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音談패설]단국대서한범교수의뜨끔한제보

입력 2009-03-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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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것지킴이의우리를향한일침“美UCLA대한국음악과를아시오?”
국악계 지인이 연락을 해 왔다. 국악과 교수 한 분이 기자를 만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니 자리를 같이 하자는 얘기였다. 일종의 제보였다. 서한범 교수(64·단국대 국악과)와의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강남의 음식점에서 마주한 서 교수는 “천천히 얘기 합시다”했지만 이내 ‘본론’을 꺼내들었다. 급격히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상향됐다. “미국 UCLA대학에 한국음악과가 있습니다. 30년이나 됐지요. 그런데 이게 폐과될 위기입니다. 살려야합니다. 어떻게 만들고 지켜온 건데.” 미국의 명문 UCLA는 한국교민이 많은 LA지역에 있어 익숙한 대학이다. 그런데 UCLA에 한국음악과가 있었던가? UCLA에는 민족음악대학이 있다. 세계 음악계로부터 주목받는 명문이다. UCLA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이 대학 안에는 전 세계 9개 지역의 음악과가 존재한다. 아프리카, 유럽, 멕시코, 중국 음악 등이 포함돼 있고, 이 중 한국음악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한국음악과가 인기가 있습니까? “최고죠. 한국 전통의 악기와 노래, 이론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매년 수 백 명씩 몰립니다. 올해도 200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했습니다. 전공자들도 늘고 있지요.” - 그런데 왜 폐과 위기라는 거지요? “주 정부가 대학들에 대한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UCLA 역시 예산 부족으로 허덕이게 됐지요. 9개 음악과가 각자도생을 해야 할 판인데 가장 인기가 높은 한국음악과가 재정적으로 제일 열악합니다. 그래서 폐과 얘기가 나오고 있지요.” - 학과를 유지하는데 1년 예산이 얼마나 듭니까? “1년 운영비가 13만 달러입니다. 요즘 환율이 올랐으니 1억7000만원 정도 되겠군요.” 서 교수는 지난 2001년부터 UCLA를 매년 한 차례씩 방문해 악기, 용품 등을 전하고 공연을 열어 우리음악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도 2월에 대규모 공연단을 이끌고 가 여덟 번째 한국음악 심포지엄을 열었다. 주제는 ‘분단 이후 남북한의 전통음악’. 선소리 산타령 무형문화재 황영주 명인과 백미영(단국대)·홍주희(수원대)·김동석(UCLA)·임진옥(수원대) 교수, 인간문화재 박찬범 명인 등 국악계의 거물들이 대거 참여했다. 서 교수는 UCLA음대 카멜란 렉처홀 강단에 서서 ‘한국음악 장단의 특징’과 ‘산타령과 다른 노래와의 차이점’을 강의했다. 한국음악을 알리기 위한 운동인 만큼 전원 자비로 참여하고 있다. 매년 30∼40명 정도가 서 교수와 함께 UCLA를 방문한다. “기자님도 한 번 가 보세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이 찡합니다.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이 얼마나 우리음악에 목말라 하고 열정적인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이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 놓은 장고를 치고 줄이 다 끊어진 가야금을 타고 있어요. 우리들이 갈 때 사비를 털어 악기와 소모품들을 사다가 줍니다. 가야금 한 대가 300만원 정도 합니다. 줄 한 번 가는데 30∼50만원 정도 들지요. 꽹과리니 피리니 북채니 다 가져갑니다. 1년에 한 두 번은 학생들 발표회도 해야지요. 다 돈입니다.” 서 교수는 이 운동이 단순히 외국대학의 한국음악과를 살리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전 세계에서 학부과정으로 한국음악 실기를 가르치는 대학은 UCLA가 유일하다. 수강생들은 한국계뿐만이 아닌 전 세계의 인종들이 집결돼 있다. 모두들 졸업 후 조국으로 돌아가 한 나라의 동량이 될 재목들이다. 이들에게 한국음악을 체험하게 하고, 매력을 실감하게 만드는 일은 곧 세계 곳곳에 ‘지한파’를 심는 일이다. 한국음악을 알리는 일은 곧 한국을 깊고 넓게 알리는 일이다. “몇 년 전 일본음악과가 폐과됐습니다. 뒤늦게 학과존속의 중요성을 깨달은 일본이 엄청나게 학교 측에 로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한국음악과가 퇴출된다면 그 자리에 일본음악과가 들어오게 되겠지요. 마음 아픈 일입니다. 우리가 살려야지요. 우리 정부가, 우리 기업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서 교수가 건넨 자료사진 속에서 한국음악 강의를 듣고 있는 외국인 학생들이 진지한 눈빛을 빛내고 있다. 한국을 향해 내민 이들의 손을 우리들이 잡아주지 않으면 그 누가 잡아줄 수 있으랴. 이들의 풀어진 가야금줄을 매어주는 일은 한국의 긍지와 자부심을 단단히 조이는 작업이다. 한국의 씨를 세계의 텃밭에 흐드러지게 뿌리는 일이다. 선택이 아닌 책무이자 의지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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