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과학연구원 좌담회- 윤성원 연구원 태릉 | 김종원기자 won@donga.won
체육과학연구원 윤성원 박사의 ‘눈물겨운 헌신’
4년 전이었다. 화장실에서 피를 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 때까지만 해도 ‘장이 좀 좋지 않았나보다’ 했다. 보다 못한 아내가 태릉선수촌으로 향하던 남편을 붙잡았다. “오늘은 꼭 병원가야 돼.” 검사 결과는 청천벽력과 같았다. 직장암 3기 판정. 벌써 원통형 직장의 4분의 3가량에 암세포가 퍼져 있었다. 자식 같은 선수들을 돌보느라, 자기 건강은 챙기지 못한 셈이었다.
체육과학연구원(KISS) 윤성원(54) 박사는 성균관대 시절까지 핸드볼 선수로 활약했다. 이론에 대한 갈증을 안고 생리학을 전공한 뒤 KISS에 들어온 지가 벌써 25년. 스피드스케이팅을 담당한 지는 벌써 20년이 넘었다. 암 투병 와중에도 그는 체육학 연구와 대표선수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선수출신 학자로서의 사명 때문이었다.
2010밴쿠버동계올림픽 준비과정에서도 그는 든든한 조력자였다. 다리근력, 근지구력과 무산소성 파워 등 경기력과 직결되는 체력들을 주기적으로 측정해 훈련프로그램 구성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실제 과학적인 훈련을 통해 이상화(21·한체대)의 최고파워와 평균파워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모태범(21·한체대)의 금메달 역시 과학적인 통계로는 예고된 결과였다.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동안 잦아들었던 암세포. 하지만 2009년 8월, 또 한번 윤 박사는 “간으로 암세포가 전이됐다”는 끔찍한 소식을 접한다. 그리고 한 달 뒤 수술대에 올라 손상된 간의 일부를 절개했다.
대표팀 김용수(34) 코치는 “이 정도는 저희가 하겠다”고 말렸지만 그의 열정은 이번에도 암 세포를 이겨냈다. 윤 박사를 친 가족처럼 따르던 태릉선수촌 지도자들은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윤 박사는 “선수들에게는 일부러 (암에 걸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면서 “아마 (이)규혁(32·서울시청)이 정도만이 알 것”이라고 했다.
밴쿠버올림픽이 열리는 2월 한 달, 윤 박사는 항암치료를 위해 병가를 냈다. 2주전에는 6차 항암치료를 마친 상황. 휴식을 취해야 할 시기지만, 전화통에는 불이 난다.
쏟아지는 관심에도 윤 박사는 “체육과학이 선수와 지도자의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부분은 1∼2%”라며 몸을 낮췄다. 하지만 스피드스케이팅에서는 작은 차이로 명품이 탄생하는 법. 17일, 이상화와 2위 선수의 합계기록 차이(0.05초)는 윤 박사의 투혼을 역설하고 있다.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