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바닷길 요트 일주] 시련을 불사르고 태양속으로 전진!

입력 2010-03-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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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항 방파제 위로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 이 날은 높은 구름이 끼어 흐렸으나 수평선엔 구름이 없어 일출 장면이 도드라졌다. 출항 준비를 위해 송영복, 이진원 두 대원이 고무보트를 타고 집단가출호로 다가가고 있다.

13.암초 넘어 희망의 바다로
《아침 일찍 찾아온 드레이크호 김승규 선장님과 함께 GPS 안테나 교체 작업을 시도했으나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우리 배에 설치된 기존 안테나 케이블이 김 선장님이 가져온 것과 형식이 달라 연결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난감했지만 달리 방법이 있을 수 없다. 이번 9차 항해의 최종 목적지 포항 양포항까지 나머지 이틀의 항해를 종이 해도와 나침반으로 버틸 수밖에….

부산을 떠나기 전 해운대역 뒤편의 3500원짜리 국밥집에서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항해 중에 남이 차려주는 아침밥상을 받을 수 있다니 꿈만 같다. 남해의 섬들을 거쳐 오는 동안 아침 식사는 주로 버너와 코펠로 직접 해먹거나 대부분은 배 안에서 간단히 해결해 온 터라 식탁과 의자가 있는 식당에서의 아침식사는 대원들을 감격케 했다.》

부산광역시요트협회의 배웅을 받으며 수영만 요트장을 빠져나와 뱃머리를 태양이 떠오르는 쪽으로 향한다. 찬란한 햇살에 금빛으로 물든 부산 앞바다. 집단가출호는 북동풍에 편안히 몸을 맡기고 미끄러지듯 동쪽으로, 동쪽으로 순항했다.

동백섬 누리마루를 돌자 낯익은 해운대해수욕장, 달맞이고개가 눈앞에 펼쳐진다. 맘 같아서는 구경도 할 겸 해변에 가까이 붙어가고 싶지만 해운대 앞부터 송정, 기장에 이르는 해안선엔 양식장과 어구가 즐비해 안전을 고려해 멀찌감치 돌아갈 수밖에 없다.

기장을 지날 무렵부터 집단가출호는 방향을 크게 틀어 북쪽을 향한다. 남해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동해에 접어들며 이제부터는 최북단 강원도 고성 대진항까지 북진만을 남겨두게 된 것이다.

다행히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 먹통이 된 GPS가 아쉬울 일은 없었다. 가끔 해안에서 기준점을 삼을만한 특별한 지형지물을 발견하지 못할 땐 해양조사원이 지원한 노트북 컴퓨터 구동용 전자해도와 함께 스마트폰의 GPS 연동 지도 서비스가 톡톡히 한몫을 했다.

고리원자력발전소 앞을 지날 때 쯤 잔잔하던 바다에 물비늘이 일어난다. 어제 이맘때와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해풍이 어김없이 시작된 것이다. 육지 반대편인 오른쪽에서 불어주는 해풍은 북상중인 우리 배를 클로즈 홀드(close hauled-전방 45도 각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가는 항해법. 속도가 빠르고 조종이 수월하다)로 힘차게 밀어 올려 속도는 11∼12노트를 넘나들었다.

 

 


“GPS가 망가진걸 알고 봐 주는 건가? 이번 항해는 바람이 우리 편인걸.”

허 선장의 말처럼 이번 9차 항해는 바람이 완벽한 아군이었다.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방향을 틀어야할 때마다 예외 없이 풍향이 바뀌어 쾌속 순항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간절곶을 끼고 돌아 오늘의 목적지인 울산항 오른쪽 어귀의 방어진에 도착했을 땐 오후 1시 30분이다. 약 60km를 4시간여 만에 주파했다.

오랜만에 여유 있는 오후를 맞게 된 대원들은 배를 정박시킨 뒤 대왕암 해안산책로 트레킹에 나설 채비를 하며 들떠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우리는 해경으로부터 당혹스런 소식을 접해야했다. 방어진은 근동의 어항 중 제일 큰 곳으로 지금은 텅 비어있지만 밤이 되면 멸치잡이 어선들이 100척 넘게 들어와 항구가 꽉 차버린다는 것이었다.

