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역 필요있나요? 직접 다 했죠
사극에 전쟁영화, 첩보드라마까지
다작 아니냐고요?
거절하기엔 욕심나는 작품들이라…
승부욕이 대단하다.
40살이 되면 끊겠다고 호언장담했다는 담배를 41살이 된 지금까지도 피고 있다고 말하던 차승원은 느닷없이 고등학교 극기훈련을 예로 들었다. “극기훈련을 가서 다른 친구들은 모두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데 나만 못하고 서 있는 기분”이라고 ‘애연’이 불러온 불편한 감정을 설명한 차승원은 “피우면서도 개운하지만은 않다”며 멋쩍은 듯 웃었다.
남들에게 지기 싫은 마음은 배우만이 갖는 욕심이 아니다. 하지만 얼마나 더 욕심을 내느냐에 따라 위치가 달라질 수 있는 건 배우의 특권이다. 차승원은 욕심 많은 배우다. 그 욕심은 패션모델로 시작했던 그를 톱배우로 키운 원동력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스릴러 영화 ‘시크릿’을 관객 앞에 내놓았던 차승원이 4개월 만에 29일 개봉하는 사극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감독 이준익·제작 영화사 아침, 타이거픽쳐스)으로 돌아왔다. 임진왜란이 임박한 조선 중기, 소모적인 당쟁에 휩싸인 조정을 뒤엎으려고 나선 검객 이몽학이 그가 새로 분한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 그는 맹인 검객 황정민과 칼을 겨눈다. 잔인하게 정적을 죽이는 그의 모습은 맹수와 닮았다.
-송곳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흡혈귀처럼 보이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붙이고 영화에 나왔다.
“맹수가 먹이를 포착하고 뛰어가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 상징적인 영화, 상징적인 인물, 상징적인 이야기다. 라미네이트로 송곳니를 붙였는데 섬뜩해서 촬영이 끝나고 바로 떼어 버렸다.”(웃음)
-사극인 데다 이준익 감독과의 첫 작업까지, 이번 촬영현장이 특별했던 기억이 있나.
“솔직히 시나리오보다 이준익 감독님이 정말 당겼다. 하하. 경험하지 않았을 때와 경험한 뒤 느낌이 전혀 다르다. 이준익 감독님은 진짜 어른이다. 외형적인 모습에서가 아니라 남자가 좋아하는 그리고 좋아할 만한 어른이다. 형 같기도 하고, 선배, 아버지, 동료 같기도 하다. 어느 날 감독님이 ‘손님과는 한 끼니 먹고 친구와는 두 끼니 먹고 가족과는 세 끼니 먹는데 우린 세 끼를 같이 먹으니 가족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우린 진짜 가족이었다.”
-진검을 들고 싸우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솔직히 대역의 비중은 얼마나 되나.
“허, 참! 단 한 장면에서도 대역은 없었다. 심지어 발만 나오는 장면도 우리가 모두 찍었다. 오히려 3개월 동안 대역을 준비했던 무술 스태프가 촬영 직전 부상을 당했다. 정작 연기자들은 부상을 당하지 않아서 직접 할 수밖에 없었다. 속도 조절을 못해 무술감독에게 ‘살살하라’고 오히려 혼이 나기도 했다.”
이렇게 영화 자랑을 이어가던 차승원은 “아쉬운 게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관객은 어쩔 수 없이 황정학(황정민)에게 마음이 기울 텐데 인물 사이의 유기적인 관계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운을 뗀 그는 상대역으로 나온 백지(한지혜)와 펼친 멜로 감정에서 부연 설명이 부족하지 않느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다. “여주인공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남자 주인공에게 실어줬다면 어땠을까 싶다. 사극은 은유를 훨씬 풍성하게 해주는 장르이지 않나. 사극에서 멜로를 한다면 정말 기막히게 나올 것 같다.”
-하고 싶은 연기가 끝이 없는 것 같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시작으로 6월 ‘포화속으로’, 하반기에는 드라마 ‘아테나:전쟁의 여신’까지 출연한다. 다작하는 진짜 이유는 뭔가.
“내가 묻고 싶던 질문인데, 주변에서는 어떤 소문이 돌고 있나? 사람들은 무슨 작정을 한 것이냐고 묻는데 의도한 건 정말 아니다. 세 편 모두 ‘요즘 작품 많이 했는데 좀 쉴래요’라고 말하며 거절할 수 있는 작품들은 아니지 않나.”
-사극, 전쟁영화, 첩보드라마를 1년 사이 모두 하는 건, 그래도 어떤 각오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텐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촬영하고 있는데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가 기획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쟁영화는 내가 꿈꾸던 장르였다. 시나리오를 보니 굉장히 심플한 전쟁영화였다. 출연하기로 하고 며칠 지났는데 (권)상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가 출연하느냐고 묻길래 ‘무조건 같이 하자’고 딱 한 마디만 했다. ‘포화속으로’를 찍는 와중에 ‘아테나’ 제의를 받았다. ‘시티홀’을 끝내고 이왕 드라마를 할 거면 대작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참이었다. ‘시티홀’도 했는데 드라마 장르에 부담을 가질 이유는 없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차승원에게 이날 오전부터 온라인을 달군 뉴스를 전했다. 20대 1000명이 뽑은 ‘명품몸매’ 1위에 뽑혔다는 소식이었다. 그동안 차분히 말하던 차승원의 목소리가 이때부터 높아졌다. 웃음소리도 커졌다. 내친 김에 40대에 접어든 그에게 ‘꽃중년’에 대해 물었다. “꽃중년이란 수식어에 동의하느냐”는 말을 건네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평균 수명이 50살이던 시절에나 어울릴 만한 단어죠. 40대에게 ‘꽃중년’이라니 말도 안돼요.”
■ 차승원
1970년생. 올해 41살이지만 20대 패셔니스타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스타일과 몸매로 사랑받고 있다. 1988년 패션모델로 데뷔, 1990년대 중반부터 TV활동을 시작해 드라마 ‘불꽃’, ‘천사의 키스’ 등에 출연했다. 1997년 영화 ‘홀리데이인 서울’로 스크린에 나섰다. 이후 2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코미디와 액션,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다. 2001년작 ‘신라의 달밤’ 이후 능청스러운 코미디 연기를 앞세워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 ‘선생 김봉두’ 등 흥행작을 잇따라 내놓았다. 2005년 사극 ‘혈의 누’를 통해 연기 다변화를 꾀했고 ‘아들’, ‘시크릿’ 등 새로운 장르의 영화에 부지런히 도전했다. 부인 이수진 씨와 결혼해 아들 노아, 딸 예니를 두고 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