 라는 물음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그는 “매 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유럽 최고의 클럽 맨유에서 뛰고 있기 때문이 아닌, 원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란다. 현재 맨유에서 뛰고 있고, 스타플레이어를 꿈꾸는 후배들과 그를 사랑해주는 팬들이 많아 “조금은 우쭐한 기분을 느끼지 않느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으며 “내가 우쭐하고 위세를 떨칠 수 있나. 맨유에는 쟁쟁한 스타들이 즐비하다. 잠시의 방심이 영원한 아픔을 가져올 수도 있다.” 박지성다운 대답이었다. “인기인으로서 삶에 자유가 없고, 조금 건조해 보인다”고 하자 “당장의 삶에 만족하고 있어 무료할 이유는 없다. 먼 타지에서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선수는 그라운드에서 실력으로 먼저 보여줘야 한다”는 자신의 평소 지론을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소속팀 FC서울의 전훈지인 터키 안탈리아로 떠나기 위해 일찌감치 대표팀을 빠져나온 허정무호의 ‘신예 에이스’ 기성용(20)도 이와 비슷했다. 박지성처럼 현재 누리고 있는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단다. 딱히 꼽는 이유는 없었다. 본인 스스로가 원했고, 희망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란 제법 어른스러운 답이었다. “워낙 (질문이) 갑작스러워 어떤 대답을 할 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행복하다. 축구화를 신고 있으니까.” 그러나 K리그를 대표하는 ‘꽃미남’ 선수로서 위상이 높아지지 않았느냐는 말에는 곧바로 특유의 미소부터 짓는다. “최소한 (박)지성이 형처럼 돼야 우쭐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아직 난 멀었다. 이제 막 시작했으니.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내 나이에 맞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성공할 자신은 있다.” ○‘행복할 때도, 불행할 때도’ 김동진-정성훈 낯설기만 한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있는 김동진(27·제니트 샹트페테르부르크)은 ‘행복하냐’는 물음에 잠시 고민하다 “행복할 때도 있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고 답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축구가 잘 되면 행복하고, 잘 풀리지 않으면 괴롭다는 것. “새로운 길을 밟고 있어 멋지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외로울 때가 많다. 축구는 너무 좋은데, 외적인 삶의 조건과 환경이 좋지 않을 때 특히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사실, 김동진은 대표팀에서 아직은 2인자이다. 왼쪽 풀백이 주 포지션인 그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거대한 장벽이 있다. 바로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에서 활약 중인 이영표(32)다. 이란전을 앞두고 허정무호에 일찌감치 합류한 그는 훈련기간 내내 좋은 컨디션을 보였으나 정작 주전 자리는 결전 하루 전에 합류해 손발을 맞출 시간이 거의 없었던 이영표의 몫이었다. 김동진은 후반 25분께 교체 투입됐다. 아쉽지는 않았을까? “솔직히 왜 없겠나. 하지만 모든 면에서 (이)영표형이 낫다. 주전 자리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은 배우는 입장에 있으니까.” 조금은 실망스런 플레이로 일찌감치 교체되며 아쉬움을 남긴 정성훈(30·부산 아이파크)도 “이란전과 같은 플레이를 하면 그것밖에 할 수 없었던 내 자신이 슬프고 가장 힘이 든다”고 솔직히 토로했다. 자신이 준비했던, 그리고 벤치에서 주문한 것을 제대로 펼쳐내지 못했을 때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이번이 꼭 그랬다. 190cm 장신을 활용한 포스트 플레이를 주문받았던 정성훈은 이란의 센터백 듀오 호세이니-아길리의 강력한 압박에 밀려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전반 40분 염기훈과 교체됐다. “내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더 잘할 수 있는데 안되더라. 속상했다.” 하지만 희망까지 잃지는 않는다. 늦깎이로 대표팀에 합류한 만큼 ‘한 번 해보자’하는 오기는 누구보다 강하다. 비록 행복한 느낌은 오락가락하지만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다. “어려웠다. 대신, 많이 배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 산교육을 받은 셈이다. 행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테헤란(이란)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동영상 제공: 로이터/동아닷컴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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