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바닷길 요트 일주] 낭만·모험으로 출렁인 뱃길 1700km

입력 2010-02-24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1~8차 누적 항해거리:1,711km



11.되돌아본 1~8차 항해
서해에서 남해를 돌아 국토의 막내 독도까지, 바다의 백두대간을 개척하기 위해 시작된 집단가출호의 전국 일주 요트 항해가 중반을 지나 후반에 접어들었다. 2009년 6월5일 경기도 전곡항을 출발한 ‘집단가출호’는 그동안 한 달에 한 번, 8차에 걸쳐 총 28일간의 항해를 통해 2010년 2월 현재 경남 진해까지 진출해 있다. 서해의 영해 외곽을 돌아 제주도를 거쳐 남해 다도해 지역을 관통하는 약 1700km의 바닷길을 달리는 동안, 허영만 화백과 선원들은 거센 파도, 예기치 못한 폭풍과 사투를 벌이기도 했고 때로는 바다가 베푸는 눈부신 풍광에 빠져들기도 했다.독도까지 4차례 항해를 남겨두고 있는 집단가출호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봤다.


[1차 항해] 경기도 전곡항~굴업도~전곡항



“바다의 올레길 개척!”…닻 오른 집단가출호

2009년 6월 5일, 허영만 선장이 지휘하는 40피트 레이스 크루저 집단가출호가 경기도 화성시 전곡항에서 한반도 영해 외곽 일주 항해의 돛을 올렸다. 대한민국 바다의 돛단배 올레길 개척을 목표로 한 전국 일주 항해의 최종 목적지는 국토의 막내 독도. 우리 바다의 외곽을 온전히 순례하기 위해 서해 최북단 백령도에서 항해를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공교롭게도 그 즈음 백령도는 NLL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첨예했던 탓에 첫 기항지는 굴업도로 변경됐다.아직은 모두들 밝은 표정이지만 첫 항해에서 대원들은 섬모기에 시달려 지옥을 체험했다.


[2차 항해] 경기도 전곡항~격렬비열도~충남 오천항



생선 1마리 선원 5명…회덮밥? 고추장덮밥?

집단가출호의 식사는 현지의 해산물 등 식재료를 구입해 직접 취사하는 방식을 택했다. 요트는 모터보트와는 달리 항상 4∼5명의 인원이 집중해서 조종에 참여해야 한다. 게다가 배가 파도에 심하게 흔들리는 탓에 식사 준비가 어려워 항해 중 제때에 식사를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육상에서 미리 해놓은 밥에 트롤링 낚시로 잡는 생선을 대충 다듬어 고추장에 비벼먹는 회덮밥이 최고의 성찬이었다. 그러나 낚시가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잡은 생선이 단 한 마리에 그친 어느 날, 식사당번은 회덮밥에 고추장을 많이 넣어 짜게 만들었다.

[3차 항해]충남 오천항~어청도~전남 목포항



음악회서 댄스파티까지…밤을 잊은 섬마을

집단가출호는 먼 바다의 섬들에 기항하며 섬 주민들과 어울리는 이벤트를 벌인다. 군산 어청도에서는 해금, 오카리나, 키보드 등 3가지 악기로 이뤄진 ‘집단가출 트리오’의 항구 음악회가 열렸다. 어청도 마을회관 앞마당에 즉석으로 만들어진 연주회장엔 주민들과 관광객을 포함 120여명이 모였다. 연주회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먼저 춤을 추기 시작했고, ‘춤바람’은 삽시간에 전염되어 어청도 마을회관 앞은 때 아닌 무도회장으로 변했다. 거듭된 항해로 검게 그을린 허영만 선장이 초등학생들과 어울려 춤을 추고 있다.


