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우리오빠용돈벌이는곳간털이

입력 2009-02-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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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나이가 마흔 아홉이니까 한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밤 소변이 급해서 일어났습니다. 외진 곳에 있는 화장실까지는 무서워서 못 가고 마당 한쪽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는데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지는 겁니다. 희미한 달빛사이로 자세히 보니 저희 오빠가 곳간에서 뭔가를 지고 나오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오빠만 있는 게 아니라 동네오빠들도 한 명 두 명 자루 하나씩을 지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곳간에는 마늘도 있고, 말린 고추도 있고, 보리도, 쌀도 가득한데 왜 오빠가 거기서 나오는 걸까 이상해서 “오빠야 거서 머하노?” 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오빠가 화들짝 놀라며 “쉬이잇∼!! 니 암 소리 마라∼ 아부지한테 말했다 내한테 걸리믄, 콱∼ 가만 안 둘끼다∼” 그러더니 그대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밥을 먹는데, 아부지를 보니까 얘기하고 싶어서 입이 간질간질 한 겁니다. 하지만 바로 옆에 오빠가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묵묵히 밥만 먹었습니다. 학교에 가자 오빠가 저를 부르는 겁니다. 그리고 저랑 제 친구 숙이까지 아이스케키도 사주고, 밤빵도 사주는 겁니다. 제 손에는 20원을 쥐어주었습니다. 처음엔 깜짝 놀랐지만 어린 나이에도 그게 지난밤의 답례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곳간 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부리나케 그 앞으로 가서 “오빠야∼ 지금 뭐하노∼” 하고 아는 체를 했고 그 때마다 20원씩 용돈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빠의 도둑 행각은 여름 내내 계속 되었습니다. 저희 집은 2남 5녀에 부모님, 그리고 할머니까지 식구가 많다보니 곡식이 주는지 고추가 주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오빠는 동네 친구들이랑 마늘도 퍼다 나르고, 고추도 퍼다 나르고, 보리도 퍼다 날라서 싼값에 팔아먹으며 여름 한철을 잘 보냈습니다. 오빠는 한번 재미 본 도둑행각에 손을 못 떼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와 도가 지나치게 행동했습니다. 어느 날은 제가 망도 봐주지 않았는데 저희 가족에게 너무 소중한 쌀가마니에 감히 손을 댄 겁니다. 그러다 새벽 일찍 들에 나갔다 오시던 숙이 아부지가 쌀가마니 훔치는 오빠를 발견하게 됐고, 쌀가마랑 함께 집 앞 마당으로 끌려오게 됐습니다. 숙이 아버지께서 “형님요. 여 좀 보이소. 시상에∼ 영식이가 쌀을 지고 슬금슬금 도망가고 있었다 아입니꺼. 지 보기엔 분명 지 혼자 훔쳐낸 거 같은데, 형님 곳간에 있던 거 맞지예?” 하면서 숙이 아부지는 오빠 머리를 한 대 쥐어박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저희 아버지의 대응방법은 정말 대단하셨습니다. 나직한 목소리로 “뭐 그렇게 호들갑을 떠노? 그 쌀푸대, 내가 영식이 시켜서 아침 장 좀 봐오라고 시킨 기다. 우리 장남이 어데 이상한 짓 할 놈이나!” 하면서 오빠의 잘못을 덮으신 겁니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지난 여름부터 오빠가 마늘, 고추 팔아다 용돈으로 쓴 걸 다 아셨지만, 넓은 아량으로 눈감아 주셨습니다. 그 후로도 저희 오빠 참 사고도 많이 치고, 저희 아버지 속도 많이 썩혀드렸는데, 그 때마다 저희 아버지는 늘 오빠를 믿어주셨습니다. 그 덕에 지금은 저희 오빠가 아버지 대신으로 저희 7남매 모아주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 들수록 자꾸만 아버지 얼굴을 닮아 가는 우리 오빠, 오빠를 볼 때마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경북 구미|서영지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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