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주·황영조가 말하는 ‘나와 동아마라톤’…“내 인생 황금기 뒤엔 동아마라톤 있었다”

대한민국 마라톤 신화를 남긴 이봉주(왼쪽)와 황영조도 동아마라톤을 통해 태어나 성장했다. 두 불세출의 마라톤 영웅은 동아마라톤이 “꿈의 무대”라고 말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2010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81회 동아마라톤대회가 21일 오전 8시 서울 세종로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출발 총성을 울린다. 을지로∼청계천∼종로∼동대문∼어린이대공원∼서울숲∼잠실대교를 거쳐 잠실올림픽주경기장으로 골인하는 42.195km의 풀코스를 누빌 남녀 170여명의 국내외 철각들과 마스터스 부문(오전 8시5분 스타트)에 나설 2만3000여명의 일반 참가자들이 내뿜는 열기로 벌써부터 대회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고 있다. 민족과 함께 지난 한 세기를 달려온 동아마라톤은 특히 올해부터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인정하는 최고등급인 골드 라벨을 받음으로써 세계 최고의 보스턴마라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국내를 넘어 세계 톱클래스의 대회로 발돋움한 2010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81회 동아마라톤대회 개막을 앞두고 대한민국이 낳은 두 불세출의 마라톤 영웅, 황영조(40) 대한육상경기연맹 마라톤 기술위원장과 이봉주(40) 손기정기념재단 이사에게서 동아마라톤의 아주 특별한 의미를 들어봤다.


○이봉주 “내 인생에서 동아마라톤은 반전의 계기’

이봉주(40)의 표현을 빌리자면, “동아마라톤은 한국마라토너들에게 꿈의 대회”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동아마라톤대회에 출전하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역대 동아마라톤대회 우승자 명부에는 손기정(3회·1933년) 등 전설적인 영웅들의 이름이 등재돼 있다.

“동아마라톤 대회요? 항상 제 인생에서는 반전의 계기였죠.” 이 가운데서도 이봉주는 동아마라톤과 유독 인연이 깊었다. 1996년 제67회 동아국제마라톤대회. 이봉주는 1995세계선수권 우승자 마틴 피스(스페인)와 접전을 펼쳤다. 결국 1초 차로 2위를 차지했지만, 이봉주는 “이 대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1996애틀랜타올림픽을 앞두고, “슬럼프를 털고,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은 대회이기 때문”이었다.

역대동아마라톤 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2007년 제78회 대회의 주역도 이봉주였다. 당시 우리 나이로 서른일곱. 다들 “이제 이봉주는 끝났다”고 수군거릴 때였다. ‘예상대로’ 35km지점에서 이봉주가 처졌다. 하지만 5km에서 숨을 고른 이봉주는 40km 지점에서 다시 치고 나갔다. 결국 케냐의 폴 키프로프 키루이를 따돌리고 우승(2시간8분4초). 경제위기 속에서 풀이 죽어있던 중년 가장들에게 희망을 준 레이스였다. 이봉주는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내가 어떻게 그렇게 달릴 수 있었는지 믿기지 않는다. 그 레이스가 아니었더라면 아마, 2009년까지 선수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도전정신. 그것이 동아마라톤을 통해 이봉주가 온 국민에게 역설한 바였다.

21일 열리는 2010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81회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이봉주는 마스터스들과 함께 달린다. “식이요법을 하지 않고 대회 나가는 것은 처음일 것”이라는 웃음 속에서 느껴지는 여유. 하지만, “은퇴는 했지만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는 없다. 짬날 때마다 하루 10km 이상씩 꾸준히 훈련해 왔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17∼20km 정도를 뛸 계획. “대회 직전에는 거리를 줄이고, 훈련의 강도를 높이세요. 에너지원을 축적할 수 있도록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도 필요하고요….” 마스터스들에게 조언을 쏟아내는 그는 ‘천생 마라토너.’ 2010년 대회에서도 ‘동아마라톤의 지킴이’ 이봉주의 변함없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황영조 ‘동아마라톤은 내 인생의 처음이자 시작’



1991년 제62회 동아마라톤대회. 한국마라톤의 영웅 황영조(40·국민체육진흥공단감독)는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페이스메이커였던 그가 원래 뛰기로 예정돼 있던 거리는 20km. 황 감독은 “그냥 선배들과 보조를 맞춰주려 나갔었다는데 20km를 넘어서서도 지치지 않아 계속 달렸다”고 회상했다. 돌발변수는 있었다. 30km 지점. 황영조가 뒤 선수의 다리에 걸려 넘어졌다. 치명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일어나 달렸다. 1위는 김재룡(2시간12분34초)의 차지였지만, 불과 1초 차이로 3위. 생애 첫 풀코스에서 거둔 기적이었다. 결국 그는 17개월 뒤 1992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풀코스 완주 4번째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공교롭게도 천재의 마지막 레이스도 바로 동아마라톤대회였다. 1996년 제67회 대회. 황영조는 26km 지점에서 발바닥이 찢어져 ‘걷다 뛰다’를 반복하다 결국 2시간 25분45초의 저조한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1996애틀랜타올림픽 대표선발전을 겸한 대회였기에 충격은 컸다. 황영조는 “1등으로 달리다 불의의 부상을 당한 것이라 더 안타까웠다”고 했다. 결국 태극마크를 다는 데 실패한 황영조는 은퇴를 선언했다. “시작이 반이고, 또 마무리가 반이라고 했는데 데뷔와 은퇴를 이 대회에서 했으니 동아마라톤은 제 마라톤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네요.”

황영조는 현재 마라톤대표팀 총감독과 대한육상경기연맹 마라톤부문 기술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대표팀은 동아마라톤대회를 목표로 1·2월 제주도에서 하루 40∼50km에 이르는 강 훈련을 소화한 상황. 황 감독은 “오서진(계명대) 등 차세대 젊은 선수들을 주목해 달라.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마라톤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의 가능성 여부를 전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