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아 성룡아 ‘감초 조연’ 되어라”

입력 2010-02-01 15:5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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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플레잉코치 최은성.

대전 플레잉코치 최은성.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월드컵 출전을 꿈꾼다.

대전의 ‘영원한 골리’ 최은성(37)도 그랬다. 어느새 세월은 훌쩍 지나 플레잉코치가 됐지만 8년 전, 그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깜짝 발탁. 본인도 놀랐다고 했다.

1일 대전 선수단이 동계훈련을 하고 있는 호주 시드니 글렌우드 카운실 발렌타인 스포츠 파크에서 만난 최은성은 “대표팀에 선발됐다는 얘기를 친하게 지냈던 한 팬에게 전해 들었다. 히딩크 감독께서 어떤 면을 보고 뽑았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한동안 멍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2한일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발탁된 최은성은 철저한 벤치 멤버였다. 그것도 세 번째. 이운재(수원)가 넘버원이었고, 김병지(경남)가 두 번째였다.

가뜩이나 고독한 포지션에서 밀려 있다는 생각에 서운할 법 했을 터.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주전자를 열심히 날랐다”고 했지만 행복한 기억이라고 했다. 당시 취재진이 ‘뛰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최은성은 “내가 뛰기 위해선 우린 (김)병지 형과 운재가 다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해야 한다”고 답했다. 히딩크와 함께 역사를 창조한 한 달은 그의 축구 인생,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자 자랑스러운 시간이었다.

스페인을 승부차기로 꺾고 4강에 오른 순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호아킨의 PK를 막아낸 이운재에게 가장 먼저 뛰어간 이도 그였다. “주전이요? 글쎄요. 선수라면 누구나 필드에 서고 싶고, 주인공이 되고 싶잖아요. 그런데 전혀 서운하지 않았어요. 분명히 제 위치를 알고 있었죠. 잘 짜인 틀을 깨고 싶지 않았어요. 오히려 축구의 즐거움을 그 때 알게 됐죠.”

그래서일까. 누구보다 남아공월드컵을 준비하는 후배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다. 현 대표팀의 주전 수문장은 이운재. 대표팀 붙박이 멤버 김영광(울산)과 정성룡(성남)이 최은성이 섰던 바로 그 위치에 있다.

“워낙 잘하고 능력 있는 후배들이라 조언해줄 건 없어요. 다만, 아름다운 드라마 한 편의 조연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직 젊기에 희생은 결코 아니죠. 영화에서 주연이 빛나는 건 ‘감초’ 같은 조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하나가 될 때 최대 시너지를 끌어낼 수 있어요. 개인보다 ‘우리’가 강조돼야 한국축구가 성공합니다.”

시드니(호주)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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