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기자의 남아공 리포트] 허감독은 ㅁㅁㅁ을 가장 싫어해

입력 2010-01-14 15:3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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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허정무 사전에 ‘만약’은 없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게 없다. 이미 흘러간 사실일 뿐이다. 이런저런 가정을 한다면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다.

축구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정을 한다면 끝이 없다. ‘만약에 누구 골을 넣었더라면’, ‘누가 실수만 하지 않았더라면’ 등 팬 입장에서는 지난 사실을 되돌리고픈 마음은 굴뚝같을 것이다. 월드컵을 가정해보면 ‘어느 팀을 이겼더라면’으로 시작해 ‘어느 팀과 만났더라면’ ‘훈련을 좀 더 잘했더라면’, ‘누굴 기용했더라면’ 등 가정하고 싶은 것은 수천가지다.

하지만 국가대표팀 허정무 감독은 이런 ‘가정법’을 가장 싫어한다. 미리 대비를 철저히 한다면 ‘만약에’가 줄어들 것이라 믿는 감독이다.

이번 남아공 전지훈련도 그렇게 해서 시작됐다. 고지대라는 것이 어느 정도로 적응하기 힘든 곳인지, 월드컵 기간의 대표팀 동선은 어떻게 되는지, 숙소와 훈련장의 환경과 거리는 어떻게 되는 지, 잔디는 어떤 것을 사용하는 지 등을 사전에 경험하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온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함으로써 월드컵에서 실수를 최소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 허 감독의 믿음이다.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한 맞춤형 전술을 구상 중인 것이나, 아르헨티나나 그리스의 전력 분석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모두 ‘만약에’라는 가정법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남아공 전지훈련에서 선수들의 기량이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체력이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허 감독은 지금이 중요하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대신 선수들이 모든 것을 느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반응이다.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라는 말처럼 그는 미래지향적이다. 6월에는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태극전사들을 만들어낼 자신감의 표현으로 느껴진다.

허 감독은 최근 “축구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경기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확률은 달라집니다”라고 했다. 연초 올 한해를 호랑이처럼 예리한 관찰력과 소처럼 신중한 행보(虎視牛步)로 살겠다고 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철저한 준비로 월드컵을 맞겠다는 의미다.

악조건 속에서 시작된 1월의 전지훈련 효과가 6월 월드컵에서 달콤한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포트 엘리자베스(남아공) |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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