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애슬론]솔직토크:트라이애슬론가라사대

입력 2009-06-14 19:5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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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해발고도 0m인 강원 삼척해수욕장을 출발해 1천340m인 정선 하이원 골프장에서 끝을 맺는 '2009 하이원 국제트라이애슬론대회'에서 수영(3Km)을 마친 참가자들이 태백 오르막 코스를 오르며 사이클(80Km) 경합을 벌이고 있다. 태백 |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09 하이원 국제트라이애슬론 대회를 하루 앞 둔 지난 13일 밤.

숙소 인근 음식점에서 트라이애슬론 동호인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 40대 이상의 중년층들로 10년 가까이, 혹은 그 이상 트라이애슬론을 즐겨온 마니아들이었다.

대회전야지만 모두들 부담 없이 생선회에 소주 한 잔씩을 가볍게 걸쳤다. 성적을 떠나 스스로 즐기기 위해 운동을 하는 순수 동호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밥자리에서는 당연히 트라이애슬론이 주된 화제에 올랐고, 꽤 진솔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골수 마니아들이 말하는 트라이애슬론은 과연 어떤 것일까. 화자는 편의상 K·L·Y·P 씨로 표기했다.

K : 누가 그러더라고. 트라이애슬론은 운동이 아니라 ‘자학’이라고. 그런 걸 왜 하느냐는 거지. 이건 해 봐야 아는 거야. 그 성취감, 쾌감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지.
P : 왜 하냐고? 도전하는 맛 아닌가. 그거 말고 또 있나?

L : 난 이상하게 결승지점을 통과할 때 기분이 안 좋아져. 남들은 그 맛에 한다는데 말이야. 결승점을 지나면서 ‘이게 다야? 뭐 이래’ 싶어진다고. 이것도 성취감이라고 해야 하나.

Y: 여러분은 언제가 가장 힘들어? 나는 사이클 다 타고 마라톤 시작하는 타이밍이 제일 힘들더라고. 왜 있잖아. 어렸을 때 꿈을 꾸면 뭔가가 막 쫓아오는데 발이 내 맘대로 안 움직이는 거. 바로 그거라니까. 마라톤 딱 뛰려고 하면 뒤에서 누가 내 몸을 당기는 거 같아. 사이클과 마라톤에 사용되는 근육이 달라서 그렇겠지.

K : 난 거꾸로인데, 사이클이 끝나면 해방감을 느끼거든. 80km 사이클을 타고 있으면 엉덩이고 목이고 얼마나 아퍼. 그런데 딱 사이클에서 내리면 살 것 같지.

L : 역시 가장 힘든 건 마라톤이 아닐까. 체력은 바닥나고. 어쨌든 마지막이잖아.

P : 여러분은 주변에서 ‘철인은 정력도 좋냐’고들 안 물어보던가? 트라이애슬론한다고 하면 술자리 같은 데서 사람들이 꼭 물어보더라고.

L : 흐흐, 이 운동이란 게 정력에 당연히 좋은 거 아냐? 그런데 싫어하는 여자들도 없지는 않더라고. 1시간이면 될 걸 4시간, 5시간씩 한다고 말이야. 으하하!

Y : 형은 복도 많네. 내가 아는 철인들은 와이프들이 다들 싫어한다네. 엉뚱한 데다 힘 다 쓰고 막상 집에 와서는 맥도 못 춘다는 거지. 흐흐

L : 어허! 그거 어쩐지 형 얘기처럼 들리는데.

K : 난 트라이애슬론이 매우 가족적인 스포츠라고 생각해. 온 가족이 즐길 수 있잖아. 실제로 대회에서 보면 부부 참가선수들이 많아.

P : 요즘 가장들이 얼마나 기죽어 사나. 아버지들이 너무 약해졌어. 그런 의미에서 트라이애슬론은 강한 아버지상을 심어줄 수 있다고. 아버지가 대회 나가서 땀을 흘려가며 도전하는 모습이 자녀들에게 최고의 교육이 된다는 거지.

Y : 그런데 난 ‘철인’이란 말이 별로야. 나뿐 아니라 많은 동호인들이 싫어하더라고. 이 운동이 꼭 특수한 사람만 하는 것 같잖아. 아무나, 누구나 노력하면 완주할 수 있는 운동인데 말이야. 우린 ‘철인’이 아니라고. 우린 트라이애슬론을 사랑하는 사람들일 뿐이지.

P : 처음 올림픽코스를 완주했을 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어. 이후 한 동안은 다른 스포츠들이 꼭 아이들 장난처럼 여겨졌다니깐.

L : 형은 트라이애슬론을 좀 더 해야 해. 이 운동은 하면 할수록 겸손해지는 운동이라고.

Y : 나도 형의 말에 동감. 트라이애슬론은 감동이 진한 운동이지. 그런데 그 감동이란 게 꼭 엘리트 선수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거든. 중간층은 중간층대로, 꼴찌들은 꼴찌대로 다 감동이 있어. 난 그래서 대회에 나갈 때마다 가족들에게 와서 보라고 해. 완주 못하면 어때? 출전하고, 도전하는 자체가 감동이고 드라마인데.

K :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한 단계 도약하려면 트라이애슬론 같은 종목을 키워야 한다고 봐. 축구보다 낫다니깐. 사람들이 트라이애슬론을 선진국 스포츠라고 하는데, 난 시각이 달라. 선진국이어서 하는 게 아니고, 이걸 해야 선진국이 되는 거야. 체력이 국력 아닌가. 개개인이 건강해져야 국력이 강해지는 거라고.

L : 그나저나 내일 하이원 O2코스가 꽤 난코스라지. 완주할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 큰 영광일 것 같아. 홈페이지나 블로그 같은 거 하나 만들면 좋겠어. 거기에 하이원 코스를 완주한 1기들 명단을 영원히 남겨 두는 거지.

P : 자! 그럼 내일 우리 모두 멋지게 완주하기를 기원하면서, 건배!

○TIP : O2 코스란 무엇?

트라이애슬론은 각 부문 거리에 따라 5개 코스로 구분한다. 수영 300m, 사이클 8km, 달리기 2km는 팀 릴레이. 수영 0.75km, 사이클 20km, 달리기 5km는 스프린트. 수영 1.5km, 사이클 40km, 달리기 10km는 올림픽. 수영 3km, 사이클 80km, 달리기 20km는 O2. 수영 4km, 사이클 120km, 달리기 20km는 O3코스로 분류한다. ‘2009 하이원 국제트라이애슬론대회’는 삼척해수욕장에서 3km 바다수영으로 시작해, 80km의 사이클 레이스를 펼친 뒤 결승지점인 하이원리조트까지 20km 달리기로 끝을 맺는 올림픽의 2배, O2 코스였다.

정선 |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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