[4차 항해] 전남 목포항~우이도~목포항



좌초한 집단가출호, 노을에 기대 잠들다

7월 중순 충남 보령 오천항에 묘박 중 강풍에 닻이 빠지는 바람에 배가 밀려 일대 소동을 겪은 지 두 달. 4차 항해에서 전남 우이도 돈목항으로 입항하던 집단가출호는 두 번째 시련을 맞았다. 선착장으로 접근 중 수심이 급격히 낮아진 탓에 배 밑바닥이 걸려버린 것. 마침 썰물이어서 수심은 시간이 갈수록 얕아져 좌초한 배는 급기야 와불처럼 눕고 말았다. 우이도 좌초는 해도상에 나타난 수심과 실제 수심이 달라 벌어진 사고였다. 바다는 항상 변화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부주의에 대한 징벌이다. 노을 속에 기울어있는 배의 모습이 처연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아름답다.


[5차 항해] 목포항~제주도 도두항~마라도~화순항



\제주도 친선레이스 우승“한치 한박스 땄다”

5차 항해에서 집단가출호는 목포에서 출발해 제주해협을 건넜다. 목포 대불대학교의 세일링요트 2대와 마산이 모항인 이루리호 등 총 4대가 선단을 이뤄 17시간의 긴 항해 끝에 추자도 서쪽을 돌아 제주도 도두항에 도착했다. 이튿날 집단가출호 제주 방문 기념 친선 요트 레이스가 열렸다. 도두항∼탑동 구간에서 벌어진 레이스는 제주도 요트까지 총 6대가 출전한 가운데 집단가출호가 허영만 선장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한 팀워크를 보이며 1위를 마크했다. 우승 상품은 한치 한 상자. 그날 저녁 대원들은 튀김, 회, 숙회, 찌개 등 한치로 만든 음식을 질리도록 먹었다.


[6차 항해] 제주도 화순항~거문도~전남 여수항



성난 바다위 폭풍 질주 “이 맛이 세일링이다”

계절이 바뀌어 11월. 바야흐로 북서계절풍의 시즌이다. 제주를 떠나 거문도를 거쳐 여수로 들어간 6차 항해는 풍속 15노트의 북서풍 속에 진행됐다. 전교생이 4명인 거문도초등학교에서 허영만 선장의 특별 미술 수업이 있었던 이튿날, 거문도를 떠나 여수로 향하는 뱃길은 험난했다. 파고 5m의 거친 바다는 그동안 얌전한 바다를 지나온 대원들에게 세일링의 진수를 맛보게 하기에 충분했다. 비가 오는 가운데 풍랑이 거셌던 이날 항해에서 파도에 맞아 카메라 2대가 고장 났고, 헤드 세일이 일부 찢어졌다.


[7차 항해] 전남 여수항~소리도~경남 남해항



“위기의 요트 구하라” 풍랑과의 새벽 사투

전남 여수에서 남해 물건항으로 이동한 7차 항해의 하이라이트는 소리도였다. 풍랑예비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항해에 나서 소리도에 입항한 이튿날 새벽, 예비특보는 주의보로 바뀌었고, 우리가 가진 작은 닻은 배를 지탱하기엔 역부족이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다. 대원 한 명이 이가 부러지는 우여곡절 끝에 겨우 배를 구했지만 대원들은 소리도에서 발이 묶였다. 그날 저녁 밥을 먹기 위해 들른 마을 식당에서는 풍랑 탓에 조업을 나가지 못한 어부 몇몇이 심심풀이 화투를 치고 있다가 우리들에게 “배 타는 게 뭐 좋다고 고생을 사서 하느냐”며 말을 걸었다.


[8차 항해] 경남 남해항~욕지도~거제도~경남 진해항



간잽이 허영만 “식객 화백의 손맛 어때?”

항해가 항상 고생스럽고 거칠기만 하다면 아마도 지금쯤 포기하는 대원들이 속출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항해에는 즐거운 순간들도 많다. 즐거움의 순위를 매기자면 아름다운 바다 풍경 감상이 1위, 그 다음은 먹는 즐거움이다. 남해 욕지도에 들른 어느 날. 항구의 바지선 위에서 야영 중 제철 해산물인 굴, 홍합에 이어 석쇠 가득 조피볼락을 구워먹는 장면이다. 숯불에 소금만 뿌려 구운 조피볼락은 도시의 어느 유명한 식당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치열한 ‘현장의 맛’을 선사했다.

글|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사진|김성선·이정식
cafe.naver.com/grouprunway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