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역경도굴복시킨남편의인복

입력 2009-03-0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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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편과 버스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를 들었는데, 행복한 아침의 ‘아침극장’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왕따였던 주인공이 자신에게 좋은 벗이 되어주었던 친구를 찜질방에서 우연히 만난 얘기였습니다. 그 친구의 어려워진 사연을 들으며 가슴 아파하다가, 그 친구가 돈 좀 빌려줄 수 있냐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을 때, 주저 없이 50만원을 보내주었던 가슴 뭉클한 사연이었습니다. 어쨌든 사연을 듣고 눈물을 훔치고 있었는데, 버스 기사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그랬습니다. “손님들은 혹시 그런 친구가 있으십니까? 지금 버스에 저와 손님들 밖에 없습니다” 하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는데, 다른 손님들은 언제 다 내리셨는지 정말 버스 안에 저희 부부와 기사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남편이 “그런 친구요. 네, 저는 있습니다” 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그 기사님께서 놀라시며 “그렇게 망설임 없이 대답하시는 걸 보니, 세상 참 잘 사셨나보네요. 저는 그런 친구가 없거든요.” 하시더라고요. 남편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성실하게 열심히 사시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어려운 얘기하실 일이 없으셔서 그런 거겠죠.” 하고 대답했고, 기사님도 “그런가요?” 하면서 함께 웃었습니다. 사실 저희 부부, 7년 전 인터넷 쇼핑몰이라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어려운 일이 참 많았습니다. 어느날 저희가 물건 받아오던 가방회사가 갑자기 문을 닫아 버린 겁니다. 그 시절엔 저희 가족, 당장 쌀 사먹을 돈이 없었습니다. 라면 사다가 저희 부부, 그리고 우리 두 아이 네 식구가 한 끼 해결하고 잠들고 그런 날이 참 많았답니다. 그러다 도저히 사업을 계속할 수 없어서, 잠시 사업을 접고 남편이 공사장에서 일당을 벌어오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공사장 앞에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아는 선배를 우연히 만나게 된 겁니다. 선배가 “야, 밥 다 먹었으면 우리 소피나 보러가자” 하면서 제 남편을 인근 담벼락으로 데려가더니, 갑자기 제 남편 주머니에 뭔가를 쑥 집어넣고 가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미안하다. 형이 지금 이것 밖에 없다”라고 하셨답니다. 주머니를 봤더니 9만 7천 원이 있었답니다. 아마도 그 선배가 당시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꺼내서 주고 가신 것 같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번은 만 원도 채 안 남은 저희 통장에 어느 날 100만 원이 입금됐던 일도 있었습니다. 누가 보낸 건가 봤더니,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저희가 어렵다는 얘기를 어떻게 듣고, 아무런 연락도 없이 그냥 돈만 넣어준 거였습니다. 가만 보면, 남편과 남편 주위 사람들 살아가는 방식이 그런 식입니다. 서로에게 아무 말 없이, 자존심 상하지 않게 조용히 그렇게 도와주고, 다시 되돌려 받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물론 저희 남편도 예전에 형편이 어렵다는 친구가 있어서 도와주기도 하고 그랬는데, 막상 이렇게 도움 받는 입장이 돼보니 이게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그 말 밖에 안 나왔습니다. 저희 거래처 사장님들은 저희 부부보고 참 신기하다고 합니다. 어떻게 신용불량자도 안 되고, 지금까지 버텼냐고 참 대단하다고 하십니다. 그 때마다 저는 고마운 저희 남편 지인들을 떠올립니다. 만약 지금 어려운 시기를 겪고 계신 다른 분들이 계시다면, 힘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부부도 그동안 애썼던 일들이 이제 결실을 보면서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 덕에 이제 저희에게도 곧 봄이 찾아올 것 같습니다. 아직 길고 긴 겨울을 끝내지 못한 분들 기운내십시오. 겨울 다음엔 반드시 봄이 찾아오는 법입니다. 경기도 광주 | 김하정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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