저녁에 들어온 어선들이 우리 배에 붙여 묶을 경우 선체가 약한 집단가출호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선착장 콘크리트 바닥에 해도를 펼쳐놓고 방어진 주변의 다른 항구를 찾아보았으나 대부분 수심이 얕아 요트가 들어갈 수 없는 소규모 항구뿐이다. 방어진 북쪽 6마일 지점에 현대중공업 항구가 있으나 민간 선박의 입항을 허락해줄 리 만무하고, 설사 허락한다 해도 자재를 실은 대형 선박이 들고나기 때문에 결코 안전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항구는 3.5마일 북쪽에 있는 일산항이었다. 해도상에는 작으나마 방파제가 있고 수심도 깊은 편이었으나 그간의 경험상 사전 정보가 없는 항구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 정석이다. 일산항은 방어진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대왕암까지 가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있었고, 대원들은 등산화 끈을 단단히 묶고 대왕암으로 향했다.

여유로운 트레킹 대신 안전한 항구를 찾기 위해 점심도 거른 채 정찰에 나선 셈이었지만 어쨌든 대왕암까지 걷는다는 면에서는 마찬가지였다. 뛰듯이 걸어 대왕암, 울기등대를 지나 해안으로 내려서자 비로소 일산항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왼쪽에 백사장이 길게 펼쳐져 있어 수심이 걱정됐고, 항 입구 가운데 버티고 선 바위는 주변에 암초가 있음을 경고하고 있었으나 방파제 안쪽에 요트 한 대가 서있는 것이 확인됐다.

요트가 이미 정박돼 있는 항구라면 안전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안전한 정박지를 찾았다는 안도감이 들자 비로소 대왕암 주변의 절경이 눈에 들어온다.

관광객 무리에 섞여 철다리를 건너 대왕암에 오르자 바다는 대왕암의 웅장한 바위 밑에서 하얀 포말이 되어 산산이 부서졌고, 바다를 건너온 바람은 해송 숲을 어루만졌다.

방어진에 있던 배를 일산항의 안전한 고정 앵커에 묶고 나니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백사장에 야영캠프를 설치하고 화로 대용으로 갖고 다니는 깡통에 모닥불을 피웠을 때는 이미 새카만 밤중이었다.

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cafe.naver.com/grouprunway
사진=이정식 스포츠 포토그래퍼

방어진과 일산항의 중간 지점에 있는 울산 대왕암. 맥동치는 태백산맥이 동해로 잠겨드는 끄트머리인 이 곳은 신라 문무대왕 수중릉인 경주 대왕암과 같은 이름으로 문무대왕비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 울산 대왕암?

문무왕비 전설 깃들어…‘경주 대왕암’과 달리 상륙 가능


우리나라엔 2개의 대왕암(大王岩)이 있다.

일반적으로 대왕암은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사적 제158호,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을 지칭한다. 문무왕이 죽어서도 호국의 용이 되어 동해를 지킨다는 전설이 얽힌 곳이다.

이번에 집단가출호 대원들이 들른 대왕암은 경주의 문무왕 수중릉이 아니라 울산 동구 일산동에 있는 또 다른 대왕암이다. 경주 대왕암이 문무왕의 무덤이라면 울산 동구 대왕암은 문무왕의 부인과 관련이 있다.

문무왕에 이어 세상을 떠난 왕비가 역시 문무왕처럼 이 바위에 깃들어 동해 호국룡이 되었다는 얘기다. ‘대왕바위’ 또는 ‘댕바위’로 불려오다 대왕암공원이 조성되며 대왕암으로 불리게 됐다.

경주 대왕암은 해안에서 비교적 떨어진 작은 바위섬으로 상륙할 수 없다. 반면 울산 대왕암은 육지와 거의 붙어있는데다 몇 년 전 현대중공업측이 다리를 기증해 직접 올라볼 수 있다. 대왕암 뒤편 언덕의 울기등대는 1906년 우리나라 등대 중 3번째로 불을 밝힌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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