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기자가간다]화려한비상을꿈꾸다! KT농구단태백지옥훈련

입력 2009-08-12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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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농구단 부산 KT 매직윙스 일일 선수로 나선 전영희 기자가 태백전훈에서 고지대를 달리며 혹독한 체력훈련을 경험했다. 출발 당시는 선수들과 함께 뛰며 웃음을 보이는 등 한결 여유가 있었다.  태백 | 임진환기자 photolim@donga.com

4월25일, 서울 프라자호텔. 4번의 챔피언결정전 진출과 3번의 우승, 우렁차게 포효하던 치악산 호랑이가 전설만을 남긴 채 원주를 떠나는 순간이었다. 부산 KT 프로농구단의 사령탑으로 취임한 전창진(46) 감독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면서 “우선 (선수들)마음의 병부터 치유 하겠다”고 했다. KT는 2007-2008시즌 8위, 2008-2009시즌에는 최하위에 그쳤다. 선수들의 패배의식부터 지워버리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100일이 흘렀다. 10주 동안의 체력훈련. 그 모든 초점은 바로 3일부터 2주간 강원도 태백에서 실시하는 지옥훈련에 맞춰져 있었다. 전창진 감독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기분을 선수들에게 느끼게 하고 싶다”고 했다. 화려한 비상을 꿈꾸는 KT 농구단의 일일선수를 자청했다. “크로스컨트리를 할 수 있겠어요? 걷기도 쉽지 않은 경사인데….”, “감독님, 저 태릉선수촌 불암산 종주도 해보고, 철인3종 경기도 도전했었다니까요.” 베이징올림픽 직전, 복싱대표팀의 태백 훈련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여긴 지옥이에요.” 베이징올림픽 복싱동메달리스트 김정주(28·원주시청)의 눈물 섞인 한 마디가 떠올랐다.

○지옥훈련에 장사 없다, KT선수들 ‘다이어트 열풍’

7일 새벽 2시, 태백터미널에 닿았다. 여름별자리 구경을 기대했지만, 태백의 하늘은 잔뜩 웅크린 채 별빛을 감추고 있었다. “비가 오면 아마 크로스컨트리는 취소되고, 체육관에서 훈련할 겁니다.” KT농구단 최현 과장이 살길을 제시했다. 비!

하지만 7일 아침, 태백의 하늘은 무심하게도 빗방울을 뿌리지 않았다. 10시30분.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훈련 시작. KT선수들이 지난 시즌보다 한결 날씬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조동현(33·187cm)은 “약 2달 만에 8kg이 빠지면서 고질적인 무릎 통증에서 벗어났다”면서 “프로 데뷔 이후 가장 몸 상태가 가볍다”고 했다. 박상오(28·196cm)와 김도수(28·198cm) 역시 8-9kg 감량성공. 10주간의 훈련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 쪽에서는 벌써 ‘주장’ 신기성(34·180cm)과 임휘종(24·187cm)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5kg짜리 디스크를 들고, 윗몸 일으키기. 50개씩 무려 4세트를 해야 한다. “하나, 둘, 셋, 넷…. (임)휘종아 배에 힘을 더 줘야지.” 주장의 호통에 임휘종의 식스 팩은 더 뚜렷해졌다.

신기성이 “점프력을 향상 시키려면 파워 존(무릎 위부터 복부) 운동이 필요하다”면서 윗몸일으키기를 추천. 딱 15개가 한계다. 이어지는 대퇴근 운동에 다리가 후들후들. 김도수가 몸매를 훑더니, “벌써부터 힘들면, 오후에 산악구보는 어떻게 하느냐”며 핀잔을 줬다. 선수들은 상체와 하체 각각 7개씩의 웨이트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소화한 뒤, 태백 황지고등학교 체육관으로 향했다.

○10분 만에 에어볼 속출

전창진 감독이 신기성을 전담코치로 임명했다. 드리블, 패스, 슛 등 농구의 기본기술을 배운 뒤 골대 앞에 섰다. 3점 라인 근처에서 슛을 던진 뒤 재빠르게 공을 잡아서 신기성에게 패스하면, 신기성 역시 슛을 던진 뒤 패스.

‘주거니 받거니’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호흡은 가빠지고, 무리한 웨이트트레이닝의 후유증인지 하체의 힘이 급격히 빠지기 시작했다. ‘손목 스냅을 이용하라, 공이 손에서 떠나는 순간 검지와 중지로 컨트롤 하라.’ 모든 가르침은 의식과 함께 혼미해졌다.

