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입력 2010-03-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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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무소유’의 가르침을 남긴 법정 스님. 입적을 앞두고 스님은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을 남겼다. 스포츠동아 DB

■ ‘무소유’ 법정스님 하늘로

“일체의 장례의식 말라”당부
13일 송광사서 다비식 거행
천주교 등 종교계 애도 물결


‘무소유’의 큰 스승 법정 스님(78)이 11일 오후 1시51분께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55세.

법정 스님은 2007년부터 폐암으로 투병해왔으며, 지난해 4월19일 길상사에서 열린 봄 정기법회에서 법문을 한 것이 대중 앞에 선 마지막 모습이었다.

지난해 연말부터는 제주도에서 요양을 했으나 올해 들어 병세가 악화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입적 직전인 11일 낮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로 옮겨 마지막 길을 준비했다.

법정 스님은 입적을 앞두고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을 남겼다.

조계종과 법정 스님의 출가 본사인 전남 순천 송광사, 길상사 등은 평소 “일체의 장례의식을 거행하지 마라”고 말해온 스님의 뜻에 따라 별다른 장례 절차를 치르지 않고 13일 오전 11시 송광사에서 다비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송광사 문중의 다비준비위원회(위원장 진화스님)가 다비식을 맡아 진행하기로 했으며 길상사, 송광사, 송광사 불일암 등 3곳에 간소한 분향소가 마련될 예정이다. 조화, 부의금은 받지 않기로 했다.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 스님(속명 박재철)은 목포상고를 거쳐 전남대 상대 3학년 때 당대의 선승 효봉 스님을 만나 머리를 깎았다. 이후 1959년 3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1975년부터 17년간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수행했으며, 1976년 4월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2년부터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기거하며 외부접촉을 자제했으나 1996년 서울 성북동의 요정 대원각을 기부받아 이듬해 12월 길상사를 개원하면서 정기적으로 대중법문을 베풀었다.

뛰어난 문장가이기도 했던 법정스님은 ‘무소유’ 외에도 ‘영혼의 모음’, ‘서 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텅 빈 충만’, ‘버리고 떠나기’, ‘산에는 꽃이 피네’ 등 불교적인 가르침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을 펴내 불교 신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생전 종교를 떠나 폭넓은 교류를 나눴던 스님의 입적 소식에 각계각층 인사들은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추모 메시지를 전했다. 정진석 천주교 추기경은 “법정 스님의 원적은 불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큰 슬픔”이라는 메시지를 조계원 총무원에 보냈다.

한편 대한불교 조계종은 법정 스님에게 수행력과 법을 갖춘 큰스님에게 주는 최고의 법계인 ‘대종사’ 법계를 추서하기로 했다. 법정스님의 법구는 12일 정오 길상사를 출발해 순천 송광사로 향한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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