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도서관명당잡으려다아빠잡겠네

입력 2009-03-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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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초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때 우리 딸이 기말고사를 보고 있었는데, 일요일 아침, 아내가 저더러 무료 도서관에 가서 자리 좀 잡아 놓으라고 하는 겁니다. 제가 “아 피곤한데∼ 나 어제 상가 집 갔다 와서 집에 늦게 들어왔잖아. 술도 많이 마셔서 지금 속도 쓰리고 머리도 아픈데, 거기 꼭 내가 가야 돼?” 하고 투덜거렸습니다. “우리 딸 요즘 잠도 못 자고 시험공부 하고 있잖아. 일요일인데 좀 더 재웠다가 밥까지 먹이고 보내려고 그러지. 도서관 문 열리기 전에 빨리 가서 줄 서 있어” 하고 제 등을 떠밀었습니다. 전 속으로 ‘그래. 내 팔자에 뭔 놈의 늦잠이냐’ 하면서 아내가 챙겨주는 딸애 가방을 들고 도서관 앞으로 갔습니다. 도서관 1층 출입문엔 벌써 아이들 서넛이 서성거리며 서있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아직 문이 안 열었냐고 물어봤더니, 아직 문이 안 열렸는데 오늘은 좀 늦게 여는 것 같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출입문에는 ‘미시오’란 글이 써 있었고, 저도 밀어봤는데, 문이 안 열렸습니다. 문을 열어 줄 때까지 기다려야지 하고 출입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20분쯤 지났을 때 제 뒤로 30명 정도가 쭉∼ 줄을 서는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점점 늘어가고, 여기 저기 불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어떤 아주머니께서 오시더니 “아니 다들 왜 안 들어가고 여기 서 있어요?” 하고 물어보셨습니다. 한눈에 봐도 이곳에서 일 하시는 아주머니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아주머니에게 문이 아직도 안 열렸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내자 아주머니께서 문을 열어봤는데, 열쇠도 없이 그냥 문이 스르르 열리는 겁니다. 어떻게 된 건가 봤더니 아주머니는 물은 미는 게 아니라, 당겨서 문을 열고 계셨습니다. 제가 “아주머니! 아니 문을 당겨서 열어야 되면 ‘당기시오’라고 써 놔야지, 왜 ‘미시오’라고 써놨어요?” 하니까 “그래도 지금까지 다들 잘 들어 갔어요” 하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자기 갈 길 그냥 가버렸습니다. 어찌나 황당했는지 모릅니다. 우스운 건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미시오’라는 글씨만 믿고 밀기만 했지, 정작 당겨본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어떤 은행 강도 모습을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었는데, 문득 그 생각이 났습니다. 그 강도도 돈을 훔친 후에, 문을 열지 못 해 경찰한테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 은행은 당겨서 문을 열어야하는데, 그 도둑은 계속 밀기만 하다가 문이 안 열려 결국 잡히고 말았습니다. 그 동영상 보고 배꼽 빠지게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날 제가 똑같은 경우를 당했던 겁니다. 어쨌든 저는 도서관에 명당자리를 잡고 딸애 가방을 배게 삼아 누워 있다가, 딸이 오자마자 집에 와서 다 못 잔 잠을 마저 잤습니다. 그 도서관 지금은 출입문에 ‘당기시오’라고 문구가 제대로 붙어 있습니다. 그런 문구들은 잘못 됐을 때 빨리빨리 시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애매한 사람이 고생하는 것 같습니다. 하마터면 그 추운 날 엉뚱한 표시 때문에 동태처럼 꽝꽝 얼어버릴 뻔했답니다. 광주 서구 | 김길성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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