처음에는 이따금씩 골네트를 가르던 공. 하지만 10분이 지나자 에어 볼이 속출했다. 신기성은 “고등학교 시절 한창 슛 훈련을 많이 할 때는 하루에 500-1000개까지 던졌다”고 했다. 프로농구 사상 3점슛 성공률 타이틀 최다 수상(3회)이 그 결과물.

KT 선수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유투 라인에 섰다. 오전훈련의 마지막관문. “팬들이 ‘어떻게 농구선수가 자유투도 못 넣느냐’고 하시잖아요. 숨만 안차면 저희도 다 잘 넣죠.” 딱 자유투 10개를 던져보고 다짐했다. ‘앞으로 힘들 때는 슛을 던지지 말자’고.

오후 1시, 근처식당으로 향했다.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도 군침이 고이지 않는다. 식탁 위의 숭늉이 막걸리로 보일 정도로 정신이 없다. 박상오는 “너무 힘들면 도리어 밥맛이 없다”며 웃었다.

○Killing Training, 함백산 크로스컨트리

2시간의 꿀 맛 휴식 후 함백산으로 이동. 최종 목적지는 태백선수촌(해발1330m)이었다. 가장 짧다는 B코스(6.4km)인 것이 그나마 다행. A코스는 8.6km, C코스는 10.7km이다.

해발 1330m에서는 산소부족에 적응하기 위해 적혈구 생산이 증가한다. 산소 운반능력과 심폐기능이 향상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훈련 과정에서 숨이 더 빨리 찬다. 전창진 감독은 “훈련 닷새째라, 선수들의 피로가 누적돼 있다”고 했다.

“차타고 오면 안 돼요.” 2009KBL귀화혼혈드래프트 5순위로 KT에 입단한 박태양(180cm·미국명 크리스 밴)과의 굳은 약속으로 출발. ‘언제 선두권에 있어보겠냐’는 생각에 초반부터 속도를 냈다. 하지만 200m도 못가서 처지기 시작. 마침내 무릎 재활중인 송영진(31·198cm)에게도 밀렸다.

그래도 선수들의 뒷모습이 보일 때까지는 행복했다. 20분 이후부터는 대열에서 이탈해 고독한 레이스. 가도 가도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때 마침 굽이치는 함백산의 등성이를 안개가 휘감았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의 열기를 씻는 안개의 습기.

정신을 차려보니 멀리서 거구들이 보였다. 차량으로 이동하며 선수들을 독려하던 전창진 감독, 김승기(37), 손규완(35) 코치. “바로 앞에 간 선수랑 얼마 차이가 안 난다”는 말에 힘을 냈다. 6.4km 코스 가운데 내리막은 약 200m뿐. 40분이 지나자 걷는 다리조차 무뎌졌다. 짙은 안개 속에 앞길도, 정신도 흐릿할 때쯤 멀리서 선수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살았구나! 선수들의 뜨거운 박수에 코끝이 찡했다.

○길 위에서 펼치는 자신과의 사투

“대단해. 중간에 포기할 줄 알았는데….” 전창진 감독이 어깨를 두드렸다. 기록은 1시간20초. KT선수단 후미와는 딱 5분 차이였다. 1등은 ‘젊은 피’ 양우섭(24·43분04초)의 차지. 최고참 신기성도 47분11초(4위)로 변함없는 체력을 과시했다. 신기성은 “처음에는 ‘힘들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다가 나중에는 아무 생각 없이 뛰게 되더라”며 웃었다. 스포츠심리학에서 말하는 화이트 모멘트. 즉 고통을 느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극도의 몰입상태였다.

태백시내 사우나로 자리를 옮겼다. 선수들은 “너무 피곤해서 훈련이 끝나면 잠자리에 들기 바쁘다”며 온탕에 몸을 담갔다. 다음날(8일) 오전에는 A코스가 예정돼 있었다.

NBA의 명 가드였던 케빈 존슨(43·현 새크라멘토시장)은 고등학교 시절, “왜 너는 토요일 저녁인데도 다른 친구들처럼 파티에 가지 않고 운동을 하느냐”는 체육관 관리인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파티는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저를 데려다주지 않아요.”

함백산의 굽이 친 크로스컨트리 코스. 그곳은 KT를 2009-2010시즌 재도약으로 데려다 줄 길. 그래서 KT선수단은 길 위에서 벌이는 자신과의 사투를, 오늘도 마다하지 않는다.

태백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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