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잔치’는 시작됐다. LG 좌완 류택현은 전인미답의 개인통산 1000경기 등판까지 달릴 수 있을까. 사이판 스프링캠프에서도 훈련으로 탄탄한 상체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믿음이 간다. 사진 제공 | LG 트윈스
역대기록과 18경기차…1000경기 가능
‘호루라기 인생’이지만 실패한 건 아냐
‘위대한 도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내 한계를 시험하고 싶다. 아무도 못 오른 고지를 오르고 말겠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는 ‘호루라기 인생’이다. 신호만 떨어지면 출동해야 하는 5분 대기조. 하루가 멀다 하고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프로 데뷔 17년째. 이젠 호출 신호가 떨어지기 전에도 본능적으로 안다. 언제 준비를 하고, 언제 출동해야 하는지를.
LG 류택현(39)은 1994년 OB(현 두산)의 1차 지명을 받은 유망주였다. 같은 해 LG 1차 지명을 받은 선수는 ‘천재 유격수’ 유지현. 유지현은 이제 같은 팀에서 코치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지만 그는 아직도 현역이다.
거북이처럼 뚜벅뚜벅 걸어온 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은 없지만 결코 실패한 야구인생이라 할 수 없다. 어렸을 때는 ‘공만 빠르고 제구력이 없는 투수’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세월의 풍화작용에 깎이고 다듬어져 이젠 컨트롤에다 싸움의 요령까지 붙은 정상급 왼손 스페셜리스트로 통한다.
류택현은 지난해 73경기에 등판했다. 시도 때도 없이 마운드에 오르다 보니 ‘시즌 최다등판 투수’라는 월계관이 씌워졌다. 개인통산 등판 경기수를 795경기로 늘렸다.
전설적 투수 송진우(672경기)와 김용수(613경기)를 일찌감치 추월한 그는 지난해 13경기 등판에 그친 2년 선배 SK 가득염(개인통산 779경기)을 넘어섰다. 역대 프로야구 투수 중 그보다 많이 등판한 투수는 이제 조웅천(813경기) 뿐이다. 18경기차. 그런데 조웅천도 지난해를 끝으로 은퇴했다. ‘넘버 2’ 류택현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올 시즌 ‘역대 최다등판 투수’로 등극한다.
“조웅천 선배도 은퇴해 당분간 1000경기에 도전할 선수는 나밖에 없는 것 같다. 외롭지만 아무도 못 오른 그 고지에 올라보겠다.”
앞으로 매년 70경기 안팎을 등판한다 해도 3∼4년은 더 뛰어야 오를 수 있는 고지. 그러나 목표가 생겼기에 쉼 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그동안 직구, 커브, 포크볼, 슬라이더 등 4가지 구종을 구사했지만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서클체인지업을 연마하고 있다. 끊임없는 변신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미 사이판 전지훈련에서 하프피칭에 돌입하며 ‘고무팔’을 예열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100홀드 고지를 밟았다. “200홀드도 욕심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건 지팡이를 짚고 올라가도 못 오를 고지”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더 목표가 있다면 은퇴하기 전까지 우승 반지를 받는 것”이라고 했다. 1995년 소속팀 OB가 우승했지만 당시 그는 방위 복무를 하느라 감격을 맛보지 못했다. 1999년 LG로 이적한 뒤로도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우리 나이로 마흔 살. ‘불혹의 청춘’ 류택현의 ‘위대한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