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베이스볼] “첫 중계 정말 편해” “자네 부친은 속사포”

입력 2010-04-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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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그리피 시니어와 주니어, 보비 본즈와 배리 본즈. 100년 역사가 넘은 메이저리그에는 부자선수들이 즐비하다. 29년차인 한국프로야구에는 부자 해설가가 있다. 故 이성규 MBC 해설위원과 이효봉(왼쪽) MBC-LIFE 해설위원이 그 주인공. 임주완 캐스터는 이들 부자(父子) 해설가와 모두 호흡을 맞춘 인물로 기록됐다.사직 | 박화용 기자 setupman@donga.com

지난 6일과 7일 사직구장에서는 흥미로운 그림이 잡혔다. 올해부터 프로야구 중계에 뛰어든 MBC LIFE가 이날 LG-롯데전을 중계했는데 캐스터 임주완(64)-해설가 이효봉(47) 조합이 탄생했기 때문. 눈길을 모은 것은 바로 임주완 아나운서가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처음 부자 해설가와 호흡을 맞췄다는 사실이었다.

이효봉 해설위원은 부친 이성규(작고) MBC 해설위원에 이어 2대에 걸쳐 마이크를 잡고 있다. 이효봉 위원은 1999년부터 야구해설을 시작해 부자 야구해설가 탄생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 캐스터가 부자 해설가와 모두 호흡을 맞춘 것은 최초의 일이라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런 사례가 꽤 많지만 한국에서는 그동안 없었다. 이렇게 된 것은 MBC LIFE가 이효봉 해설위원을 올해 새롭게 영입했기 때문. 올해로 프로야구 출범 29년째다. 한 캐스터가 부자 해설가와 함께 프로야구를 중계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은 한국프로야구도 그만큼 연륜이 쌓였다는 하나의 징표이기도 하다.



이효봉이 보는 임주완 아나
어릴때 선배 중계 보며 자라
첫 호흡이지만 삼촌 같아요



○이효봉 “삼촌하고 중계하는 것 같네요”

이효봉 해설위원은 어린 시절 임주완 아나운서와 부친의 중계를 들으면서 자랐다. 그래서인지 이효봉 해설위원은 “처음 호흡을 맞추면 서먹서먹하게 마련인데, 오래 전부터 알던 분이라 그런지 처음 중계를 하는 데도 이상하게 편했다. 마치 삼촌하고 중게하는 것처럼 편했다”며 지난 6일과 7일 중계를 회상했다.


○아나운서에서 야구해설가가 돼 버린 아버지 이성규

이성규 해설가는 원래 MBC 아나운서였다. 임주완 아나운서의 선배. 야구선수 출신도 아니었다. 그런데 야구 해설가로 변신한 이력이 독특하다. 프로야구 출범 이전, 부산 구덕구장에서 열린 화랑기 고교야구 결승전이었다. 이날 해설을 맡기로 한 김계현(작고) 씨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해설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이때 장내 아나운서가 “야구장에 이성규 아나운서 있으면 중계실로 좀 와 달라”고 방송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성규 아나운서는 어렸을 때부터 평소 라디오를 통해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경기를 즐겨 들었고, 일본 야구전문잡지 슈칸베이스볼을 정기구독할 정도로 야구에 심취해 있었다. 고교야구가 최고인기를 구가하던 그 시절, 방송 관계자들은 이성규 아나운서가 분명 구덕구장을 찾았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었다. 야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그에게 대타 해설을 맡긴 것이었는데, 기존 해설가 뺨치는 해설로 대박을 터뜨렸다.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MBC는 아나운서에서 퇴직한 이성규 해설가에게 지방경기 라디오 해설을 부탁했다. 임주완 아나운서는 “목소리가 정말 낭랑하셨던 분이셨다”고 돌이켰다.

임주완이 보는 이효봉 해설가
침착하고 조리있고 깊이있고
딱 공부하는 해설가 이미지죠

○프로야구선수→기자→해설가로 변신한 아들 이효봉

이효봉 해설가도 아버지 못지않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 대전고 시절 청소년 대표를 지냈다. 고려대를 졸업한 뒤 1986년 빙그레 1차지명을 받았지만 실업팀 한국화장품에 들어갔고, 상무를 거쳐 89년 빙그레에 뒤늦게 입단했다. 투수였던 그는 무릎부상으로 1990년 시즌이 끝난 뒤 은퇴했다.

당시 주간야구 김창웅 주간은 “내가 보니 프로에서 성공하기 어렵겠다. 야구 그만두고 이리 와라”고 그를 이끌었다. 김창웅 주간은 부친과 의형제처럼 지내던 사이. 그러면서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 갑자기 야구전문 잡지 기자로 변신하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기사 한줄 쓰기가 버거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글솜씨도 빛이 나기 시작했다. 현재 스포츠동아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며 멋진 기사를 써나가고 있는 것도 그 시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

1993년 주간야구가 폐간되면서 1994년 국내에서 최초로 케이블 스포츠 전문방송인 한국스포츠TV에 시험을 거쳐 경력직 방송기자에 합격했다. 신문과 방송 기자를 두루 경험하게 된 그가 야구 해설가로 변신한 것은 1999년의 일. IMF 사태가 터지면서 야구 해설가를 영입할 자금이 없자 당시 김성주 캐스터와 함께 야구선수 출신인 그가 마이크를 잡고 해설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2000년 SBS가 한국스포츠TV를 인수했지만 2003년 파업으로 그는 해고됐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LG 스카우트를 지낸 그는 2008년 KBSN스포츠에서 다시 마이크를 잡고 해설계에 복귀했다. 2009년 엑스포츠에 이어 올해 MBC LIFE에 영입되면서 사상 최초로 케이블TV 4사 해설을 하게 됐다. 그는 “그러고 보니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됐다”며 웃었다.

임주완이 보는 이효봉 부친
성격 너무 급해 라디오에 딱
일본용어 쓰다 항의받기도



○임주완 아나운서가 보는 이성규와 이효봉


임주완 아나운서는 1976년부터 야구중계를 시작했다. MBC 공채 아나운서 중 최초로 야구중계를 한 인물이다. 임 아나운서는 “이성규 선배도 나뿐만 아니라 프로야구 초창기에 김용 김재영 양진수 송인득 유협 아나운서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는데, 누구나 인정하는 인간미가 넘치던 해설가였다”면서 “성격이 급하고 말이 빨라 라디오 중계에 더 적합한 분이었다. 일본야구를 통해 야구를 배우신 분이라 해설하다 가끔씩 일본식 용어를 사용해 항의를 받기도 했다”며 웃었다. 아들 이효봉 위원에 대해서는 “성격이 침착하다. 차분하고 조리 있게 말하는 걸 보면 교장 선생님 출신인 어머니를 닮은 것 같다. 공부하는 해설가로 요즘 팬들의 취향에 맞는 깊이 있는 해설을 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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