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최고 스타 이상민 은퇴] “굿바이 코트!”…오빠가 떠났다

입력 2010-04-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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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부고 2학년 까까머리 이상민은 무적 용산고를 제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연세대에서는 1학년부터 주전을 꿰차며 컴퓨터 가드로 명성을 떨쳤다. 이후 실업 현대와 상무, 프로까지 20년 동안 최고 스타 자리를 지켜왔다. [스포츠동아 DB]

대학팀 첫 우승 이끌었던 그,
“1000명 팬들 따라다녔었다”

9시즌연속 올스타 최다 득표
KCC 보상 선수에 한때 아픔
삼성 ‘우승 약속’ 접어 두고
이제 팬들의 마음속으로…
21일 은퇴를 공식 선언한 이상민(38·서울 삼성)은 20년 가까이 최고 스타의 자리를 지켰다.

홍대부고 2학년 시절이던 1989년, 이상민은 무적을 자랑하던 용산고를 꺾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하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당시 용산고에는 김승기(부산 KT코치)와 양경민, 김재훈(울산모비스 코치) 등이 버티고 있었다.

이후 연세대로 진로를 결정한 이상민은 1학년 때부터 주전을 꿰차며 엘리트 가드로 자리매김했다. 1991년 농구대잔치 신인왕은 그의 것이었다. 1년 선배인 문경은, 1년 후배인 김훈, 우지원에 이어 2년 후배인 서장훈까지 합류하자 연세대는 황금기를 맞았다. 이상민은 연세대 3학년이던 1993년 기아, 현대, 삼성 등 막강한 실업팀을 따돌리고 연세대를 농구대잔치 우승으로 이끌었다. 대학팀의 우승은 사상 최초였다. 80년대 김유택, 허재, 강동희가 버텼던 중앙대도 달성하지 못한 위업. 이 해, 이상민은 이전 시즌까지 3년연속 베스트5에 뽑혔던 강동희(원주 동부 감독)를 제치고 생애 첫 베스트5 선정의 영광까지 누렸다.

당시 연세대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이상민의 연세대 동기인 인천 전자랜드 김성헌 과장은 “평일에도 숙소 근처에 500여명에서 1000명의 팬들이 몰렸다”고 회상할 정도. 특히 깔끔한 외모와 실력까지 갖춘 이상민은 ‘오빠부대’세대의 최정점에 서있었다. 2001∼2002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무려 9시즌 연속으로 올스타 팬투표 1위의 대기록은 그 후광이다.

1995년 현대전자에 입단한 이상민은 상무를 거쳐 1997∼1998시즌부터 프로 무대를 밟았다. 이후 현대는 2년 연속 통합우승, 3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팀을 이끈 이상민은 1997∼1998시즌과 1998∼1999시즌 2년 연속 정규리그 MVP를 안았다. 현대가 KCC로 바뀐 뒤에도 이상민의 활약은 계속됐다. 2003∼2004시즌에는 개인통산 3번째 우승으로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손에 넣었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농구인생에도 시련은 있었다. KCC는 2007년 6월 서장훈과 FA계약을 맺으면서 이상민을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했고, 삼성은 이상민을 보상선수로 지명했다. 프랜차이즈 스타를 자부했던 이상민은 큰 배신감을 느꼈고, 팬들은 촛불시위까지 벌였다. 하지만 그는 곧 마음을 다잡았다. 삼성을 이끌고 2007∼2008, 2008∼2009 두 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진출. 그러나 결과는 2년 연속 준우승이었다. 특히, 지난 시즌 3승4패로 KCC에게 우승을 넘겨준 순간은 “우승을 하고 은퇴 하겠다”던 이상민의 농구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으로 남게 됐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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